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우금티 기념식과 우금티전적 알림터
공주 가볼 만한 곳
우금티전적 알림터
공주시청에서 부여와 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주미산(견준산)을 넘어가는 우금티라고 불리는 고개가 하나 있습니다. 이 고개에는 한 많은 사연이 서려 있습니다. 옛날에 소를 끌고 이 고개를 넘어가다 산적에게 소를 뺏기고 목숨까지 잃는 일이 허다해서 소를 끌고 가지 말라고 우금(牛禁)재, 우금티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우금치((牛禁峙)로 지도에 표시하는 바람에 지금도 우금치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이로 인해서 이 일대는 무고한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구천을 떠도는 한스러운 장소가 되었습니다.
2024년 5월 11일은 동학혁명군이 일제와 관군에 대항하여 싸우다 최후를 맞이한 지 130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이사장 박찬석)에서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우금치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우금티전적지는 공주시내에서 공주시 이인면으로 넘어가는 우금티터널 바로 옆에 있습니다.
우금티전적지에서 바라본 공주시내의 모습입니다.
우금티전적지에는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월성산 봉화대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식전 행사로 금강풍물패의 사물놀이가 펼쳐졌습니다.
우금티기념사업회 김기찬 운영위원장의 개회사에 이어서 국민의례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숙여 거룩한 영령들에게 묵념을 올렸습니다.
사단법인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 박찬석 이사장과 참석한 여러 내빈들의 기념사가 있었습니다. 박찬석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동학농민군은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기상과 염원을 담아 분투하였다고 밝히고, 이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살찌우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자고 역설하였습니다.
이어서 기념 공연이 열렸습니다. 먼저 '평상, 하느날多' 공연단의 '동학, 희망의 몸짓'이라는 연극이 있었습니다. 우금티에 나비가 된 동학혁명군 영혼들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시체가 된 나비를 거두는 것으로 극이 시작됩니다. 일제의 강압과 관군의 폭정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이렇다 할 무기가 없어 죽장을 들고 저항합니다. 하지만 막강한 화력의 일본군과 관군 앞에서 속수무책,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다시 학생들이 나타나 이 영혼들을 깨우는 것으로 극이 끝납니다. 배우들의 리얼한 공연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주고 있어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금학동합창단의 '내 영혼 바람이 되어'와 '걱정말아요 그대' 의 노랫소리가 우금티를 넘어 멀리멀리 퍼져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문화공연단 '논두렁밭두렁' 공연이 있었습니다. 소리꾼 이걸재님의 "백성은 하늘이다!'를 외침으로 시작된 공연은 '동학의 노래'를 시작으로 세 곡의 노래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펼쳐졌습니다. 모두들 연세가 들어 보였지만, 힘찬 외침은 한이 서려 있었으며,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족 대표로 참여한 이원하님을 비롯한 유족들과 관계자들이 위령탑에 헌화를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기념촬영을 끝으로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우금티 기념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으로 올라가 봅니다. 공주창의소 의병대장 이유상, 공주접주 장준환을 기리는 깃발이 펄럭입니다.
이유상은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조직된 민보군(民堡軍)을 이끌었던 유생이다. 1894년(고종 31) 9월 남북접 동학농민군은 항일민족투쟁을 위하여 1차봉기 때의 갈등을 해소하고 남접계는 전봉준(全琫準)을 총대장으로 하고, 북접계는 손병희(孫秉熙)를 총대장으로 하여 논산으로 집결하였다.
이에 이유상은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민보군을 이끌고 공주 건평(乾坪)에서 논산으로 향하였으나 논산에 집결한 남접군의 규모에 놀라 자신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동학의 실체와 전봉준의 인물됨을 보기 위하여 단신으로 남접 동학농민군의 진영을 방문하였다. 이유상은 전봉준의 인물됨을 보고 감동하여 동학농민군에 투항함과 함께 전봉준과는 형제의 의를 맺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금티터널 위에는 너른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농민단체에서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장승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금티전적지 아래에는 우금티전적 알림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때마침 동학혁명군 전적지 탐사팀이 방문을 하셨네요.
우금티알림터 안에는 동학혁명의 발발과 진행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관심있게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네요.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을 말합니다. 1894년 3월 봉건체제개혁을 위해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2차로 봉기한 항일무장투쟁이지요.
우금티전투는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티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입니다. 삼례에서 제2차 기포한 전봉준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 등 북접이 협력하여,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동학농민군은 부여와 논산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였으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견고한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참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우금티전투는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물이 2023년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록으로 등재되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 「동학 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 농민혁명과 관련된 185건(13,132면)의 기록물입니다.
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는 우금티 추모 예술제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하여 우금티전투를 알리고 이곳에서 희생된 분들의 얼을 계승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고 사진전도 열리고 있네요.
동학농민군이 최후를 맞이했던 날을 기념하여 열린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우금티 기념식을 보면서 치열하고 처절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 굳건히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금티전적알림터
위치 : 충남 공주시 우금티로 4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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