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승리의 역사와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황산대첩지
안녕하세요
남원시 블로그기자단 안현영입니다 :-)
지금은 조용한 시골마을이자 동편제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운봉읍 비전마을은
고려말 신궁(神弓)이성계의 군대가 약 500척,
고려군의 열 배가 넘는 왜구의 공격을 막아내고
치열한 전투끝에 대승을 거둔
황산대첩의 주무대로,
이를 기념한 비석이 세워져있는 곳입니다.
때문에 '비석 비(碑), '대궐 전(殿)'자를 써서
지금까지도 비전마을로 불리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곳은 승리의 역사와 함께,
가슴 아픈 시간도 함께 품고 있는 문화재인데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오늘은 저와 함께 '황산대첩비지'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소는 '전라북도 남원시 가산화수길 71'을
검색하셔서공중화장실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시면 되는데요,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황산대첩비지의
서쪽 방향으로 눈을 돌리시면 과거 왜군이 주둔했던
'황산'의 모습도 멀찍이 눈에 담아보실 수 있습니다.
황산대첩비지: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황산대첩비지주차장: 남원시 가산화수길 71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
도보로 5분만 이동하면 여러 전각들로 이뤄진
'황산대첩비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성계는 비석이 있는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왜적을 상대했습니다.
왜군의 용장 '아지발도'가 오른쪽에 위치한
황산에 머물며 기습작전을 펼치기 일쑤였고
그 규모 또한 열배가 넘었기 때문에,
고려군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기지를 발휘해
주변의 소나무 숲을 방어선으로 이용했습니다.
이후 왜군을 이곳으로 유인한 다음,
여진족이자 의형제였던
'이지란'과 힘을 합치기로 합니다.
먼저 이성계가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맞춰 떨어트리고,
이지란이 머리를 쏘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리고 그 계획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말에서 활을 맞고 떨어진 아지발도를
본 왜적들은 정신없이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인월면 피바위 부근에서
완전히 섬멸 당하게 된답니다.
이 때 노획한 적들의 말만 천 필이 넘었고,
그 무기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큰 승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
녹음이 가득한 황산대첩비지의 전경입니다.
주변의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펼쳐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데요,
과거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으리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즈넉한 모습입니다.
길을 따라오면 입구인 '삼문(三文)' 옆으로
대첩비지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나와 있으니
탐방하시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구요,
안내문 하단 QR코드를 활용하셔도 좋습니다 :-)
드디어 마주하게 된 '황산대첩비'와 전각입니다.
편액에는 '대첩비각'이라고 적혀져 있는 모습입니다.
조선 선조시기 왕명을 받은
운봉 현감 박광옥이 이를 기념해 비석을 세운 것으로
당시 황산대첩에서의 이성계의 활약이
자세히 기록돼있습니다.
당시 피바위 인근에서 섬멸된 왜구가
언덕을 이루고 피가 냇물로 흘러들어
약 일주일이나 그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전해지죠,
당시 지리산으로 달아나 사라진 왜구는
불과 70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고려 운수가 다하려 함에
간악한 신하들이 조종을 어지럽혀
밖으로 오랑캐를 불러들였으니
어떻게 난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
황산의 승리여
이에 한 번의 노여움으로
무예를 휘날려
우리의 깃발과 우리의 북소리 울려퍼졌네
…
정수리를 맞춤에
투구가 기울자 이미
예리한 살촉은 목구멍을 꿰뚫었다.
벌떼와 개미떼처럼 몰린 왜적들은
하염없이 길을 잃고 통곡하였다
…
만력 5년에
빗돌을 마련하고 이를 기록하여
황산 옜 터에 세웠으니
길을 무너지지 않게 하며
영원토록 성하게 하여
이 비석과 함께 있게 함이라
황산대첩비 中
비석의 크기와 내용도 웅장하지만 떠받치고 있는
거북모양 좌대의 모습이 굉장히 섬세한데요,
곳곳에 부서진 부분도 있지만 등껍질의 문양,
발톱의 모양과 더불어 비늘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르신 분들이라면
비석과 좌대를 비교해, 마모상태나 재질감이
다소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을겁니다.
이제 처음에 말씀드렸던 황산대첩비의
아픈 역사를 말씀드릴 차례인데요,
사실 방금 보여드린 대첩비는
당시에 세워진 비석이 아니랍니다.
진짜 황산대첩비는
대첩비각 오른쪽 '파비각'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보신 비석이랑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죠?
글씨는 희미해져 보이지 않고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누워있는 모습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1977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상들의 참패를 기념한
비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폭탄을 이용해 비석의 허리를 부수는 것으로 모자라
겉을 갈아 글씨를 보이지 않게 해버린 것이죠,
어지럽게 부서져 있던 조각들을
모아둔 곳이 바로 이 '파비각'이랍니다.
다행히 거북 좌대는 파손이 심하지 않았는지,
미리 떠 두었던 탁본으로 비석을 복원후 올려
아까 보여드린 현재의 모습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처참히 부서진 모습을
그대로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은
일제시대의 만행을 고발함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왼쪽편에도 운봉 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비각비'의 처참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비각 또한 황산대첩의 내용과
건립 취지 등이 기록돼 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곳 또한
동일한 이유로 과거의 모습을 잃은 '어휘각'입니다.
어휘각은 보시는 바위에 가운데에
황산대첩이 자신이 혼자 이룬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잔영만이 남아서
그 아픈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휘각 또한 태조의 친필이니만큼 파괴되기
이전의 탁본이나 사진 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안내판 등을 설치해 각종 사료로라도 알 수 있도록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태조 이성계의 승리의 역사,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슬픈역사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
'황산대첩비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여는 열쇠인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담고
느껴보시길 바라며 여유가 되신다면 인근 피바위,
여원치마애불 등 이성계와 관련된
유적들까지 코스로 묶어 탐방하시면
더욱 알찬 역사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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