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전
[블로그기자단] 해 질 무렵, 고즈넉한 석촌동 고분군에서 더위 날리세요!
글·사진: 블로그 기자단 추미양
“백제 유적지 감상하면서 산책도 하니 일거양득이에요.”
“낮은 키 조명 덕분에 고즈넉한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저녁 일찍 먹고 나와 벤치에 앉아 있으면 더위를 몰라요.”
연일 30℃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할 수는 없지요. 석촌동 고분군에는 해 뜨기 직전부터 걷거나 뛰는 분들이 보이고, 해가 질 무렵부터는 직장인이나 가족들이 산책하거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반려견도 드문드문 보이네요.
석촌동 고분군(이후 고분군)은 백제 왕릉 지구 유적지면서 구민들이 자주 찾는 일상 속 쉼터입니다. 고분군은 5세기 경의 백제 왕족이나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적석총(積石塚)인데요 ‘돌무지무덤’이라고도 부릅니다.
지난달 조명, 조경, 화장실 등이 정비되어 이젠 쾌적하게 유적을 즐기면서 산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해가 진 후의 모습이 멋지다고 하네요.
이른 아침, 석촌동 고분군 탐방
저는 아침 일찍 석촌역 7번 출구에서 나와 고분군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정문 앞에는 ‘돌마리’라는 전통 마을 표지석이 서 있고 원형 교차로 가운데에는 돌로 만든 조형물이 있습니다. 정문 기둥과 울타리도 자연석으로 만들었네요. 동네 이름도 돌무지무덤이 많아 ‘돌마리’라고 부르다가 석촌(石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고분군의 대략적인 배치와 탐방로를 확인했습니다. 사진의 우측, 즉 북쪽에 있는 가장 큰 고분이 제3호분이고 가장 남쪽에 있는 제5호분은 현재 발굴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고분군은 전체적으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長方形)입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3단으로 돌 기단을 쌓아 만든 거대한 제3호분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가로 50.8m, 세로 48.4m, 높이 4.5m이니 사진 한 장으로 고분 전체를 담아내기 힘듭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고분 위에 여러 채의 민가가 있어서 무덤의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 정도의 큰 규모면 4세기 후반의 백제 전성기 왕릉일 건데요, 학자들은 근초고왕의 무덤이라고 추정합니다. 제3호분처럼 무덤 안팎을 모두 돌로 쌓은 기단식(基壇式) 돌무지무덤은 고구려식인데, 백제가 부여에서 고구려를 거쳐 남하한 이주민 집단이 세운 국가라는 점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 있는 고구려의 태왕릉이나 장군총 모습과 유사하거든요.
저는 제3호분을 시작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좀 특별해 보이는 조명 장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두워졌을 때 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모양의 벤치를 볼 수 있습니다. 산책 나온 어르신께 여쭤보니 최근에 새롭게 교체되었다며 자랑하십니다.
“벤치 가운데 칸막이가 있고 낡아서 영 불편했는데, 이젠 걷다가 힘들면 앉아 편하게 쉽니다. 너무 좋아요.”라며 엄지 척을 하시네요.
고분군에서는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고분군은 주택가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골목으로 연결되는 출입구가 여럿 있고 탐방로는 인근 주민이 수시로 이용하는 보행로이기도 합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다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음수대를 지나 제4호분과 제2호분을 둘러보았습니다. 제3호분과 다른 점이 있는데 눈치채셨나요? 이 두 고분은 기단을 돌로 쌓았지만, 내부는 흙으로 채운 백제식 고분입니다.
제2호분을 지나니 넓은 고분 광장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관리사무소와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담장을 개비 온(Gabion)으로 만들었네요. 개비 온은 철사로 엮은 망태 안에 돌을 채워 만든 구조물인데요, 주변의 돌무지무덤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증축한 화장실 내부는 아주 깨끗하게 리모델링 되었는데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는 경고문이 여러 장 붙어있어 씁쓸했습니다. 탐방로 주변에 쓰레기통이 하나도 없다 보니 가끔 쓰레기를 놓고 가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쪽으로 발길을 계속 옮기니 밧줄 담장인 로프 펜스(rope fence)로 둘러친 초지가 펼쳐집니다. 낡은 로프 펜스를 최근에 교체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지에는 고분이 없는데 ‘석촌동 1호분 북쪽 연접적석총’이라는 표지판이 있네요. 연접적석총(連接積石塚)은 2015년 5월 이곳에서 땅 꺼짐이 일어나 직경 25cm의 구멍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조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중소규모 적석총 30기 이상이 연결된 대규모(125m×40m) 연접식 적석총이고, 백제 고분 최초로 화장 인골이 다량 발견됐다고 합니다.
