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대구 중구 가볼만한 곳!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이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대구 중구 가볼만한 곳!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이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건립되었으며
2011년 10월에 개관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전국민적 외채갚기 운동으로써
일반 평민들이 주도한 한국최초의
시민운동이었으며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자
전국민 기부운동이기도 합니다.
이 운동의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2475건이 있으며
이는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생생한 흔적을 전시실과
영상자료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죠.
대구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국채보상공원과 함께
대구 시민들에게는 도심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대구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꼭 가봐야하는 공간이죠.
주소: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70
관람시간: 09:00 ~ 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명절
문의: 053-745-6753
대구 중구 중심가에 4만 3000㎡의 면적으로
1982년 도시계획상 동인공원으로 고시되었으며,
1997년 10월 10일, 지금의 국채보상기념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명칭은 한말에 고종황제로부터
천민까지 담배를 끊고 금가락지를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며 벌인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IMF(국제통화기금)라는 외환위기를 맞아
신국채보상운동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국채보상운동은 교과서에서
잠시 몇 줄로 설명되었던 것이 전부였기에
그 의의에 대해서 사실 많이 알 수는 없는데요.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이 모든 사실에 대한
기록물을 전시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한 전시관입니다.
일본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대한매일 신보의 양기탁에게
공금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반감을 갖게 했다고 하는데요.
국채보상운동의 결과
일본에게 진 빚은 갚지 못했지만
학생들과 여성들도 참여한 범국민적
경제주권 수호 운동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당시 나라빚은 1,300만원 이었고
지금으로 따지면 3,300억원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차관은 대한제국을 발전시키겠다는
명목을 보였으나 실제로는 식민지화를 위한
책략이었던 것이죠.
기념관 내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설명과 명시도 잘 되어 있는데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은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특별전시실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과정 및 인증서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세계에 기억되는 국채보상운동!
대구시민으로서 자랑스럽고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서 대구시민들이
불꽃같이 일어났다는 의의를 통해
학생, 시민들 누구나 이 기록물을 보고
나라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가질만한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국채보상운동의 좌절,
국채보상의 연금처리,
국채보상운동이 남긴 희망, 결실,
그 후 기록물들이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여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둘러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전시관 내에는 탁본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만든 탁본은 직접 가져갈 수 있어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을 방문한
좋은 기념품이 되기도 하지요.
다음 사람을 위해서
1인 1장만 사용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조금 더 쉽게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이렇게
영상으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00년 대 당시 서문시장의 배경을 통해
더욱 사실적인 관람이 가능하죠.
전시관 내에는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했던
앉은뱅이, 어린아기, 기생 심지어 도둑떼까지
모금운동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국운동에
동참한 그 열기가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때 당시 서문시장에서는
가난한 짚신장수부터 떡장수, 생선장수,
나물파는 상인부터 마부, 노비, 기생까지
애써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았고
이런 운동의 감동은 대구를 넘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민족적 주권수호
운동으로 승화되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아껴둔 가락지, 패물 등
돈 될만한 것들은 모두 들고 나와
이렇게 나라를 살리기 위해 동참한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후손인 우리들이
배우고 또 깨달아야 될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념관 지하로 내려가면
여성들의 의연 활동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신분을 뛰어넘은 기생들의 의연활동과
전국적으로 번진 국채보상운동의
불씨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안중근 의사 역시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였는데요.
평양에서 뜻있는 선비 천여명을 모아
연설을 하고 의연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본인의 목숨까지 내놓았던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전국민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그 댱시 약 20만원으로 추정되며
국권이 빼앗긴 후 1910년 말
15만원이 일제 경무총감부에 귀속되었다고 합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온갖 훼방으로
결국에는 좌절되었지만, 이 때 형성된
국민의 힘과 애국정신은 훗날 3.1 독립만세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민족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대구 중구 역사의 산증인!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이렇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고,
또 우리가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야 할 장소로 적극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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