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해랑] 해운대가 등장하는 문학작품, 음악작품, 출신인물 등
안녕하세요. 해랑10기 SEDA입니다.
이번 주제는 #해운대라는 지명이 등장하거나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및 음악작품 그리고 출신 인물들을 찾아봤습니다.
- 문학작품 -
해운대관련 문학을 살펴보기 전, 수많은 작품에 해운대라는 명칭이 등장할 수 있었던 유래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해운대(海雲臺)’라는 명칭은 신라 시대 문학가 최치원(崔致遠)이 낙향하면서 해운사로 들어가는 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주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선생의 자(字) ‘해운(海雲)’을 암석에 세글자로 음각했다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려 후기 정포의 시<해운대>
정포 1309~1345
해운대는 최치원을 흠모하는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자주 찾는 명소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인 고려 후기 문인 정포가 지은 시는 문헌상 최초로 해운대를 노래한 시로 남아있습니다. 해운대 석각을 보고 읊었다고 합니다.
落日逢僧話(낙일봉승화) 저물녘 스님을 만나 애기하다가
春郊信馬行(춘교신마행) 말이 가는대로(믿고) 봄 교외를 가네
烟消村巷永(연소촌항영) 안개 걷힌 시골거리는 기다랗고
風軟海波平(풍연해파평) 바람은 순하여 파도는 잔잔하네
老樹依巖立(로수의암립) 늙은 나무는 바위에 기대어 서있고
長松擁道迎(장송옹도영) 장송은 길을 감싸고 둘렀네
荒臺漫無址(황대만무지) 황폐한 대는 휑하니 터도 없지만
猶說海運名(유설해운명) 아직도 해운이라 이름를 말하네
※ 해운대 석각 : 암반에 '海雲臺(해운대)' 세 글자를 새긴 석각(부산시 기념물 45호)
정포의 시처럼 해운대의 전경을 노래한 시에는 조선 전기의 문인 성현의 「해운대」,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해운대」, 신오의 「해운대」 등이 있습니다.
남효온 <유해운대서 遊海雲臺序>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추강 남효온의 기행 산문 중 <유해운대서>는 귀경 길에 들른 동래 해운대의 뛰어난 경치를 찬미한 수필입니다. 첫 문단에 해운대라는 지명이 유래되는 최치원의 기술되며 해운대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안눌 <해운대에 올라 登海雲臺 >
1571~1637
석대천척세능운 (石臺千尺勢凌雲) 구름을 넘어설 듯 누대는 천척 높이고
하감부상절점분 (下瞰扶桑絶點氛) 굽어보는 동녘바다 티 없이 맑구나
해색연천벽무제 (海色連天碧無際) 바다와 하늘빛은 가없이 푸른데
백구비거배사훈 (白鷗飛去背斜曛) 나는 갈매기 등 넘어로 노을이 불타네
푸른 물빛과 똑같은 푸른빛의 하늘이 이어져 끝없이 펼쳐진 해운대의 절경에 감탄하며 한폭의 그림처럼 표현한 시입니다.
윤순지 <내산만점 萊山謾占>
1591 ~ 1666
윤순지(尹順之)[1591~1666]가 1643년(인조 21)에 통신사 정사(正使)로 일본에 가기 위해 부산에 머무르던 중 지은 한시로, 문집인 『행명재 시집(涬溟齋詩集)』 권3에 실려 있습니다.
고전 문학 외 현대문학에서는 해운대가 배경이 되고 지명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현대 문학"으로 소개된 글이 뛰어나 발췌하여 남겨봅니다.
문학 작품 안에서도 이미 이광수(李光洙)[1892~1950]의 기행 수필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에서 해운대의 진경은 ‘야(夜)’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월야’임을 강조하며 달밤의 해운대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달밤의 해운대는 최서해(崔曙海)[1901~1932]의 소설 「누이를 따라」에서도 세밀하게 묘사된다. “…… 바다는 달빛에 잠겨서 전면에 은빛이 굼실거렸다. 그 위로 미끄러져 나가는 두어 개의 돛도 달지 않은 어선은 수묵을 찍은 것 같다.” 바다를 바라보는 맛이 “옛날 한시를 읽는 맛”으로 비견될 만큼 멋스러움을 지닌 장소로 묘사된다.
