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 전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3코스ㅣ봉래산, 신선이 노닐고 영도할매의 영험이 깃든 곳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부산을 대표하는 산,
그곳에서 '부산문화유산'을 찾아보는 답사기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 찾아서」
세 번째 코스입니다.
/
"봉래산, 신선이 노닐고
영도할매의 영험이 깃든 곳"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3 코스 |
절영해안 산책로 ▶ 흰여울 문화마을 ▶ 부산보건 고등학교 연세대 영도캠퍼스 기념비 ▶ 복천사 ▶ 봉래산 산제당 ▶ 봉래산 ▶ 조내기 고구마 역사기념관 ▶ 청학동 해돋이 벽화마을 |
코스 3ㅣ봉래산, 신선이 노닐고
영도할매의 영험이 깃든 곳
부산 영도 가운데 위치한 봉래산.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산의 이름을 따왔으며, 영도할매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영도에는 봉래산과 흰여울문화마을, 복천사, 산제당, 조내기고구마역사기념관, 청학동해돋이벽화마을 등의 명소가 있다.
절영해안산책로
영도 이름의 유래와 절영마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근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긴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산항의 개발과 함께 영도가 공업도시로 크게 발전하면서 원래 배로 오가던 영도에 다리를 놓게 되었고, 1932년에 착공하여 1934년에 준공되었다. 영도대교는 부산항을 오가는 선박의 통행을 위해 도개 구조로 건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단엽식 도개교라고 한다.
‘절영’은 영도의 옛 이름인 절영도에서 따온 말로 그 유래가 깊다. 『삼국사기』에는 성덕왕이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에게 절영산의 말 한 필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 태조 7년에는 견훤이 사신을 보내 왕건에게 절영도의 명마 한 필을 주었는데, 절영도의 말이 고려에 이르면 백제가 망한다는 참언을 듣고 후회하여 말을 다시 돌려줄 것을 청하자 왕건이 웃으면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흰여울문화마을
흰 파도 치는 벼랑에 기댄 마을
행정구역 상 영선동에 속한 흰여울문화마을은 마치 새들의 둥지처럼 벼랑에 붙어있다. 보통 해안이나 강안에 위치한 주거지는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부자들이 별장을 세우러 모여드는 곳인데, 이곳은 얼핏 보아도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바다의 풍경은 과연 절경이지만, 마을의 모습은 그만큼 사치스럽지는 않다.
이곳은 한국전쟁의 피란 시절과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에 인구가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곳이다. 피란민들이 살 곳을 찾아 들어와 판잣집을 얽으면서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면 벽면에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옛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있다. 사진 속에는 과거의 열악했던 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산보건고등학교 연세대 영도캠퍼스 기념비
포화 속에서도 배움은 이어진다
부산보건고등학교 교문을 지나 조그마한 정원의 한구석에 아담한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비석에는 익숙한 글귀가 큼지막이 적혀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유명한 글귀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로 기독교도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겠지만, 연세대학교의 건학정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비석 아래에는 ‘연세대학교 영도캠퍼스 옛터 기념비’라는 제목과 함께, 이곳이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대학교가 목재와 군용 천막으로 임시교사를 건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던 현장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복천사
산사(山寺)에서 그린 부처의 미소
봉래산을 오르는 길에는 여러 코스가 있는데 길이 평탄하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걷기에 좋은 해련사 길을 택했다. 다만 산을 오르기 전에 잠시 길을 둘러 봉래산의 명소인 복천사와 산제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복천사는 영도의 대표적인 사찰로, 고려 말 나옹 화상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는 해운암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그 창건 시기와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영도에 목마장이 설치되었으니 사찰이 크게 운영될 만한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1800년대에 직지사의 선주 스님이 이곳에 토굴을 세워 수행하였다고 하고, 1921년에 완호 스님이 복천암으로 개명하고 불화소를 운영하면서 대웅전이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후 1973년에 월공당 도해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면서 조계종 복천사로 개명하였고, 이때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용왕단, 종각 등의 불사를 진행하여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복천사는 2008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선 후기 불교미술의 계보를 이은 한국 불교미술 3대 불화소로 지정하였는데, 불화소란 불화를 그리는 불모를 양성하여 불화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곳을 말한다.
