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공주시 반포면 문화재 탐방 - 충현서원과 박약재, 상신리 당간지주, 학봉리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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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반포면 문화재 탐방
공주시 각 지역의 문화재를 탐방하는 그 일곱 번째, 오늘은 반포면 일대에 있는 문화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반포면은 계룡면과 더불어 대부분의 지역이 계룡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황봉[827.8m] 등이 반포면에 속하며, 동부 지역에는 우산봉(雨傘峰)[573.8m]·갑하산(甲下山)[469.0m] 등이 대전광역시와 경계를 이룹니다,
반포면의 중앙부를 용수천(龍水川)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면서 좁은 평야 지대를 만들며, 이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인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청량사지 칠층석탑, 사적인 공주 학봉리 도요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인 공주 상신리 당간지주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숙모전, 동학사 삼성각, 동학사 삼층석탑, 삼은각, 충현서원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충현서원과 박약재, 상신리 당간지주, 학봉리 요지 등을 돌아보고 다른 문화재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공주시 반포면 문화재 탐방
1. 충현서원과 박약재
공주시 반포면의 문화재는 계룡산 동학사를 중심으로 산재하는 사찰 유적과 고청 서기의 자취가 남아 있는 충현서원 일대의 유적지가 그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충현서원과 고청 서기의 유적지는 반포면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공암리에 자리하고 있어 비교적 찾기 쉽습니다.
충현서원은 1581년(선조 14) 서기(徐起:1523~1591)가 ‘박약당(博約堂)’를 세우고 중국에서 가져온 주자의 영정을 모신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충청남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사원이며, 1624년(인조 2)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충현서원은 충청남도 최초의 사액서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액서원이란 조선시대 왕으로부터 서원명 현판과 노비·서적 등을 받은 서원을 말합니다. 그만큼 일반 서원과는 차별화된 대접을 받은 거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후 수차례 중수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5년 원래의 자리에 다시 세웠습니다. 1989년 강당이 중건되었으며, 1994년에는 관리사가 신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현서원 앞에는 커다란 비석이 두 개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쪽이 충현서원사적비, 왼쪽이 충현서원사실병우암송선생추향기비입니다. 충현서원사적비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비문에는 충현서원이 건립된 배경, 주자를 봉안하게 된 배경, 중건 기록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충현서원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흘러 운치를 더해줍니다. 아마도 인근에 흐르는 용수천에서 끌어들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충현서원 담장 옆에는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어서 가을에는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합니다. 오래지 않아 애기단풍잎 고운 손이 파릇파릇 싹을 틔울 것 같습니다.
충현서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고청 서기 선생의 강당인 박약재는 공암리 막다른 골목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약재 앞에는 '문목공 고청 서기 선생 유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박약재(博約齋)는 고청(孤靑) 서기(徐起, 1523~1591) 선생이 1573년경 공주 공암에 터를 잡고 살면서 선비들을 가르치던 강당입니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며 공암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인근에 ‘공암정사’(후에 충현서원이 됨)를 다시 세우고 이 건물에는 ‘박약재’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박약(博約)’이란 ‘배워서 지식을 넓히고 실행하되 예의에 맞게 하라’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박문약례(博文約禮)’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기 선생이 죽은 후에는 박약재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박약재는 한동안 폐허가 되었는데, 1794년에 새로 짓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고쳤지만 1794년의 서까래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박약재는 충청유학의 산실이었고, 훗날 충현서원은 충청우도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서기 선생은 미천한 출신이어서 벼슬길에는 오르지 못하였으나, 학문의 도가 높아서 따르는 사람이 많았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사후인 영조 때 관찰사 홍계희가 서기의 시, 행장, 제문 등을 모아 '고청유고'가 발간하였습니다.
공주시 반포면 문화재 탐방
2. 상신리 당간지주와 구룡사지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문화재 중 두 번째 소개해 드릴 것은 상신리 당간지주와 구룡사지입니다. 공주시에는 보물로 지정된 갑사 철당간지주와 반죽동 당간지주가 유명합니다. 상신리 당간지주는 고려시대 구룡사터의 깃대기둥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정체를 알기 어려운 낡은 목조 건물 앞에 두 개의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것이 공주 상신리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란 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을 말합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절인 구룡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신리 당간지주는 구룡사의 깃발을 세웠던 기둥인 셈이지요. 상신리 당간지주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구룡사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마을 전체의 땅이 과거에는 절터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상신리는 돌담마을로 유명합니다. 계룡산 상신리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자갈 등을 이용하여 담장을 쌓은 집들이 마치 제주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곳입니다. 계룡산 산기슭에는 도자예술촌이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철화분청사기의 전통의 맥을 잇는 전국 유일의 도예촌이지요.
골목길에는 신소골큰샘이라는 우물로 있습니다. 과거 온 마을 주민의 식수원으로 계룡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샘물입니다. '신소(辛紹)'는 '길고 굽은 큰 못'이란 의미로 마을 사람들은 '용둠벙' 또는 '가마소'라 부르면서 신소를 기준으로 윗 마을은 상신리, 아랫마을은 하신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구룡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며 소통 공간인 상신리 마을회관 유선당이 있습니다.