이 아름다운 장소가 남매의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 장소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곧 이 장소가 자진 생(生)과 사(死)의 역설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장소적 의미와도 관련 있다. 왜냐하면 수평의 최극단인 바다가 내포하고 있는 피안의 세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일상에서 해운대가 절망과 고뇌에 찬 사람들의 소망을 비는 장소로 될 수 있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유익서의 「바위 물고기」[2003]에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주인공이 과거 자신의 소망을 빌었던 장소였던 해운대에서 자신처럼 절망에 찬 사람들이 비원을 하는 것을 본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적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해운대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역설적 장소이면서도 특히 ‘재생’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장소성은 이태준(李泰俊)[(1904~1956]의 「석양」, 유진오(兪鎭午)[1906~1987]의 「화상보」에서도 잘 나타난다. 매천과 그의 여인 타옥의 재생, 즉 약혼자를 만나러 가는 타옥은 더 이상 숭고하고 탈성화된 여성상이 아니라 현실의 새로운 육체를 얻어 생활 속으로 나가게 되고, 매헌은 그런 그녀를 보내며 해운대의 석양을 바라보는 것으로 「석양」은 결말을 맺는다. 「석양」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 경주와 비교를 통해서 해운대의 공간성이 뚜렷해지는데, 소멸해 가는 과거의 표상으로 등장했던 경주와 달리 해운대는 새로운 신생의 공간으로 대두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육체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된다.
유진오의 「화상보」[1939. 12~1940. 5 『동아 일보』 연재] 역시 낭만적 사랑이 완성되는 공간으로 해운대를 제시하고 있다. 식물학 연구에 전력하는 교사 장시영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음악가 김경아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으로, 당대 조선의 지식인 사회의 교양에 대한 서사를 펼쳐 보인다. 여기에서 장시영과 김경아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해운대인 것이다.
김정한(金廷漢)[1908~1996]의 「그러한 남편」[1939] 역시 소설 안에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에 결정적인 원인 제공을 한 장소가 “바다에 미친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는” 늦은 여름의 해운대인 것이다. 하숙집 처녀와 하숙생인 군청 공무원의 해운대 행을 통해 1930년대 청춘남녀의 해수욕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그 자체의 정경만으로 낭만적 사랑의 메신저가 되었던 해운대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더 이상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추리 소설 작가 김성종은 『백색 인간』[1981], 「국제 열차 살인 사건」[1987]에서 해운대를 범죄와 욕망이 얽힌 추리 공간으로 해운대를 불렀다. 특히 「국제 열차 살인 사건」은 단순한 뺑소니 사고에서 출발하여 마약 운반, 살인까지 하게 되고, 그 무대도 파리, 로마까지 확장되면서 국제적 스케일의 범죄와 연관된 해운대를 그려 낸다.
김설의 『게임 오버- 수로 바이러스』[1997]도 유사하다. 주인공인 백수 수로가 우연히 끼어든 조직 간의 마약 범죄를 전자 미로 게임으로 바꾸어 현실의 절망적 미로를 말하고 있다. 1980년대 마약 조직의 리얼에서 1990년대 디지털 세대의 특징인 전자 게임이라는 미로를 하나 더 보태서 해운대를 더욱 복잡한 미로의 공간으로 선택하고 있다.
2000년대 이상섭의 「우리는 원시 시대가 그립다」[2000]에서 몸을 파는 10대 가출 소녀와 스쿠터를 타고 여관에 야식을 배달하는 사내아이의 눈을 통하여 시궁창 같은 욕망이 흐르는 해운대를 그려 내고 있다.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
- 음악작품 -
손인호 <해운대 에레지>
1961
2000년 해운대구청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해운대를 가장 잘 나타낸 노래'로 선정된 '해운대 엘레지"는 1961년 백영호 작곡, 한상도 작사, 가수 손인호가 불렀습니다. 당시해운대 엘레지가 나왔던 때에 해운대는 신혼부부들의 인기 여행지였다고 합니다.
여행지로서 연인들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지만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도 있을 겁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담은 곡으로 떠나간 여인을 그리는 애끓는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나도 모르게 해운대 바다를 정처없이 바라보게 되는 슬픈 곡이었습니다.
이 곡은 전체 3절의 장절 형식으로 구성된 곡입니다.
1절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더냐
세월이 가고 너도 또 가고 나만 혼자 외로이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 못 잊어 내가 운다
2절
백사장에서 동백섬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오고 또 가는 바닷물 타고 들려오네
지금도 이제는 다시 두 번 또 다시 만날 길이 없다면
못난 미련을 던져 버리자 저 바다 멀리멀리
3절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 조각달도 기울고
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 밤이 깊은 해운대
나는 가련다 떠나가련다 아픈 마음 안고서
정든 백사장 정든 동백섬 안녕히 잘 있거라
전철 <해운대연가>
2002
밤바다 떼창곡인 여수 밤바다가 있다면 이보다 20년 전인 2002년에 발매된 <해운대연가>도 있습니다.
