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하루를 원한다면, 경북 영천 임고면에 자리한 한적한 서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봄볕이 머무는 풍경, 기와 너머로 피어나는 꽃 그림자, 그리고 조용히 마루에 앉아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공간.

임고서원은 말보다는 감각으로 기억되는 여행지였습니다.

화려하거나 큰 스팟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

제가 다녀온 날, 따뜻한 햇살 아래 붉은 철쭉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오래된 나무와 전통 건물 사이로 조용히 피어나는 봄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임고서원은 고려 말 충신이자 유학자인 정몽주(포은) 선생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명종 8년인 1553년에 창건된 서원입니다.

지방 유림들의 뜻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듬해에는 임금으로부터 임고라는 이름의 사액까지 받으면서 공적 서원으로 자리잡게 되었죠.

임진왜란으로 인해 한차례 불에 타기도 했지만, 1603년 현재의 자리로 이건되었고, 1604년에 다시 사액을 받아 새롭게 출발합니다.

이후 1643년에는 장현광, 1787년에는 황보인이 추가로 배향되면서 이곳은 한 사람의 정신을 넘어,

시대를 관통한 학문과 가치를 품는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서원의 경내에는 여러 동의 전통 건축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패가 봉안된 문충사, 영정을 모신 존영각, 그리고 학문과 강론이 이루어졌던 강당까지.

단순히 건물의 기능만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각 건물마다 담고 있는 분위기와 색감이 분명했습니다.

기둥 하나하나에도 시간의 결이 느껴졌고,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마저도 편안함을 주는 느낌이었어요.

곳곳에 걸린 현판들은 그 시절 유학자들의 사유를 담고 있는 듯했고,

조용한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정돈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방문객이 많지 않다 보니 마루 위에 살짝 앉아 쉬어가는 여유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는데요.

도심의 속도와는 전혀 다른 흐름 속에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포은문집 목판 113판, 지봉유설 목판 71판, 그리고 어사성리군서 등 200여 권에 이르는

귀중한 목판 자료가 보관되어 있어, 학문적 의미도 매우 깊습니다.

직접 열람할 수는 없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서원의 품격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임고서원은 단독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지지만,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주변 명소들과 함께 둘러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차량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정몽주 생가와 포은 유허비는 서원과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기에 딱 좋아요. 서원의 정신적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이라 여행의 깊이도 더해집니다.

또한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하는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좋은 선택지가 됩니다.

조용한 숲속에 자리한 휴양림은 숙소와 말타기 체험까지 가능한 공간으로,

하루쯤 머물며 자연과 함께 여유로운 일정을 꾸리기에도 적합합니다.

조금 더 이동하면 영천 와인문화센터, 보현산천문대, 한의마을 등 체험형 여행지들이 이어지는데요.

이런 구성은 조용한 역사 여행과 체험·힐링 테마를 하루에 모두 즐기고 싶은 분들께 이상적인 조합이 됩니다.

임고서원에서 보낸 시간은 유독 조용했습니다.

흔히 여행지에서 기대하게 되는 화려한 장면이나 특별한 체험은 없었지만,

그런 요소가 없기에 오히려 공간이 가진 본연의 분위기를 더욱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원의 건물들은 과하지 않고 단단했습니다.

마루 끝에 앉아 멀리 시선을 두면, 높지 않은 담장 너머로 이어지는 풍경과 하늘,

그리고 흙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조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안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장식 없이도,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안정감은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서원은 무언가를 새롭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잠시 멈추어 서거나, 나무 그늘 아래를 천천히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

정적인 건축과 살아 있는 계절 사이에 놓인 균형이 차분하게 다가옵니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려 하기보다, 그곳이 품고 있는 시간에 잠시 동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이나 이야기로 쉽게 전달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감각과 호흡으로 천천히 느껴야만 이해되는 공간. 임고서원은 그런 종류의 장소였습니다.

이곳을 찾는다면,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 천천히 둘러보고, 마루에 앉아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조용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고,

단정한 구조 안에서 나 자신을 자연스럽게 놓아둘 수 있는 여행. 임고서원은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였습니다.

[이용안내]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 447

-운영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입장료: 무료

-주차장: 서원 바로 옆, 넉넉한 공간 확보

-문의: 영천시청 문화예술과 054-330-6754

임고서원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 박수진님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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