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대구 중구 여행지,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 터'
대구 중구 여행지, 삼성그룹의 모태 '삼성상회 터'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삼성상회 터는 1938년 3월 1일
호암 이병철 회장이
28세 되던 해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현재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창립 70여 년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이 태어난 곳이
바로 대구입니다.
삼성의 탄생지인 것은 물론
감성이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 잡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삼성을 키운 도시 대구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삼성의 발상지가 대구라는 사실은
보존하고 발전시킬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삼성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옛 제일모직 부지에 들어서 있는
대구 창조경제단지를 통해
대구와 삼성은 더욱 큰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당시 삼성상회 건물은
5평 남짓한 사무실과 작은 공장,
전화기 한 대, 국수기계 등이 있던
공간이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2001년에 삼성상회 터를 기념해
1/250로 축소한 청동모형을 설치했습니다.
이곳에서 별표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대구 근교의 각종 청과물, 건어물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로 수출을 하며
사업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삼성상회는 서울로 상경하고
국수 회사로 1960년대까지 존속했다고 합니다.
삼성상회는 삼성의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이 첫 사업을 시작한 곳으로
기념공간은 삼성상회 터에다
크레텍책임(주)이 대구시에
기부 채납한 땅을 합해
모두 215.9㎡(65평)규모로 조성했습니다.
삼성상회 터는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속합니다.
크레텍책임(주) 벽에 붙여놓은
1997년 7월 삼성상회의
컬러사진 모습입니다.
옛 삼성상회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구시 인교동 61-1번지.
대구 서문시장 한편에 옛 건물을
부조식으로 만든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주변은 조그마한 공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삼성의 발원지'
삼성상회 터 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기업인
삼성이 태어난 곳입니다.
한국 재벌의 발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삼성의 발자취를 6개의 주제로
한글에 영문을 병기해서
게시판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역사는 이곳에 세워진
작은 목조건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삼성상회를 설립한 1938년은
삼성의 원년이 되었으며,
이렇게 유래한 삼성이란 이름은
영원할 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도 가느다란 뿌리로부터
생명을 얻고 거대한 물줄기도
작은 샘에서 출발하듯
세계를 향한 삼성의 꿈이 이곳에서
발원하였기에 삼성은 여기에
삼성상회 기념의 자리를 마련하고
언제나 그 초심을 기억하겠습니다.
삼성상회를 설립하기전 호암 이병철 회장은
사업구상을 위해 수개월에 걸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국내 여러 도시와 만주, 북경, 상해 등지를
돌아본 끝에 소자본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무역업을 선택하고 1938년 3월 1일,
대구상업활동의 중심지였던 서문시장 한편에
주식회사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당시 대구 서문시장은 경부선 철도와
여러 국도를 통해 북쪽으로는
안동, 의성, 김천, 상주.
남쪽으로는 현풍, 고령.
서쪽으로는 성주까지 열결되어
각종 생필품과 농수산물, 포목, 가죽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광복 후 삼성물산공사로 발전하여
서울로 근거지를 옮길 때까지
약 9년간 삼성상회는 서문시장의
좋은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지금의 삼성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삼성의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크고, 많고, 강하며, 완전한 존재를 나타내는
숫자 3에 밝고, 높고, 깨끗이
그리고 영원히 빛난다는 의미인 성을 합쳐
삼성이라 하고, 여기에 크고, 강하고, 영원하라는
메세지를 담았습니다.
그 후에도 호암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때
제일이나 중앙과 같은 이름을 붙여
최고를 지향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의지를 반영하였습니다.
삼성상회 건물 1층의 오른쪽에는
모터시로가 함께 제분기, 제면기가
왼쪽에는 응접실과 온돌방,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건물 뒤에는 밀가루와 국수를 쌓아놓는 창고가 있었고
2, 3, 4층은 국수 건조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화기 한 대와 40여 명의 종업원으로
출발한 삼성상회는 대구 근교의 청과물과
동해안의 건어물 등을 모아
만주와 북경 등지로 수출하였습니다.
또한 제분기와 제면기를 갖추고
국수 제조업도 병행하였는데
삼성상회에서 생산한 별표국수는
인기가 높아 국수를 구입하기 위해
도소매상들이 끌고 온 짐 자전거와
소달구지 등으로 건물 앞은
언제나 북적거렸습니다.
호암은 가족과 함께 이 건물의
한 편에서 곁방살이를 했습니다.
삼성상회가 거둬들인 이익을
살림집 장만에 쓰는 대신
고스란히 재투자했기 때문입니다.
1945년 광복 직후,
호암은 이곳 삼성상회에서
기업가의 임무를 새롭게 깨달으며,
삼성의 경영이념인 사업보국 정신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1910년 한일합병의 해에 태어나 성장한
호암은 그의 신념대로 전 생애에 걸쳐
사업을 통한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1934년 상업적 목조건물로 지어진 삼상상회는
지하 1층, 지상 4층에 건물 높이는 13m로
좌판이 대부분이었던 서문시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현대식 건물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벽돌, 콘크리트를 이용한
서양식 건축 기법이 혼합된 과도기적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도
60여 년간 건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해 온
삼성상회는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평가 받고 있었지만,
건물 노후화에 따른 붕괴위험 진단을 받고
1997년 9월에 해체되었습니다.
그 대신, 삼성상회가 있던 자리에
기념 조형물을 설치하여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기념공간에는 조부와
이병철 선생의 정신이 담긴
송악과 대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2001년에 삼성상회 터를 기념해
그 당시 삼성상회 4층 건물을
1/250로 축소한 청동모형을 만들어
유리상자 속에 설치했습니다.
당시 별표국수를 실어 날랐던
1/250로 축소한 소달구지 청동모형입니다.
당시 별표국수를 실어 날랐던
1/250로 축소한 인력거 청동모형입니다.
삼성상회 터 전경입니다.
- #대구중구
- #대구중구청
- #삼성상회
- #삼성상회터
- #삼성그룹
- #대구가볼만한곳
- #대구여행
- #대구나들이
- #대구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