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마침내. 휴가를 떠날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집이 곧 휴가지인데 뭘 또 굳이 시간과 비용과 체력을 소모하면서 다른 동네를 가보고 싶어 하는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자 평일에도 집으로 올라오는 도로에 자동차가 한가득이다. 계곡을 따라 빼곡하게 늘어선 캠핑장에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차로 15분 걸리는 유일한 마트의 주차장에는 차를 댈 곳이 없어 빙 돌아 골목에 주차를 해야 했고, 마트 안에는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강원도 산골을 찾은 여행객들이 들뜬 모습으로 장을 보고 있다. 우리 집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캠핑성지인 법흥계곡에 위치해 있다 보니 이렇듯 휴가철이 되면 활기가 넘친다. 8월의 중순을 넘기고 기분 탓인지 바람이 선선하다 느꼈을 때, 나도 휴가를 떠났다.

장소는 남해였다. 산에 살다 보니 바다가 보고 싶어서 남해를 택했다. 물론 동해도 좋지만, 특별히 이번 휴가지로 남해행을 선택한 건 다름이 아니다.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해는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고 자주 가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차를 타고 6시간.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오후가 늦어서야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해 다랭이 마을. 가파른 경사 사이로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남쪽 작은 시골 마을. 풍경 말고는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심지어 마을 안에 슈퍼나 편의점도 없는 마을이었지만, 오랜만에 맘 편히 바라본 바다와 낯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남해 다랭이 마을, 그다음은 은모래비치, 올라오기 전에는 통영까지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2박 3일의 일정이다.

바다가, 참 좋다. 사실 고백하자면, 예전에도 누군가가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나는 ‘바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서 ‘산에서 살고 싶어? 바다에서 살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산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니 지금 진짜 산에서 살고 있는 거겠지.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 그 바다너머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바다는 나에게 조금 무서운 세계다. 항상 잔잔하게 빛나는 게 아니라 언제 거칠고 흉포하게 모습이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바다를 조금은 무서워한다. 이렇게 가끔 찾아와 바라보는 건 좋지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 수는 없기에 산에 터를 잡았다. 산은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을 뿐, 그 형태는 정말 천재지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수천 년까지도 변함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안도할 수 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동네에는 들어서는 사람들과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영월의 매력은 포근하게 둘러싼 산들이 우리에게 안정과 안전을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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