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독립을 향해 달렸던 발자취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독립을 향해 달렸던 발자취
일제강점기에 관해서는 학교에서도 수업하고 매년 돌아오는 3·1절과 광복절, 그 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게 되지만 4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월 10일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남녀노소 모두가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8월 15일은 드디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입니다.
모든 날을 다 기억하기란 힘들겠으나 지금 기회로 알게 되었다면 잠깐 시간을 내어 임시정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4월 11일을 맞이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와 수립 기념일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독립선언서 발표로 모두의 마음에 독립에 대한 불씨를 지피며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만세를 외친 다음 날인 1919년 3월 2일, <조선독립신문>에는 ‘근일 중 가(假)정부를 조직한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가(假)는 임시로 임시정부가 수립된다는 의미이며, 4월 9일 서울에는 <조선민국 임시정부>라고 적혀있는 전단이 뿌려졌습니다.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입법부의 역할을 하는 임시의정원을 구성하여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했으며,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1910년 일본은 주권을 강탈하고 식민통치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대한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의 이념을 담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되며,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으로 현대 헌법의 기초가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한다.”라는 문구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 수립 후,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교통국과 연통제를 조직했습니다. 교통국은 통신기관으로 국내와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고 정보를 수집하였고, 연통제는 지방 행정기관으로 국내에 문서와 명령을 전달하고 군자금을 유통하는 등의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해외에 대한민국의 독립 문제를 여론화할 수 있도록 구미위원부를 설치했고,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외교활동도 했습니다.
임시정부의 노력 끝에 일본에서 독립하고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모두가 환영하며 자주독립국으로서 틀을 잡아나갔다면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강대국들이 인정하지 않아 3개월이 지난 뒤에 귀국하였고 미국과 독일이 계속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후는 1948년 5월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진행하여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고 북한은 같은 해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기 위해 198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4월 11일이 아니고 당시는 13일로 지정했습니다. 이유는 4월 10일과 11일은 임시정부를 조직했고 13일 정식으로 선포했다는 논리에서인데요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오다가 국가보훈처에서 4월 11일이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했다고 파악한 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날짜가 변경되었습니다.
수많은 역사 위에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기에 모든 역사를 다 기억하기란 힘들지만 4월 11일을 맞이한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해 생각하고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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