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기형도 시 안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팔십 년 대 이곳 안양천 길을 걸었던 기형도 시인은 안개에 싸인 안양천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인이 살았던 그 때만 해도 안양천 위 둑길을 걸어서 구로공단 쪽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엔 하천의 폐수도 심했고 둑길도 정비가 안된 길이었음을 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물른 시에 나오는 샛강은 안양천을 말하고 있고요.

다행히 지금은 시민들이 쉬고 산책할 수 있는 광명의 허파 같은 공간이 되었지요.

안양천 둑방 길에는 광명시에서 세운 12편의 기형도 시비가 나무 사이사이에 세워져 있어 오가는 시민들에게 시를 읽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저녁이 되면 시화 판에 아름다운 조명이 들어와서 시가 더 빛나는 밤이 됩니다.

운동을 하며 또는 연인과 가족과 길을 걸으며 한번 쯤 시선을 주고 멈추는 멋진 길입니다.

더운 여름저녁

기형도 기념사업회 시인들이 저녁나절의 샛강에 모였습니다.

안양천 기형도 시길을 산책하며 시민들에게 기형도 시인을 알리고 형식 없는 자유로운 시낭독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 낭독할 시집은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 시집입니다.

비가 내릴 듯 흐린 날이지만 안양천 정원의 꽃들이 환하게 밝히고 있어서 여름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시 읽기 딱 좋은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만.~ㅎ

기형도 시비를 따라 걸으며 시낭독에 참여해 볼까 합니다.

잠깐 ‘꽃’ 이라는 시 앞에 서 봅니다.

이 시는 기형도 전집에 나오는 시입니다.

정성스럽게 필사한 시와 책갈피에 핀 한 송이 꽃을 보니 시를 읽는 분의 마음이 정말 꽃처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라면 내 허리가 잘리어도 좋으리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지급부터 시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볼 것입니다.

빈집을 낭독하시는

노시인의 깊은 목소리가 여름 저녁에 잔잔하게 울려 퍼집니다.

빈집의 쓸쓸함이 더해지는 시간

시가 있어서 삶이 풍성하다는 시인의 말은 오래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숲의 조명에 불이 켜지고 여름 저녁 시의 노래는 계속됩니다.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바람과 사람들의 발소리가 즐겁습니다.

지나가는 시민 한 분은 시비와 시인에 대해 자세히 물으시고 시집을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역시 시를 사랑하는 광명시민이 있어 참 좋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안개를 낭독하기 위해 강가로 내려가 봅니다.

이 시는 특별히 물소리를 들으며 낭독하면 좋을듯해서요.

축축한 안개가 끼지 않는 밤이지만 낭독하는 시의 목소리들이 시원한 물소리에 섞여 흘러갑니다.

안양천 강물에 상장을 접어 종이배를 띄운 소년 기형도가 떠오릅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강물에 불빛들이 떨어집니다.

기형도 시인은 그의 시 <안개>에서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녁 샛강에도 안개가 벗어 놓은 옷들로 가득 찼습니다.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양천은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지요.

시인이 걸었던 샛강의 줄기가 오늘 시를 읽는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었던 날들이 있어서 시인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푸른 저녁의 시 읽기는 기형도 기념사업회의 시인 알리기 일환으로 진행되었어요.

여름밤을 더욱 빛나게 했던 소박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광명의 귀한 자산인 기형도 시인과 안양천 시비 길이 더욱 알려져서

이 길을 걷는 시민들에게 따듯한 감성과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

광명시 온라인시민필진 푸른종이 (박영선)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g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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