우리나라 위인 중 가장 존경받는 분 중에 어김없이 오르내리는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남해대교를 가로지르는 노량해협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되는 곳으로 의미가 더 깊은 역사의 장소입니다.

경남 남해 가볼 만한 곳 12경 중에 남해대교와 충렬사는 제2경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곳으로 그의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남해가 시작되는 곳에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충렬사! 동백꽃이 활짝 피는 3월 봄에 찾아보았습니다.

남해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지 30년째 되던 인조 6년(1628)에 지역의 선비들이 초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 뒤 효종 9년(1658)에 다시 지었고,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 준 현액을 받았다고 합니다.

충렬사의 입구 외삼문과 내삼문이 지나면 '補天浴日(보천욕일)' 편액이 걸린 비각이 나옵니다. 그 안에는 우삼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가 있습니다.

이 충렬사비에는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충무공이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과 싸기 시작하는 내용부터 노량진 싸움에서 전사하기까지의 전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충렬사비 뒤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사당 건물 좌우로는 충무공비와 충민공비가 나란히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역사 깊은 장소인 것에 비하면 전체 규모는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 23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곳입니다.

충렬사 사당 안에는 영정과 판옥선, 군장비,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남해 충렬사에 방문하셨다면 이곳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당 뒤편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묘가 있습니다. 가묘란 고인을 안치하기 전에 임시로 만든 무덤을 의미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이 승리로 끝날 무렵인 1598년(선조31) 음력 11월 19일 아침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이후 유해는 관음포에서 이곳 충렬사로 잠시 초빈 되었다가 고금도를 걸쳐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 없지만 임시로 안치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조성한 무덤이라고 합니다.

내산문 계단 앞에 서면 남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나무의 잎이 나기 시작하면 가려질 남해대교의 풍경! 충렬사는 주변으로 감싸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도 볼만합니다.

충렬사 외삼문 우측에는 청해루 건물이 있습니다. 청해루는 이순신 장군의 5대손인 이태상이 영조36년에 충렬사를 참배하고 세운 건물이라고 합니다.

청해루 건물 옆에는 구멍 뚫린 노거수가 거대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정확한 수령은 모르지만 청해루와 함께 지어졌다면 250년은 훨씬 넘은 나무입니다. 구불구불한 기와 담장을 따라 대나무와 노거수의 풍경이 예뻐 추억으로 남겨보았습니다.

남해여행의 첫 시작 남해대교와 충렬사! 의미 있는 곳이니 꼭 방문해 보시길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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