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공주의 과거를 기억해주는 옛 공주읍사무소를 가봤어요.
공주 가볼만한 곳
옛 공주읍사무소
보통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제3의 눈을 가졌다고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레이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관점을 투과하고 나서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비를 하다가 다시 정비를 끝낸 공주의 옛 읍사무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옛날에는 저 건물은 공주의 중심지에서 행정을 모두 관할했었다고 합니다. 공주는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근대의 도시이기도 하며 한옥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도시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기도 했습니다.
근대건축방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인들은 하나의 층에서만 살아왔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한옥의 지붕은 내리는 비를 아래로 내리기 위해 기울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초가집으로 지었고 양반들은 기와집으로 지어 살았는데요. 켜켜이 쌓인 기와는 상당한 무게를 지녔기에 그만한 기둥이 필요했고 기둥을 받칠 초석도 필요하며 대들보 역시 그만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지붕이 평평한 것을 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이 지은 근대건축물의 천장은 양식을 제외하고 평평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월당 윤여헌의 삶과 기록이 담겨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느 법학자의 공주향토사애가 담겨 있는 공주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1928년 탄천에서 태어난 공주사람 윤여헌은 중학동으로 이사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공주시내로의 이사는 자식 교육을 위한 부모의 선택이었다고 하는데요. 윤여현은 1937년 현 공주중동초등학교의 전신인 공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계속 공주의 학교로 진학을 하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식민교육정책이 더욱 강화된 시기였습니다. 조선인을 황국 신민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어가 생활화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아는 것, 즉 지식에 대한 욕구가 상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사 연구에서 각종 언어를 배웠으며 그림을 좋아하다가 글씨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그림과 글씨를 다 함께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삶이 마치 중첩된 것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사람의 생을 현재에서 과거를 시간으로 나누듯이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보일까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는 공간입니다.
공주의 옛 거리를 보면 지금 남아 있는 것과 터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옛날 사람이어서 이런 건물을 많이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공주의 도심에 남아 있는 근대화 건물들이 어떤 것이 있나 살펴봅니다.
2층에 올라와보니 유관순열사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자면 유관순 열사이지만 정말 나이가 어린 소녀에 불과했었던 사람입니다.
이곳은 옛 읍사무소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보이는 곳에서 더 많은 것을 했었을 겁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그만큼 사람마다 대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보는 것은 똑같은데 생각하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옛 공주읍사무소는 잘 보존되어 있어서 옛날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어서 의미있게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옛 공주읍사무소
위치 : 충남 공주시 우체국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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