계룡산 줄기 아래 넓게 펼쳐진 이 공간이 구룡사지입니다. 공주구룡사지는 계룡산 지맥의 북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수정봉과 신선봉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 하단부에 있는데, 분지상의 넓은 평탄면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금강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허허벌판 풀밭으로 남아 있는 구룡사는 통일신라시대에는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간지주가 상신리 입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상신리 마을 전체가 구룡사 땅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룡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폐허가 되어 대부분 민가나 농토가 되어 조사도 쉽지 않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조사된 사찰의 건물은 모두 5동의 건물이 금당 터를 축으로 좌우 대칭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구룡사(九龍寺)'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구룡사터로 추정되고 있으며 절터의 넓이로 보아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유물도 출토되고 있어 백제 말기나 통일신라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 보인다고 하네요.
공주시 반포면 문화재 탐방
3. 공주 학봉리 요지와 이삼평공원
공주 학봉리 요지는 동학사 입구에 있습니다. 계룡산 기슭에 자리한 학봉리 요지는 조선 세종의 명으로 처음 창설되어 성종 초기까지 존립했던 관립 분청사기 가마터였습니다.
계룡산에서 출토되는 검붉은 흙과 산화철이 풍부한 철광석은 분청사기를 만들 수 있는 천연의 도자 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이곳에서는 분청사기 제작 기법 중에 지역적 양식이 독특한 철화분청사기가 대량 생산되었습니다. 철화분청사기란 검붉은 태토에 귀얄로 막걸리색 분장토를 바르고, 그 위에 짙은 먹쑥색의 산화철로 익살스런 민화 고기나 당초문, 추상문을 그린 도자기를 말합니다.
지금은 평범한 풀밭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철화분청사기를 구워내던 가마가 있었던 곳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이름 없는 사기장들이 검붉고 거친 태토로 비대칭의 숙련된 형태를 성형하여, 추상적이며 익살스러운 힘찬 필력의 그림을 그려 조형과 함께 잘 어울리는 도자기를 구워냈다고 생각하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계룡산 아래에는 이삼평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자기 도조가 된 이삼평이라는 자기장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비석은 1990년에 이삼평의 고향인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한일합동으로 세운 기념비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삼평은 사가현 아리타에 살면서 1616년 이곳에 가마를 설치하고 도자기를 구웠습니다. 그가 창시한 가마의 도자기는 아리타도기라 이름 지어져,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도 아리타시에는 150여 개의 도요가 있을 정도로 번성하며 현지에 이삼평의 비를 세워 기리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공주시 반포면에는 많은 유물과 유적 등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사진들은 예전에 담은 것이라서 계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공주시 동학사 바로 옆에는 신라, 고려, 조선의 충신을 모신 세 개의 사당이 있습니다. 이를 동학삼사라고 합니다. 세조가 단종과 사육신 등 충신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웠던 초혼각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습니다.
동학삼사는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의 3곳으로 숙모전에는 단종과 세조를 거부한 충신들, 삼은각에는 고려 충신 정몽주, 이색, 길재, 동계사에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특히 숙모전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국왕, 재상, 관료, 학자, 서민, 노비 등 충절인 351위를 기리는데, 유교와 불교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제사의 의식을 거행하는 특별한 전통을 지닌 곳입니다.
계룡산 중턱, 삼불봉 아래 지금은 상원암이라는 번듯한 절이 세워져 있는 이곳은 원래 청량사가 있던 곳입니다. 724년(신라 성덕왕 23)에 창건한 청량사는 폐사되었으나 보물로 지정된 두 개의 탑이 전해 전설과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청량사지에 세워져 있는 두 개의 석탑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왼쪽은 칠층석탑으로 조금 더 크고 오른쪽은 오층석탑으로 조금 더 작습니다. 이 탑은 남매탑이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상원과 한 처녀의 설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백제 왕족 출신인 상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목에 뼈가 걸린 호랑이를 만나 구해 주었더니, 호랑이가 며칠 후 아리따운 처녀를 업어왔다. 당시는 추운 겨울이라 돌려보내지 못하고 봄까지 초막에서 함께 지내다가 마침내 봄이 되어 처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처녀의 아버지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함께 살기를 부탁하였으나 상원이 거절하였다. 상원은 결국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함께 수행에 정진하였는데, 이들이 입적한 후 사리를 모아 탑을 세운 것이 이 쌍탑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량사지 [淸凉寺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공주시 반포면의 대부분은 계룡산 국립공원 내에 있어서 사찰 관련 문화재와 철화분청사기 관련 유적지 등이 많습니다. 또한 고청 서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관광객이 반포면에서 가장 많이 찾는 문화재는 동학사일 것입니다. 계룡산 등반을 하면서 거쳐 가는 천년고찰이기 때문이지요. 동학사에 대한 글은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충현서원
위치 : 충남 공주시 반포면 공암장터길 28-6
상신리 당간지주
위치 : 충남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학봉리 요지
위치 :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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