토광묘(土壙墓)는 ‘움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움무덤은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안에 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을 넣어 만든 무덤입니다. 제2호분 동쪽에는 ‘제2호 움무덤’, 제1호분 부근에는 ‘제3호 움무덤’이 있는데요 원래 위치에서 옮겨 재현한 것입니다.
제3호 움무덤 건너편으로 가보니 ‘내원외방형 돌무지무덤’이 있고, 그 뒤로 ‘제1호분’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제1호분은 일찍이 집을 짓기 위해 허물어뜨려 많이 훼손돼 정확한 구조를 알기 힘들지만, 무덤 두 개가 남북으로 이어진 쌍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잠시 고개를 드니 우뚝 선 롯데월드타워가 보입니다. 잠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묘한 공간에 서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탐방로의 남쪽 끝까지 걸어가니 ‘석촌동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이라는 안내문이 초록색 높은 철망에 붙어있습니다. ‘제5호분’이 있던 자리인데요, 제5호분은 지름 17m, 높이 3m의 원형 봉토분(封土墳)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조와 축조 방법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한성백제박물관이 본래 모습을 규명하기 위해 정밀학술발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11년 실시한 석촌리 일대 지표조사 기록을 보면 석촌동과 가락동 일대에 293기 이상의 백제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0년대 ‘잠실지구종합개발계획’에 의해 급격히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백제 무덤 대부분이 사라졌다고 해요. 석촌동 고분군은 공원으로 정비되었고 현재 공원 안에는 돌무지무덤 5기, 흙무지무덤 1기, 움무덤 2기 등 총 8기가 복원되어 탐방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저녁 산책
해진 후 고분군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방문한 주말의 일몰 시각은 19시 57분인데요. 19시 40분부터 조명이 켜졌습니다. 더위가 사그라지기 시작하고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부니 주민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정문으로 들어와 우측에 있던 특별한 조명 장치는 고보(Gobo) 조명이었습니다. 탐방로 바닥에 예쁜 그림을 순차적으로 바꿔가며 비추니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즐거워합니다. 롯데월드타워의 조명과 어우러져 멋진 야경을 선물하네요.
제2호분 동쪽에도 작은 규모의 고보 조명이 있습니다. ‘반려동물목줄 배변 수거 필수’, ‘NO, 음주 흡연 및 고성방가 금지’, ‘자전거 및 오토바이 주행 금지’ 등의 문구를 방문객들에게 빛으로 전합니다.
제3호분은 색상과 밝기를 세심하게 조절한 투사 조명 덕분에 야간인데도 고분 윤곽이 잘 드러납니다. 수목 조명 또한 고분 주변의 소나무 숲을 은은하게 비춥니다. 어둠 속에서도 고분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품격 있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잠시 멍하니 이 풍광을 바라보고 있으니 뒤죽박죽된 머릿속이 맑게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높은 가로등 대신 낮은 키의 조명이 새롭게 설치되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산책하기 좋네요.
잠시 반려견과 돌의자에서 쉬고 있는 견주는 “전에는 강한 가로등 불빛 때문에 수면에 방해가 됐는데 이젠 빛 공해에서 벗어났어요. 강아지와 산책하니 지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요.”라며 일상 속 쉼터로서의 고분군에 대한 만족을 표현합니다.
저녁 9시. 주말인 만큼 산책하는 분들이 아침보다 훨씬 많습니다. 유모차를 밀면서 걷는 다정한 부부, 강아지와 산책하는 반려인,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걷는 딸, 벤치에 쭉 앉아 동네 친구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어르신들. 참 다양한 주민이 달밤 산책을 즐깁니다. 사적지라기보다 공원 같습니다. 딸, 손주와 함께 온 어르신은 “지면이 콘크리트가 아닌 흙과 잔디라 땅의 기운을 직접 받으니 건강에도 좋은 것 같아요.”라며 저녁 산책이 루틴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백제의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 ~ 기원후 475년) 왕릉들은 워낙 오랜 기간이 지났고 택지 개발 과정에서 많이 훼손됐습니다. 하지만 석촌동 고분군에 와보니 발굴 연구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원형이 복원됐고 공원으로서의 편리한 기능도 갖췄습니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도시 서울에서 백제인이 남긴 품격 있는 문화유산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석촌동 고분군입니다. 언제든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원을 곁에 둔 석촌동 주민이 부러워졌습니다.
“에잇! 열대야 예보가 있을 때는 나도 산책하러 와야겠다.”
※ 본 기사는 블로그 기자단이 작성한 글로, 송파구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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