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의령의 3대 인물 백산 안희제 생가를 찾아서
의령 9경 백산 안희제 생가
의령군 블로그기자 김영환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 위치한 항일운동가 백산 안희제 생가는 의령9경에 선정된 의령의 명소로 의령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입니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사로 구성된 건물로서 조선후기 남부지역 민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 입산마을은 탐진 안씨 집성촌으로 연육세 8효자 정려를 받은 효행의 가문으로 시작하여 임란공신이자 중시조이신 지헌 안기종 의병장 이후 근세 조선말부터 해방이전에는 독립유공자 세분을 비롯하여 제헌의원 등을 배출한 마을로 전통 한옥이 즐비한 부촌이자 명문 고촌으로 알려진 마을입니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1885년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나서 30세에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본금을 마련하였으며, 기미 육영회를 조직하고 1926년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습니다. 1942년 11월 대종교의 독립운동에 대한 혐의로 투옥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다가 9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듬해 목단강병원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대종교에서는 순국십현(殉國十賢)의 한 사람으로 추존하였고,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안희제 선생이 살아가던 시기는 조국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때입니다.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 후 러시아와 세력 각축을 벌이게 되고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을 도발하면서 한국을 식민지화 시키려는 야욕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조국이 일본의 야욕으로 신음하게 되자 안희제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의 동량이 될 청소년의 교육이 우선임을 깨닫
게 되고 고향인 의령에 의신학교, 입산리에 창남학교를 설립 하는 등 민족교육에 앞장섰습니다.
안희제 선생의 생가는 초가집 한 채와 고택 한 채가 전부입니다.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산을 모두 처분했기 때문이랍니다. 1982년에는 백산 안희제선생의 일대기가 드라마로 재조명되어 MBC에서 월화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7살 때부터 집안의 형인 안익제로부터 한학을 수학하였는데 매우 총명하여 문리를 쉽게 터득하였고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19세이던 1903년 7월 선생은 의령.합천.삼가.진주.하동 등지의 선비들과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를 유람하며 32수의 한시를 지어 '남유일록(南遊日錄)'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생가는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모습으로 안채, 사랑채 2동으로 안채는 앞면 6칸. 옆면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바짝 붙어있고 이들 건물 모두 동쪽을 향하고 남쪽으로 마루 1칸씩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으로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새주소 :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로37
문의 및 안내 : 055-570-2403
주차장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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