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 가득한 한가위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선산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엔 조금 거창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형제들이 나란히 잠들어 계신 곳이니까 마땅히 선산이라 부르겠다. 추석 명절 아침 선산에 올라 차례를 지냈다. 역시나 어디 종갓집에서 행하는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돗자리에 과일 몇 개 올리고 청주나 한잔씩 올리는 약식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선산에 향나무를 한 그루 사서 심었다. 그 후로 우리 집은 묘를 쓰지 않는 대신 나무를 심는 수목장을 한다. 저 옆으로 몇몇 어린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그건 곧 우리 부모님의 나무와 아버지 형제들 나무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내 나무도 한 그루 심어질 예정이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누나네 가족이 도착했다. 못 본 사이 조카들의 종아리가 한 뼘은 굵어져 있다. 나는 사실 세상 모든 아이들을 좀 어려워하는데, 그래서 조카들에게도 살갑고 유쾌한 삼촌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다. 영리한 아이들은 이미 그걸 눈치챘는지, 여전히 나와는 서먹한 사이라 제 엄마 등 뒤로 얼굴을 숨긴 채 인사를 건넨다.

‘하지 말자, 하지 말자.’ 그래도 명절인데 전도하고 떡도 하고 갈비도 재우고 해야지 않겠냐는 엄마를, 아빠와 내가 몇 해 전부터 달려들어 말렸다. 하지 말자, 하지 말자. 그냥 편하게 쉬는 날이라 생각 하자. 덕분에 이제는 추석이나 설에도 명절 음식을 집에서 직접 하지 않는다. 대충 내가 사서 들고 가는 고기를 구워 먹던가, 엄마가 미리 끓여 놓은 된장찌개로 한 끼 식사를 마치는 것이 우리 가족의 명절이다. 모여서 밥을 먹는 일. 식구.

꽤 이전부터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명절 증후군이니 뭐니 하는 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명절 내내 과한 노동과 스트레스 때문에, 즐겁고 행복해야 할 명절이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는 성토였다. 덕분에 큰 인기를 끈 김영민 교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가족 구성이 변하자 이제는 명절을 지내는 형태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전통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형태의 문제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기꺼이 전통을 잇는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무조건 생략하고 간소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나에게 그럴 권한도 없고 말이다. 그저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싸움 없이, 토라짐 없이, 피곤과 스트레스 없이, 기쁨만 가득한 올 추석 명절을 잘 보냈기를 바라는 바람이다. 모두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용기와 응원과 힘을 얻어서, 다시 시작될 일상을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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