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우리에게 하늘을 설명해 주고 암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며

우리가 탄 배를 외딴 해안으로, 그리고 마침내 우주로 이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中

네이버, 구글에도 검색되지 않은 연희동에 숨은 서양 고서점이 있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방문 예약: 전화번호”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문자를 남겨드리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서전 출장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고, 그로부터 며칠 뒤 TJ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TJ 대표는 본인이 직접 오래된 지도와 책들에 관한 설명과 더불어 와인까지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혹시 제가 입장료를 지불하거나,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라고 묻자, 호기심만 챙겨오면 된다고 하였다.

오후 2시, 가게 내부에 걸린 다양한 지도를 보고 우연히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다. 방문 예약이 없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잠깐 둘러보고 가기도 한다지만, TJ 대표의 스토리텔링을 놓치고 갔다면 맹인모상(盲人摸象)과 같을 뿐이다.

Kim’s Old Prints이 왜 연희동 골목길에 있을까?

Kim’s Old Prints(이하 KOP)는 미국 뉴욕에 본사가 있다. 샵의 주인인 TJ 대표는 1년에 60번 정도는 비행을 하며 서양 고서, 특히 한국과 관련한 서양 고서라면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구입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가 인사동에서 연희동으로 숍을 이전한 이유는 지도를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이다. 고지도 수집에도 진심인 TJ 대표는 16세기부터 전해져내려온 고지도를 보며 연구를 하게 되었고, 한국 고지도연구 학회에서 만난 이태호 교수(명지대학교) 권유로 미술사학 석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옛날 것, 이야기 그리고 와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지도, 서양 고서, 미술사 연구의 전문성을 쌓은 TJ 대표는 KOP 방문객에게 그가 수집한 고지도 원본을 직접 보여주며 역사 이야기를 해설해 준다. 여기에 와인 한 잔까지 곁들여 시각, 촉각, 미각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 조화로움은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촉발하고, 400-500년 전 작가가 남기고 간 옛날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400년 전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연희동 구석진 창고에서 16~19세기 서양 사람들이 발견한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은 작지만 문화가 있는 나라로 기록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1600년대 한국은 지구상에서 어떠한 지위를 가진 국가였을까?’라는 질문에 ‘섬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답에서 웃음이 났다. 호주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도에 한국은 반도가 아닌 섬으로 그려졌다. 당시 항해하던 사람들이 사용했던 지도였던 점을 감안해서 본다면 한국이 제대로 발견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1600년대에 완전한 한국 지도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현존하는 고지도를 보면 보통 중국 또는 일본을 메인으로 잡고 한국은 디저트처럼 작게 곁들여서 그려진 나라에 불과했다.

1735년, 한국 지도를 비로소 단독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프랑

스가 그린 한국의 가장 오래된 지도 ‘조선왕국 전도’이다. 지도 원본은 통상적으로 국립역사박물관 또는

해외 박물관에서 직접 접할 수 있지만, 연희동 KOP에도 원본이 있어

서 두 눈으로 생생하게 조선왕국 전도를 볼 수 있고 1735년에 인쇄된 서적의 질감도 느껴볼 수 있다.

동그란 섬에서 현대 한국 지도와 유사한 모양으로 갖춰지는 데 대략 10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1800년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출판한 책에는 당시 한국을 바라본 이방인의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어 발음을 최초로 표기한 책(1818년), 전 세계에서 한국 국기가 처음 소개된 책(1882년), 한국 국왕 사진을 1면에 실은 책(1886년), 한국의 전통 놀이를 묘사한 책(1895년), 한국 전통 역사를 기록한 책(1895년) 등이 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로 비춰진다. KOP에서 오리지널 인쇄본을 직접 넘겨보면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시간 여행의 끝

4시간 동안 고지도, 고서에 완전히 몰입하였다. 2시에 방문하여 6시까지 지루할 틈 없이 고서부터 미술품까지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처음 고서숍에 들어왔을 때는 고서의 가치를 몰랐지만, 고서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책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역사를 품고 있는 책들을 보니, ‘우와’하는 감탄사가 자연스레 쏟아져 나온다.

역사 문헌뿐만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수집하는 TJ 대표 덕분에 한 공간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방문 예약은 최대 3인까지 가능하고,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인문학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KOP를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다. KOP에 머물다가 나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16세기 지도에는 작은 섬으로 표기되었던 대한민국이 21세기에는 경제 10위 대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TJ 대표의 말을 끝으로 서양 고서숍 시간 여행을 여기서 마친다.

<사진, 글 : 서대문구 블로그 서포터즈 '허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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