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NS 홍보요원 기은주 입니다.


청산리 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을 모신 곳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다녀왔습니다.

입구에서 보면 주차장 앞으로 장군의 묘가 있어

이곳을 지나가는 관람객에게

쉼터 외에도 여행코스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죠!

김좌진 장군에 대해 잠시 살펴볼게요.

김좌진 장군은 1889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김형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본관은 안동, 호는 백야 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였으며,

김광호, 김동익, 김복한에게 가르침을 받아

민족 수호 정신을 함양하였습니다.

청산리전투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주축이 된 독립군부대가

1920년 10월 만주 허룽현 청산리 백운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물리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성과를 이룬 전투였습니다.

지난 2020년은 청산리 전투 100주년이었고,

김좌진 장군의 순국 90주년이었죠.

묘비석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외삼문인 충의문이 있습니다.

청년 김좌진은 1911년에는 북간도에

독립군 사관학교를 만들기 위한 자금 조달 중

체포되어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항일 투쟁을 벌였습니다.

1918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 신도가 되었으며,

무오독립 선언서에 민족 지도자 39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시면서 본격적인 항일 운동을 하셨습니다.

충의문을 지나면 제실인 백야제가 있습니다.

장군은 1919년 북로 군정서 무장 독립군 총사령관을 맡았고,

1920년 10월 독립군 연합 부대와 함께 한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겨 무장 독립 투쟁 역사상

가장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전투가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리 전투인데,

백야제에서는 매년 10월 22일

김좌진 장군 추모식을 열고 있습니다.

이제 곧 추모식이 열리겠네요.

백야제를 지나서 계단을 오르면

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6일동안 벌인 전투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군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이 주축이 되어

일본군을 대파하였습니다.

장군의 말이 옆을 지키고 있는 듯한

김좌진 장군의 묘비에는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묘’

이런 글이 새겨져있습니다.

독립운동 중이었던 1930년 박상실에게

암살당한 후 100일간의 사회장으로 장례를

마치고 자경촌의 뒷산에 묻혔는데

일본인들이 자경촌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은 1934년 4월 시신을 국내로 옮겨

충남 홍성에 밀장하였습니다.

1957년에 다시 그의 아들 김두한이 어머니와

함께 현재의 위치인 충남 보령에 이장했습니다.

보령 청소면에는 오늘 찾아가본

김좌진 장군 묘역뿐만 아니라

'영화 택시운전사'의 촬영지였던

청소면청소역을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묘에 담긴

이야기 어떠셨나요?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던 장군님의

넋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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