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입주하게 될 50명의 청년들이

인쇄소 사장님처럼

오래 공주에 정착해 주길 바라며,

밝은 미래와 순항을 응원합니다.

공주시는 지난해 6월 '지역상생 포럼'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지역과 청년이 함께하는 청년타운조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은 68억 원을 들여 원도심에 추진 중인 청년타운 조성의 발전 방향과 민관 협력을 통해 청년의 지역 정착 유도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올 9월부터 '청년 (맞춤형) 공유주택' 조성 사업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청년 공유주택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인 네 곳(금강안마, 중동리빙텔, 수정여인숙, 궁월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산성동의 '금강안마'

공산성 진남루(鎭南樓) 출입로 전경

공주시 백제왕도 세계유산 탐방 거점(가칭)

먼저 들여다볼 곳은 공주시 법정동의 한 곳인 산성동(山城洞)에 있는 '금강안마'입니다. 산성동이라는 동명(洞名)은 쌍수산성(현 공산성)에서 명칭이 유래합니다. 그러나 2008년 10월 20일, 산성동과 웅진동 주민센터(현 행정복지센터)가 통합되면서 산성동은 법정동으로 남게 됐습니다.

구 시외버스터미널

가칭 '공주시 백제왕도 세계유산 탐방 거점'이 들어설 부지는 옛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공주에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한 건 1910년대 무렵이라고 합니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부설된 이후, 공주와 조치원을 잇는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되었다고 하네요. 1960년대까지 각각의 버스회사들은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용어로 '차부(車部; 자동차의 시발점이나 종착역에 마련한 차의 집합소로 차고지를 말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북쪽 저습지들이 매립되면서 산성동과 앞으로 돌아볼 중동 일대로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공주에 종합터미널이 생긴 건 1960년대 이후입니다. 몇 번 자리 이동이 있었는데, 산성동에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선 건 1970년대라고 합니다. 그 앞쪽에 광주고속터미널이 들어선 것도 같은 무렵이며, 주변에는 화물회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7년 백제대교가 개통된 이후 1991년 시외버스터미널이 신관동으로 이전되게 되고, 산성동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판이해집니다.

스파르타짐 건물 뒤편에 청년공유주택이 조성된다.

산성동에 공주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시절 맞은편에는 공주산성시장이 자리해 있으니, 공주시 인구가 20만 명을 훌쩍 넘기던 1970년대~1990년까지 이곳이 얼마나 번화했던 곳인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터미널 주변은 물론이고 지금의 중동교차로 인근까지 숙박시설인 여관과 여인숙이 다수 들어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1980년대 진남루 출입로 입구에 '산성파크호텔(보석사우나 자리)'이 들어서긴 했지만, 몇 년을 못 가 영업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뻔한 사람들이 며칠 혹은 달방을 얻어 타지에서 묵어가야 했기에 숙박시설의 흥망성쇠가 좌우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옛 공주침례교회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청년공유주택이 조성될 금강안마 건물이 나온다.

금강안마 본채

산성동에 들어설 청년공유주택 예정지는 옛 공주침례교회 오른쪽 골목 안 '금강안마'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입니다. 건물 안팎에는 "본 건물은 공주시 소유로 '청년 공유주택 조성사업'을 위해 리모델링 예정입니다. 무단침입 및 불법 점거를 금합니다.(중략)"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붉은색 건물이 퍽 인상적입니다.

붉은 벽돌 건물 창가에 GS (금성)로고를 단 에어컨 실외기가 부착돼 있다.

금강안마 별채

창문에는 왕관 이미지에 'GS' 로고를 단 실외기가 부착돼 있었습니다. 1995년 LG전자로 사명(社名)이 변경된 금성전자주식회사에서 생산한 에어컨 실외기입니다. 붉은 벽돌로 새단장은 했지만, 금강안마 건물의 건축연대를 눈속임할 수 없는 증거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습니다. 본 건물 뒤편의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 대변인입니다. 앞 건물과 달리 진짜 붉은 벽돌로 지은 건축물입니다.

