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울산박물관 답사 기행 '울산의 해녀, 소금, 고래' 후기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되기 전 울산은 제대로 된 박물관이 없는 도시이기도 했습니다(광역시 승격 후 20년 훌쩍 지난 2022년이 되어서야 시립 미술관이 개관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울산의 다양한 역사. 문화를 발굴하는 울산학 작업이 무척 미진하였는데요.
광역시 승격 후 200년에 울산발전연구원으로 개원을 하고 이와 동시에 울산 지역 박물관이 하나둘 들어서고 2011년 울산박물관이 개관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울산학 연구가 활발해진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각 박물관별로 울산을 주제로 한 여러 특별전이 하나둘 이뤄지면서 울산의 역사. 문화가 시민들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해 주고 있는데요. 특히 울산박물관을 포함한 지역 박물관이 시민들과 함께하는 답사 프로그램은 우리네 일상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터라 개인적으로 무척 애정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3월 29일, 30일 양 일간 2023년 봄을 맞아 울산박물관에서는 '바다 삶의 현장 - 울산의 해녀, 소금, 고래'라는 이름으로 제23회 '답사로 배우는 우리 역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첫날인 29일 참석을 하였는데요.
이번 답사에서는 울산 바다의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호기심 가득 가진 채 출발지인 울산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북구의 제전마을입니다. 닥나무가 많아 밭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 저(楮 닥나무 '저') 전(田 밭 '전')이 제전, 재전으로 불리게 된 제전마을은 현대에 와서는 장어마을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8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장어구이 식당이 11곳이 운영될 정도로 장어를 맛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당산할배와 할매를 함께 모시는 이곳 신당은 현재 일 년에 한 번 정월 대보름날 동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업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농사보다 사고의 위험이 훨씬 클 텐데요. 요즘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신당이 울산의 해안 마을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더군요.
해녀 하면 제주를 흔히 먼저 떠올린 텐데요. 사실 뭍에도 많은 수의 해녀가 있습니다(2017년 기준 제주 해녀가 4000여 명이고 육지 해녀 역시 4000여 명이다). 울산에는 해녀들의 모임인 '울산나잠회'가 있을 정도로 해녀가 많은 편입니다.
조선시대 때 울산은 전복을 진상했는데요. 진상하는 전복을 잡기 위해 제주도 해녀들이 왔다는 사실이 '학성지'에 기록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울산 속 제주민의 역사를 재조명한 '두모악. 해녀 울산에 오다'라는 특별전이 대곡박물관에서 2016 특별전으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날 제전마을 방문에 맞춰 박물관 답사팀에서는 마을 해녀분을 모시고 여러 이야기를 듣고자 미리 요청을 했는데요. 4~5월은 미역 채취 작업으로 마을 모두가 가장 바쁜 기간이라 불가능하다는 통보가 왔답니다.
이날 진행을 맡은 울산박물관 진홍국 학예연구사가 이 부분이 아쉽다고 해설 중간에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요. 마을을 돌아보는 도중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미역 작업을 하는 걸 보고서는 납득이 가더군요.
제전마을 돌미역은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유명세를 얻었을 정도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합니다. 이곳 바다가 암반이 많고 조류가 세고, 수심이 얕아서 돌미역이 자라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합니다. 전성기 때는 미역 채취로 1년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이곳 돌미역 품질이 어떠한 지 짐작이 가더군요.
마을회관 2층에는 이런 제전마을 주민들의 1년 생활사를 살필 수 있는 '제전마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제전마을을 찾는다면 한번 방문해도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북구 '소금포 역사관'입니다. 2021년 문을 연 이곳은 전시 자료를 통해 울산의 소금과 염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조선 초기 1419년 대마도 정벌 이후로 왜(倭)와의 왕래가 중단되는데요.
왜의 사신과 대마도주의 간청으로 4년 후 조선은 3개의 항을 개항합니다. 3개의 항, 즉 삼포 중 한 곳이 현재 북구에 위치한 '염포'(鹽浦)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금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이런 역사를 토대로 '소금포 역사관'이 문을 열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대곡박물관과 암각화 박물관 겸임 관장을 지낸 '양명학' 울산대학교 명예 교수가 전하는 울산의 소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이날 모두 일정을 동행하면서 열정적으로 울산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 한 양 교수님은 울산의 대표적인 염전 중 하나인 '마채염전'에서 10대 때 직접 소금을 생산한 이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런 이력 덕분에 평소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사라져 버린 울산 염전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흔히들 소금을 만드는 방법으로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을 떠올릴 텐데요. 사실 천일제염법은 1907년 일본에 의해 이식된 대만식 소금 생산 방식입니다. 인천 주안염전에서 처음 시작한 이 방식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펼쳐진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이후 발달하는데요. 한반도의 전통 소금은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자염(煮鹽)입니다.
조선 시대 소금은 대부분 자염인 거죠. 이런 자염 중에서도 울산에서 생산한 자염은 맛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일제 강점기 개통한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을 타고 경북 내륙은 물론 강원도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경상도 사람치고 울산 소금을 안 먹어본 사람 없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장생포로 향합니다. 1985년 상업 포경이 금지되지 전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고래잡이 항구가 장생포였습니다.
70,80년대 포경항으로서의 장생포를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장소가 '장생포 고래마을'입니다.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장시 장생포의 모습, 고래잡이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 한반도 포경 산업의 역사까지 한 번에 살피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여과와 침전, 이온교환막 통과 등을 거쳐 증발. 농축한 소금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순도 99%의 순수한 소금을 얻을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회사가 (주)한주이고 생산 공장이 바로 울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공단이 들어서기 전 부곡동 사평 깔분개라는 염전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옛 염전 터에 소금 공장이 들어선 것이죠. 소금밭이 소금 공장으로. 돌고 도는 역사입니다.
일반적인 소비자 중에'한주' 로고가 달린 소금을 직접 사 먹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날 공장을 안내한 직원분께서 (주)한주에서 생산한 소금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힘주어 얘기했는데요.
견학 도중 벽 한편에 붙은 주요 수요처를 보니 금방 수긍이 가더군요.
마지막으로 석유화학 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모두가 오릅니다. 이곳에서 지금은 사라져 버린 마채 염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채 염전은 울산의 여럿 염전 중에서도 맛이 가장 뛰어났다고 합니다. 소금의 맛은 토질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청량천과 개운천 끝에 마채 염전이 위치하는 데요. 이 두 하천이 화강암 지대의 마사토와 황토를 마채 염전에 뿌려준 덕분이라고 합니다. 전남 해남이나 무안 지역을 다니다 보면 무척 인상적인 황토를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토고구마를 포함하여 맛 좋은 뿌리채소 생산지가 이 지역이죠. 결국 소금도 땅이 길러낸다는 거지요.
"이제는 내가 죽고 나면 이걸 기억할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이게 마지막일지 몰라요. (내가) 다시 와서 이렇게 할 줄 모르겠어요. ... 이제 여러분이 그걸 해야 합니다. 답사만 다니지 말고 하나하나 조사하면서..."
마채 염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질문을 받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무심코 나온 말이 제 맘에 콕 박히더니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이어진 '울산의 해녀, 소금, 고래' 답사는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간 울산 관내 박물관의 여러 주제 전시를 통해서도 만나 보지 못한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현장 답사가 이뤄졌는데요. 진 학예연구사의 말로는 울산박물관에서는 이 주제로 특별전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특별전을 풀어낼지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 중입니다.
울산의 여러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현장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평소 울산에서 살면서 아는 듯 아닌 듯 아는 것 같은 울산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이라면 기억해 두었다가 한번 참여해 봐도 좋겠습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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