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 여행 / 영천 만취당 고택

만취당이란 사랑채의 이름

무인 조학신이 건립한 살림집.

영천 만취당 고택은 경북 영천 여행에서 만나는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의 건축양식과 주생활 공간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932~1780)에 의해 1781년에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만취당을 보기 위하여 오계리 종동마을로 향합니다.

만취당 고택을 찾아오시는 길은

경북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271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만취당 고택이 보이는 곳 입구에 공터가 보이는데

이곳에 주차한 후 차 한 대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입구를 만나게 됩니다.

대문채 옆에는 광명헌이라고 하는 새 사랑채가 있으며,

광명헌, 별묘, 보본재 등은 모두 후대에 지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문채는 솟을문이 있어 이곳이 주 출입구가 되며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여 줍니다.

사랑채 대청마루 벽면에는 만취당 편액이 걸려있는데요.

이곳 사랑채를 만취당으로 부릅니다.

만취당은 晩(저물 만), 翠(푸를 취)를 써서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푸르름

곧, 늙어서도 지조를 바꾸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곳 사랑채를 큰 사랑채라 부르는데요

왼쪽부터 두 칸이 사랑방이고 큰 마루와 제방이 한 칸씩인데,

제사를 지낼 때 여성 제관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제방을

사랑채에 마련한 예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대청마루의 판문을 개방한 상태에서 보니 바로 뒤편의 벌묘가 바로 보이는데요.

재방의 뒷벽에는 두 짝 여닫이 살문을 달아 제사를 지낼 때 편리하게 하였습니다.

만취당은 조석환 씨가 대한제국 말 독립군의 군자금 헌납 사건으로

일제 관헌에 의해 재해를 당한 것을 중수한 것입니다.

큰 사랑채의 좌측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이는데요

중문과 함께 접한 방은 중사랑채이며 중 사랑방과 마루가 보입니다.

중문으로 들어가면 'ㅁ' 자형의 안채가 보이는데요

4칸의 중앙부는 남향이며 마당을 에워싸듯이 뻗은

양익은 동향 그리고 서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채의 서향에는 부엌 3칸과 고방 2칸이 있으며,

안채의 동향에는 작은방 1칸과 아랫방, 마루방이 있습니다.

보본재와 사당의 모습입니다.

만취당은 큰사랑채(만취당), 중 사랑채, 새 사랑채(광명원),

안채, 사당, 별묘(체천위 별묘), 재실(보본재) 등

여러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한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모여서

하나의 주거 공간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조선 후기 한옥입니다.

만취당 고택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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