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산여행 ]

괴산군 가볼만한곳

고즈넉한 풍경 청덕사

괴산 청덕사는 마을 입구에 통정대부 행사헌부

감찰공 휘 국주의 공적비명이 세워져 있습니다.

처음 방문할 때 이곳을 청덕사라고 하나?

라는 의문점이 들 만큼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방문객들로 하여금 괴산의 애국심을 공감하게 해줬습니다.

청덕사와 남파정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에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한불로 청덕 2길 15-1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괴산 군청에서 약 15분 이내 거리로

가볍게 방문하기 좋습니다.

청덕사 초입에 마주했던 “남파정”과 청덕사로 향하는

중간에 조성된 홍살문은

진안대군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라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그는 고려 우왕 14년에 밀직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습니다.

후일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대위에 오르자

왕위를 아우들에게 양보하고 고려조의 충신으로

불사이군의 뜻을 표하여

당시 어지러운 민심을 끌어안았습니다.

고향 함흥으로 낙향하는 정치적 포용력을 발휘한

몇 안 되는 곧은 선비 성격을 지닌 인물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자

여러 왕자들을 군으로 봉할 때

이방우도 진안으로 책봉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임금에 오른 일을

정당한 행위로 보지 않은 이방우는

고향인 함흥에서 그저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과거에는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393년 병을 앓다가 결국 별세하게 됩니다.

1398년 왕자에게 공이라 봉작되었고

1401년에는 작호를 개정하였습니다.

그 후 이방우는 다른 왕자들과 동등한 직위를 뜻하는

진안공, 진안 대군의 벼슬에 오르게 됩니다.

청덕사 사당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쳐마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한옥과 사당, 향교가 그러하듯이

우리나라 한옥 구조는 비슷하게 조성되었습니다.

청덕사 또한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조선시대 건축법을 배경으로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재미난 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청덕사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외삼문 안으로 들어가면

연못과 인도교 창립비가 존재합니다.

인도교 창립비는 1933년 후손인 이태호 선생이

인도교를 창립하면서 교리를 적어놓은 것을 뜻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참배했다 하여

광복 이후 주민들에게 의해 일부가 파손되는

안타까운 일들도 발생합니다.

청덕사 바로 앞에 세워진 남파정은

진안 대군의 후손인 이태호 선생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모금하여 1901년 건립되었습니다.

남파정은 마을 입구에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으로

전망대와 유사한 역할을 해줍니다.

이성계 아들 진안 대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을 둘러보면서, 드라마 속 인물들과

역사 속으로 기록되어 있는 그들의 삶의 차이를 비교해 봤습니다.

괴산 여행 중 문화재를 돌아보고 배우며

나를 생각하게 했던 몇 안 되는 관광코스로

이웃님들도 즐거움을 즐겨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괴산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오시는길

청덕사 : 충북 괴산군 불정면 한불로청덕2길 15-1


{"title":"[SNS서포터즈] 괴산여행 고즈넉한 풍경 청덕사","source":"https://blog.naver.com/goesan-gun/223198577833","blogName":"괴산군청 ..","blogId":"goesan-gun","domainIdOrBlogId":"goesan-gun","logNo":223198577833,"smartEditorVersion":4,"lineDisplay":true,"outsid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caf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