복천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가자 ‘봉래산복천사’라는 금빛 현판이 걸린 천왕문과 종각이 우뚝하게 서 있었다. 사찰은 크게 공사를 벌이는 중이라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끼기에는 조금 부산스러웠지만, 천왕문을 돌아 대웅전을 지나서 서쪽으로 탁 트인 난간 위에 서자 송도 앞바다와 남항대교 너머 송도의 고층 빌딩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봉래산 산제당
할배와 아씨, 영도의 수호신들
‘봉래산산제당’ 문으로 들어서자 좌측 위로는 산제당이 서있고, 우측 위로는 아씨당이 서있었다. 산제당은 좌향이 북북동향인데, 계단을 올라 제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형의 제단에 유리 액자로 산신도가 걸려있다.
제단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바친 쌀, 물, 과일, 과자, 사탕, 담배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씨당은 산제당에서 서북쪽으로 15m 정도 거리에 있다. 좌향은 북향인데, 제단의 구성은 산제당과 같았다. 제단 위로는 여신도 2명을 거느린 아씨의 그림이 걸려있고 제단에는 산제당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바친 온갖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봉래산
신선이 노닐고 할매가 굽어보던 봉우리
봉래산은 영도의 중앙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산이다. 봉래산 이름은 유래가 깊다. 본래 봉래산은 영주산, 방장산과 함께 중국에서 전설상으로 전해지는 삼신산 중 하나이다. 신선이 살며 불사의 영약이 자라는 신성한 산의 명칭이다.
등산로 초입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였던 듯하다. 편백나무 숲은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로 작은 길을 내고 데크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고, 데크 아래로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꾸며 놓았다.
전망대 난간에는 봉래산 정상 전망대라고 적힌 설명판이 서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전망 사진에는 묘박지, 두도공원, 쥐섬, 암남공원, 두송반도, 다대포 해수욕장, 가덕도, 송도 해수욕장, 남항대교, 천마산, 부산남항, 깡깡이 예술마을, 자갈치시장, 승학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봉래산 395m’라고 적힌 봉래산 정상임을 표시하는 비석이 서 있었고 그 옆에는 그 유명한 할매 바위와 함께 ‘봉래산 영도할매 전설’이라고 적힌 설명판이 서 있었다. 등산로의 초입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도할매는 삼신할매로 봉래산의 산신이자 영도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지는데, 영도 사람들이 영도에서 살 때는 보호해주고 영도 밖으로 이사가면 고생할까 걱정을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영도 사람들은 할매 바위를 신성한 장소로 여겨서 바위 위에 함부로 올라가지 않으며 그 주변에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손봉 361m’라고 적힌 비석을 만났다. 비석 너머로 동쪽으로 트인 전망에는 영도 동삼동 시내와 국립해양박물관,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조도가 내려다보이고, 건너편에는 감만부두에 정박한 컨테이너 화물선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속세의 틈바구니에서 눈앞에 닥쳐 있을 때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삶들이, 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그 각각의 수많은 삶들이 오밀조밀하게 얽혀 분주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내기고구마역사기념관
고구마에 깃든 따스한 마음
조내기고구마역사기념관은 그 건물의 모습부터가 고구마의 형상을 본땄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원형으로 고구마의 둥근 몸통이고 벽면도 자주색으로 고구마의 껍질 색깔이다. 왼쪽은 각진 모양에 벽면에는 노란빛이 도는 흰색으로 생고구마의 속살 색깔이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전시관이 있는데,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한가운데 거대한 고구마의 형상이 압도적으로 서 있다. 처음에는 고구마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해져 동남아시아와 중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된 루트를 세계 지도를 통해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250년 전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영도에서 처음 재배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는 과정을 귀여운 애니메이션과 역사적인 자료, 샌드아트 등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고구마의 재배 방법, 고구마의 영양학적인 효능과 고구마로 만들 수 있는 국내외의 여러 음식까지 보여준다.
청학동 해돋이 벽화마을
사람이 사는 곳은 고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청학동 해돋이 마을은 봉래산 중턱으로 상당히 고도가 높은 청학동에서도 꼭대기에 위치한 조그마한 마을이다. 지금은 약 500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피란민들이 모여 살면서 수십 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애환이 묻어있는 마을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고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높이 올라온 만큼 여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실로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덕에 청학동 해돋이 마을은 2010년대에 들어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과 새뜰마을사업을 통해 곳곳이 예쁘게 단장되었고, 해돋이마을 돌담투
어, 해돋이 전망대 국수 판매소와 같이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더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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