지난 2017년 서울시 성동구는 '붉은 벽돌 건축물 보전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역사 및 문화적 가치가 높은 붉은 벽돌 건축물의 보전과 지원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성수동의 30여 곳은 지원 사업까지 벌인 것으로 압니다. 서울시 성동구에서 붉은 벽돌 건물에 지원하는 이유는 1970년~1990년대에 지어진 성수동의 공장, 창고, 주택들이 지역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금강안마가 자리한 골목 안에는 붉은 벽돌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작년부터 인근 주택 몇 채는 재건축을 하면서 구옥이 가진 건축미와 생명력을 잃어서 안타까움이 더 합니다. 공주시에서 신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기에 독특한 구조의 금강안마 별채 건물이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공주 중동여관골목의 '수정여인숙'과 '중동리빙텔'

웅진로(熊津路) 왼쪽에 중동여관골목이 있고, 오른쪽에 중동 147번지가 위치한다.

'중동리빙텔' 건물은 청년공유주택 예정지 중 가장 먼저 리모델링이 추진되어 11명의 입주자를 모집 중에 있다.

리모델링 전의 중동리빙텔

다음으로 돌아볼 곳은 중동(中洞)에 있는 중동리빙텔과 수정여인숙입니다. 중동은 공주의 중앙에 있는 법정동입니다. 제민천(濟民川)을 양쪽으로 시가지가 대규모로 조성돼 있고, 시가지는 상업 지구와 주거 지구로 분화돼 있습니다.

중동에는 지역민들 사이에서 여관 골목 또는 여인숙 골목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청년 공유주택이 들어서는 곳이 그곳에 있습니다. 네 곳 청년 공유주택 예정지 가운데 가장 먼저 사업이 착수된 곳은 중동리빙텔(중동2길 21)입니다. 올봄까지 건물 앞에는 공주시 사업지임을 알리는 현수막만 걸려 있었는데, 올 7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네 곳 사업 예정지 중에 가장 나중에 지어진 건물로 보입니다. 청년 공유주택 조성 사업은 일반 주거용과 오피스텔용으로 나누어 추진된다고 듣고 있는데, 중동 여관골목에 있는 대상지는 주거용으로 개축될 듯합니다. 중동리빙텔은 10월 28일(월)부터 11월 12일(화)까지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중동 여관골목 전경

중동리빙텔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면 금강안마와 같은 외부 마감재로 지어진 '동방여인숙'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남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수정여인숙이 나옵니다. 수정여인숙은 약 50평(165.3㎡) 규모로 정밀진단과 구조보강, 리모델링 비용으로 13억 원이 예산으로 책정됐다고 합니다. 사업 대상지 네 곳에 투입되는 예산이 68억 원이라고 하니 한 곳에 드는 예산은 대동소이할 듯합니다.

중동여관골목 안쪽에 수정여인숙이 자리한다.

중동여관골목의 수덕여인숙 건물의 타일벽과 쇠창살 등은 1970~1980년대에 쓰인 건축자재를 보여준다.

수정여인숙이 있는 골목은 식당과 주점 간판이 보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대림장여관, 산호장여관, 반도여관 등의 숙박시설이 더 많았던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골목에서 눈여겨 본 곳은 골목 초입에 있는 수덕여인숙 간판이 걸린 건물입니다. 이곳을 '대림장여관'이 있던 자리로 기억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대림장은 당시에 시설이 아주 좋은 축에 속했어."라고 하십니다. 빈 건물로 꽤 오래 있었는데도, 모던한 벽면 마감재나 창문 주위를 장식한 타일만 봐도 허튼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산성동에 있는 금강안마에서 중동에 자리한 수덕여인숙까지는 근거리입니다. 주택가를 경유해서 오가다 보면 수덕여인숙 건물 외벽 타일과 동일한 타일을 창가에 두른 집들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이 타일은 1960~1980년대에 사용되다 단종됐다고 하니, 새로 지은 주택이든 개축한 주택이든 대략 건물이 지어진 때를 어림할 수 있습니다.

