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평등한 세상’ 동록개의 꿈이 남아있는, 원평집강소
김제 원평에는 동학농민혁명때 설치된 ‘집강소’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당시 읍면 단위까지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 김제 금산면의 원평집강소인데요.
원평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입니다.
작은 초가집 입구에는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라는 글씨가 보이는데요.
1894년 동학농민군 전봉준 장군과 전라감사 김학진은 동학농민군이 조선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한 뒤 관민상화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했습니다.
원평 집강소도 그중 하나입니다.
‘집강소’는 고을마다 설치한 접의 수령인 접주를 ‘집강’ 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 초가집 모양으로 보수한 집강소는 1882년 건립된 곳으로 당시 4칸의 초가집이었습니다.
집강소로 활용된 이후 일제강점기 금산면사무소와 원불교 종교시설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한동안 폐가로 방치되었습니다.
그 후 문화재청이 2015년 초가로 복원하여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백정 출신이었던 '동록개'가 당시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며 헌납한 곳인데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옛날에는 백정 출신은 이름 없는 천한 것이라는 의미로 ‘동록개(동네개)’ 로 불리며 차별을 받았습니다.
원평집강소는 현재 지방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신분을 해방하는 등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앞장섰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최고 지도자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은 이곳을 민주사회와 평등사회를 실천하는 농민군지휘소로 사용했습니다.
복원된 집강소는 시민들의 손길이 많이 닿아있습니다.
입구에는 원평집강소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으니 꼭 읽어보고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열린 공간인 원평집강소 마당에는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도록 평상이 마련되어 있고, 누군가 사는 집처럼 장독대도 보입니다.
마당 곳곳엔 시민들의 기증으로 만들어진 야생화 정원도 자리합니다.
집강소 마당 오른쪽에는 2개의 장승이 놓여 있는데요!
전북 무형문화재 목조각장인 임성안씨의 기증 작품입니다.
장승에 적힌 ‘평등한 세상’, ‘동록개의 꿈’이라는 글씨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백정으로 살며 개만도 못한 삶이 얼마나 처절했을까요.
집강소에 들어오면 방문객들의 글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동록개’의 꿈은 오늘날 풀뿌리 민주주의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루에는 동학혁명의 꽃 원평집강소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복원된 원평집강소는 민간 자치기구라는 뜻을 살려 김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주도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교육과 문화 향유의 장소로도 활용 중입니다.
이곳에는 김제시 금산면 구미란 전투에서 희생된 무명 농민군의 묘역과 당신 일본군이 사용한 탄환 사진도 볼 수 있는데요.
구미란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크게 패한 뒤 생존한 500여 명의 병사가 금구와 원평 일대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전력을 다한 전투입니다.
그들의 압도적인 화력에 밀려 동학농민혁명의 꽃을 끝끝내 피워보지도 못하고 꺾이고 말았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집강소의 운영은 동학농민혁명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입니다.
올해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됩니다.
조선 백성이 주체가 돼 자유·평등·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집강소의 역사를 많은 분이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사진·글 ⓒ 2023. 김제시 SNS 서포터즈, 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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