장르는 트롯이며
"푸른물결 춤을 추고 물새 날아드는 해운대의 밤은 또 그렇게 지나가는데
솔밭길을 걷던 우리들의 사랑얘기가 파도에 밀려 사라지네
하얀 모래밭에 사랑해란 글씨를 쓰며
영원히 날 사랑한다 맹세하던 그대
널 널 널 사랑해
떨리는 내 입술에 키스해주던 너
보고싶은 사람 추억속에 그대
해운대에 사랑이여"
바이브 <해운대>
2014 / Feat. Kang MinKyung(강민경) Of Davichi(다비치)
바이브의 "해운대" 라는 곡은 는 해운대 앞바다에서 옛 여인을 기억하는 발라드입니다. 다비치의 강민경이 "오빠야~" 라는 사투리 피처링은 애절한 사투리 음성이 부산만의 특색을 담았고, 해운대적인 현대식 정서가 담겨 있어 특별했습니다.
"해운대 그 바다에 우리 이야기/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내 마음도 몰라주는 부산 갈매기/ 네가 그녀에게 전해주렴 나의 이야기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차마 네게 하지 못했던 그 말
해운대 앞바다에서/ 너는 내 품에 안겨서
오빠야~ 사르르 녹던 밤/ 오빠야~ 와르르 무너지던 밤/ 그 바다에 너를 모두 던져버렸어…"
대표곡들로 살펴보았는데요, 음악작품 속에 등장한 해운대라는 지명, 배경은 집나간 그리움도 생겨날 정도의 강력한 애절한 정서를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해운대 바다의 감성이...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해본 음악작품들이었습니다.
- 해운대구 출신 인물들 -
해운대역사관에 기록된 해운대인물들!
우동 문화복합센터 1층에 있는 "해운대역사관"에 가면 우리 고장을 빛낸 인물들을 시대별로 기록한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동래향교 위패를 지킨 양조한, 임란창의공신 양통한, 선무원종공신 문세휘, 단지효행을 행한 천성태, 선비의 표상 반계 정기진
근현대에는 독립투사 정인찬 선생, 장인 조봉달 대목수, 항일 촛불시위 박영출, 서예가 박명찬 선생 등의 업적과 행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분들 중 몇 분의 행적을 조사하여 포스팅해봤습니다.
★ 임란창의공신 양통한
반송동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삼절사"에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양씨 일가의 위패가 모셔진 곳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경기도 광주 군수로 성을 지키다 순국한 양지, 동래성에서 순국한 양조한,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에서 의병활동을 하다 순절한 양통한 세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들 중 임란창의공신 양통한 의병장의 이야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양통한(梁通漢)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형 양조한이 동래읍성 정원루에서 순절하자 의병이 되기로 마음먹고, 그해 6월 경주성 탈환을 위해 반월성 아래 강가에서 결성된 최초의 의병단인 문천회맹(蚊川會盟)에 참여하였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들 양의와 양숙을 데리고 그해 7월 방어사 곽재우(郭再祐)와 화왕산회맹을 결성, 화왕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성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중에서)
★ 독립운동가 박영출
(1908~1938)
박영출은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된 해운대구의 자랑스런 독립운동가입니다. 1907년 기장 동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25년 동래고등보통학교 재학당시 조선어 사용금지와 식민지교육 순종, 부당한 교육방침과 학생 3명 퇴학에 분노하여 400여 명을 규합해 동맹휴학을 주도했습니다.
1926년 기숙사 사감의 조선인 학생 비하 발언에 비분강개해 장산 촛불 시위사건을 주도하고 퇴학을 당했으며,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경도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을 졸업하고 귀국해 일제식민지교육정책에 대항하여 민족주의, 자유주의 교육의 실시를 주장했습니다. 1934년 독립투사 10명으로 구성된 조선광복청년회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활동하는 등 일제의 비인도적 처사에 항의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1938년 8월 31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고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연화봉에 묘소가 있습니다.
현대 해운대 출신 유명인 ... 해운대 출신 가수 "설운도"
가수 설운도님이 2022년 해운대구 홍보대사에 위촉되었습니다.
1958년 해운대구 중1동에서 태어났으며 1983년 ‘잃어버린 30년’으로 데뷔한 이래 ‘나침판’ ‘다함께 차차차’ ‘사랑의 트위스트’ 등 50여곡을 불렀으며, 별빛 반짝이는 해운대를 생각하며 작사·작곡한 임영웅의 곡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명 연예인으로 자이언트 핑크, 경리, 정은지, 한선화, 서인영, 강승윤,임수향 등 해운대 출신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해운대가 배경이 되어 그려진 문학작품, 음악작품들과 해운대의 인물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내 고장 해운대가 세계적인 도시로 뿜빛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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