유진건설 건물 자리에 충남여객과 호서화물이 있었다.

중동 골목에 여관이나 여인숙이 많은 건 왜일까요? 구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았던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현재 중동여관골목 맞은편에 보이는 유진건설 건물은 운수회사인 호서화물과 충남여객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 일대를 흔히들 중동147번지(중동 먹자골목)라고 부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이기도 합니다. 중동 147번지의 1960~1980년대 상황을 들으면 중동 일대에 숙박업소가 많은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실 거예요.

공주 중동147번지 내에 자리한 '궁월장여관'

이학식당(현 안경원)이 있던 자리에 택시회사의 터미널이 있었다.

충남역사박물관 입구 좌측 건물도 택시회사 터미널이 있었다.

호서화물과 충남여객이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택시회사 터미널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주국밥 원조로 알려진 구 이학식당 자리와 그 건너편 일대가 택시들이 들고나던 곳이라고 하네요.

동 147번지의 한스델리 자리는 태극당이 있었으며, 그 바로 옆에 칠성당이 자리했다.

중동 147번지의 CNA자리에 난초다실이 있었으며, 지난해 난초다실이라는 상호의 다방(?)이 이전해 왔다.

택시회사 뒤쪽으로는 일본인이 운영한 미원이라는 요정을 비롯해 방원, 춘원 등의 요정이 있었고, 1960년대에는 공주에서 처음으로 왕궁다방이 영업을 시작했다고도 합니다. 아이스께끼와 찹쌀떡으로 유명세를 떨친 태극당이며, 일본식 센베이로 명성이 자자했던 칠성당도 근방에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가 하면 호서화물과 충남여객이 뒤편으로는 중식당인 신흥루와 신흥원, 복산춘, 부흥루 등이 밀집해 있기도 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수를 뽑는 공장도 있었다고 합니다.

귀한 정보를 주신 원주민들의 말씀을 정리하니, 1918년 공주시가지 정비 계획에 의해 대통교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상권이 공주 갑부 김갑순의 투자로 중동 147번지로 이동하여 1990년때까지 번성한 듯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91년 구 시외버스터미널이 금강 너머 강북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강남의 상권은 재도약을 꿈꾸며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청년공유주택 예정지인 궁월장여관

주차장 완비라는 글귀와 알루미늄 창틀이 눈에 띈다.

그럼 중동147번지 내의 청년 공유주택 조성 사업지는 어디일까요? 중동 147번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궁월장여관입니다. 금강안마와 마찬가지로 GS라는 로고의 실외기가 창문마다 설치된 걸 봐서는 엇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얼마 전, 중동리빙텔에 이어 리모델링에 착수하기 위해 현수막을 제거한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상권에서 들으니, 궁월장여관은 오피스텔형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될 예정이며, 50명의 입주 청년 중 8명이 입주하게 될 듯합니다.

중동 147번지에서 50년 동안 영업해온 인쇄소는 택시회사의 차고지였다.

궁월장 건너편에는 인쇄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 이학식당 자리에 있었다는 택시회사의 차고지가 자리입니다. 50여 년 동안 인쇄업을 이어오고 계신 사장님은 같은 일을 50년 넘게 하고 있어 부끄럽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또는 예상과 다르게 영업이 안 돼서 1년도 채 안 돼 가게를 접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같은 때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오는 11월, 2022년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중동과 산성동 4개 구역에 조성 중인 청년 공유주택 첫 건물의 준공식이 예정돼 있습니다. 앞으로 입주하게 될 50명의 청년들이 인쇄소 사장님처럼 오래 공주에 정착해 주길 바라며, 밝은 미래와 순항을 응원합니다.

공주시청

위치 : 충남 공주시 봉황로 1 공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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