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김해 관동 유적 모형 관에서 배우는 선조의 주택 문화와 지형
제12기 김해시 SNS 서포터즈 서정호
2025.06.15
김해 관동유적 모형관(김해시 율하로 2로 258/ 김해시 관동동 1123-1)에서 오랜 옛날 선조의 생활상 가운데 특히 삶의 터전인 지형의 변화와 의식주 가운데 주에 해당하는 주책의 변화된 모습을 특별히 배울 수 있었다.
관동유적 모형관은 유적지를 개발하여 현대인이 이롭게 사용하기 위해 개발하면 뛰어난 문화유산을 그림과 모형으로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김해관동유적 모형관
주소 : 김해시 율하로 2로 258 / 김해시 관동동 1123-1
관동동 유적지 개발에서 알게된 선조의 삶의 모습을 전시한 곳
김해관동 유적모형관에 출입 할 수 있는 정문과 후문의 모습입니다. 후문에는 조경수가 무성하게 자라 입구의 조경이 잘 되어 있습니다.
관동유적지 모형관에서 제일 신기하게 여겨지고 놀랍게 학습하게 된 내용은 오랜 옛날에 김해시 지역에 바다가 자치하고 있었던 지형을 표현한 지도였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번쩍 생각하게 된 내용은 김해시 해반천 언덕에 뱃머리를 구상한 구조물이 있는데 그것이 아마도 그 지역까지 바다였고 배가 드나들었던 지역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김해 봉황동 유적지는 옛날에는 바다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동유적모형관 가운데에 크게 설치되어 있는 관동지역의 산과 하천과 산천의 모양을 나타낸 모형판
관동유적지를 비롯하여 김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유적지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발굴에서 보존까지
관동유적에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도로와 이어지는 #선착장이 발굴되었고, 삼국시대의 지면 식건 물 구조가 확인되었다. 철을 매개로 한 #해상왕국 가야의 물자 유통이나 교역, 해안에 가까이 있는 마을과 상가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더구나 해수면 변동에 따른 삼국시대의 지형도 알 수 있는 자료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보존과 택지개발이라는 서로 부딪히는 두 상황에서 김해시와 한국토지공사 발굴조사단이 등이 협의 한 결과 원래 유적을 땅속에 묻고 그 위에 공원을 만들면서 이 유적의 원래 모습을 알려주는 시설을 복원하기로 하였다. 현재 모습은 유적지 위에 흙을 덮어 원래의 상태를 보존하였고, 그 위에 유적모형관을 지어 관동유적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집
삼국시대의 집은 크게 움집과 고상식 건물로 나눈다. 움집은 땅을 파 #움을 만들고, 벽체와 나무 기둥을 세워 띠나 억새 등으로 이엉을 덮는 형태이다. 그 안에는 화덕이나 고래 등을 설치하여 난방과 조리시설을 만드는 것으로 네모꼴이 많으며 보통 살림집이다. 고 상식건물은 기둥을 세우고 벽체를 두어 요즘의 원두막 같이 만드는 것으로 일종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짐승과 습기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지만, 마을의 전망대나 초소 같은 것도 고상식으로 만들어진다.
관동유적지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움집과 고 상식건물 외에 지 면식건 물이 새로 확인되었다. 생활면이 움 속이나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 있는 구조로 삼국시대의 집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지면식 건물
#지면식건물지는 생활면이 지면에 있는 것이다. 당시 생활면으로 사용된 부분의 흙을 많이 깎아내면 기둥구멍만 남게 되어, 지면식의 구조를 고상식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
#관동유적지의 지면식건물지는 네모꼴의 형태로 길이 450cm 내외의 정면과 측면이 각각 두 칸의 규모가 대부분이다. 기둥 간격은 130 - 210cm 로 다양하며, 기둥구멍의 지름은 80cm 안팎, 깊이는 80 - 100cm 가량이다. 기둥구명 사이에서는 점토에 짚을 섞어 사용한 벽의 흔적이 일부 확인되며, 기둥구명 속에서 기와 조각과 아궁이틀 조각이 출토되기도 한다. 건물지는 대부분 도로와 진행 방향과 나란하게 설치되어 있어, 도로를 인식하고 취락을 조영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위에서 설명한 지면식 건물의 모형
고상식 건물
고상식건물은 굵고 높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얹은 것을 말한다. 창을 내거나 문을 달기도 하며 보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구조이다. 평면 형태를 대부분 네모꼴인데 앞면 옆면 각각 한 칸 혹은 두 칸의 구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적의 발굴에서 몇 개의 기둥구명 흔적만 남아 있지만, 삼국시애의 무덤유적에서 더러 출토되는 #집모양토기와 고분벽화 등의 자료를 이용하여 상부 건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벼농사가 본격화 되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만들어진다.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초소, 벼의 신이 깃든 신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남아시아와 같은 수상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살림집으로도 쓰이고 있다.
관동유적에서도 이러한 고상식건물로 보이는 기둥 구명들이 많이 조사되었다. 그러나 기둥 구명사이의 생활면에서 불 탄 벽체나 불 땐 자리 등이 남아 있어 이 유적의 것은 고상식건물 보다는 지면식 건물로 추정된다.
위에서 안내한 #고상식건물의 모형
#잔교시설 #선착장 모형
건물지 건물이 있었던 지역의 모형
#관동유적모형관 앞쪽은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는 관동유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시민의 힐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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