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입니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친 곳입니다.

인천 계양구에 있는 부평향교는 1127년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래 당시 이 지역의 이름을 따 수주향교라 하였으나

1310년 부평부가 되명서 향교의 이름도 부평향교로 고쳐 불렀습니다.

원래의 향교는 병자호란 때 완전히 소실되어 1688년 지금의 위치에 재건하였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1980년대에 보수한 건물입니다.

'부평읍지'에 의하면 당초 부평향교에는 일반적인 향교 건물 배치인 대성전, 동, 서무, 동, 서재 이외에 전사청, 공수고 등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있지 않고 6동의 건물만 있습니다.

원래 향교 앞에는 홍살문이 있고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부평향교는 홍살문과 향교 외삼문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있어 홍살문을 먼저 만나기가 쉽지 않은 위치에 있습니다.

게다가 홍살문에서 향교 앞 도로까지 붉은 줄로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부평향교의 하마비는 홍살문 왼쪽 기둥 앞에 있는데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 :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와 문묘,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를 지칭하는 용어로, 향교 역시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마비를 세운 것입니다.

향교의 건물 배치는 평지의 경우 전면이 배향 공간이고 후면이 강학공간인 전묘후학(前廟後學) 방식을 취합니다.

구릉지인 경우에는 전학 후묘(前學後廟)이거나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기도 합니다.

부평향교 역시 구릉지에 축대를 쌓아 건물을 배치했기에 전학 후묘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외삼문은 향교를 출입하는 정문으로 출입할 때는 원래 동문(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서문(왼쪽 문)으로 나와야 하고 외삼문은 동문만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또 정문으로 3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은 신들이 다니는 신문(神門)이며 양쪽문은 사람들이 다니는 문입니다.

신문은 항당 닫아 두는 것이 관례이며 사람들이 다니는 문은 일반 참배객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문은 춘추 제향 등 행사 때 만 열어서 헌관(獻官)만 출입하게 하고,

일반 제관은 동입서출(東入西出) 즉 동문으로 들어가 서문으로 나옵니다.

외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이 있습니다.

명륜당은 향교의 유생들이 사서오경을 공부하며 지금의 강당 같은 장소로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각종 행사를 하던 곳입니다.

명륜당의 이름은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히는 것이다'라는

'맹자'의 한 구절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경사진 곳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 계단처럼

사용할 수 있게 널찍하게 세벌대 기단을 만들었습니다.

건물 중앙 3칸은 칸마다 세 살 창호로 장식한 2짝 여닫이문들을 달았으며

그 아래 댓돌을 놓아 출입하기 좋게 했습니다.

명륜당 뒤쪽으로 가면 동재와 서재 사이에 커다란 소나무가 있습니다.

입신양명을 목표로 노력하는 유생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륜당 뒤쪽에 있는 동재와 서재는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기숙사입니다.

향교의 유생들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했는데 일반적으로 동재에는 양반 자제들이 기거하고

서재에는 평민 자제들이 기거하였다고 합니다.

식당에 모여 식사한 횟수로 출결사항을 점검하였으며 일정 기간 이상 출석을 한 유생들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건축양식을 보면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정면 중앙 칸은 대청마루가 놓였고

측면의 앞 1칸은 툇마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방 구조를 보면 동재는 좌측 1칸이 부엌이어서 서재보다 방이 1칸 적습니다.

교육공간과 제사공간 사이에 있는 내삼문입니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있습니다.

대성전은 부평향교의 가장 안쪽에 있는 6칸의 건물로 제례를 드리는 공간입으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입니다.

부평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4대 성인과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립니다.

위패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 패입니다.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첫째, 학식이 풍부한 위인들을 기리고, 둘째, 그분들의 뜻을 받을 어 이어나가고,

셋째, 바르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 합니다.

안타깝게 내부는 공개돼 있지 않았지만 위와 같이 안내문을 통해 위패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대성전 앞 오른쪽에는 관세위라 쓰여있는 돌이 있는데요.

제향 때 제관이 손을 씻는 자리입니다.

동무와 서무는 원래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던 공간입니다.

그러나 1949년 전국유림대회의 결의에 따라 각 향교의 동무와 서무에 모셔져 있던 위패들은 모두 대성전으로 옮겨졌습니다.

대성전 좌측 뒤쪽으로는 나뭇가지마다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이곳 부평향교를 지켜온 듯한데 향나무에 수령, 높이 등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없어 다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향나무 아래 망료위(望燎位)라 쓴 자그마한 비석이 있는데 그 앞 땅에 너른 돌이 박혀있습니다.

이 돌 위에서 석전대제를 올릴 때 축문을 태우는 곳입니다.

향교를 둘러보고 나서 외삼문에 서면 바로 앞쪽에 홍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래는 향교에 들어올 때 홍살문을 먼저 거쳐야 하나 부평향교의 경우 앞쪽에 있는 차도로 인해 뒤늦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부평향교는 매년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학덕을 추모하여 지내는 제사

즉 석전의 봉향하고 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 부평향교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을 칠(chill)하다. 부평향교'라는 주제로 '효를 나누는 응다방(5.20)', '송윤과 장사굴 삼총사(6.24)'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10.27(금)에는 '달빛가득 부평향교'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부평향교는 조선시대 전통건축의 특색과 유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찾아가는 길

▷소재지 : 인천 계양구 향교로 19 부평향교

▷대중교통 : 인천1호선 경인교대역 5번출구에서 350m

​​​* 계양구 신비 블로그 기자단 9기 이창룡 기​자님의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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