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1322호로 지정된 곡성가곡리오층석탑

곡성가곡리오층석탑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산기슭에 세워진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형태와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1년 9월 21일 보물 제1322호로 지정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 탑의 형식과 형태

▷ 아래 받침돌은 2중의 두껍고 긴 널돌 형식을 하고 있으며 기둥이 없는 것이 특이한 점입니다.

▷ 덮개돌 위에는 돌을 얹어 위층 받침돌을 지탱하는 구조입니다.

▷ 가운데 탑신 사각형 각 면 양쪽에 기둥을 새겨놓아 밋밋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 탑신 위에 테두리 장식이 된 평평한 널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습니다.

▷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을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 각층 몸돌은 1층은 높게 만들고 2층부터는 점차적으로 낮게 하여 안정감을 추구하였습니다.

▷ 2층~5층 몸돌 가운데 부분에는 감실형태의 네모난 홈이 있습니다.

▷ 각 층 지붕돌에는 백제계 석탑 결구 방식인 굄돌 용도의 돌이 올려져 있습니다.

▷ 지붕돌은 내림마루 형식인데 층이 올라갈 수 록 처마끝이 올라가며 예술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 전각 부분 윗면에 2개, 아랫면에 1개씩 풍경을 걸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 탑에 대한 평가

▷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 받침돌 구조, 감실의 존재, 경쾌한 구조의 내림마루 등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탑이라는 평가입니다.

■ 탑에 대한 평가

▷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입증할 기록은 없습니다.

■ 탑에 대한 평가

▷ 사찰에 세워진 석탑임은 분명하지만 이곳에 있던 절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 이곳에 있던 절 이름이 '개사'라는 것 정도가 가곡리 마을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곡성가곡리오층석탑

곡성가곡리오층탑은 사찰이 아닌 마을 뒷산 아래 세워져 있습니다. 정확한 건립 시기나 그곳에 있던 절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아 더욱 흥미로움을 자극하는 미스터리한 석탑입니다. 가곡리 오층석탑을 찾아가는 곡성 역사여행, 함께 함께 떠나보실까요?

감실과 지붕돌은 전형적인 백제계 탑 양식을 보여줍니다.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에 자리 잡고 있어 곡성가곡리오층석탑입니다. 가곡리 앞으로는 들녘이 펼쳐져 있고 마을은 산을 등지고 있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진한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보여줍니다.

곡성군 오산면 가곡리

정겨움이 물씬 풍겨나는 가곡리 마을 안 길을 통과하여 언덕 위에 올라서면 산기슭에 단아하게 자리 잡은 곡성가곡리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탑 아래쪽 기와집은 절이 아니라 고령 신씨 제각인 치일제입니다.

치일제와 곡성가곡리오층석탑

탑 아래쪽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등의

탐방객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돌계단과 탑의 어울림이 예술입니다.

※계단을 오르기 전 이곳을 배경으로

인생 샷을 찍어보세요.

오르는 계단과 탑의 어울림이 예술입니다.

절은 간데없고 깔끔하게 단장된 잔디밭에 탑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널찍한 탑전

여기 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특별히

돌보는 이도 없었을 텐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탑은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이 처음 발견하였을 때는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는군요.

흩어져 있던 돌을 일일이 맞춰서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위로 올라갈 수 록

탑신의 높이를 달리하여 안정성을 추구한 부분과

땅을 향하고 있던 처마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하늘을 향하도록 한 것에서

더욱 예술성이 돋보이는 탑입니다.

풍수가들에 의하면 탑이 세워진 이곳에는

명당의 기운이 강하게 흐른다네요.

※탑을 이상 돌면서 마음속 소원을 빌어보세요.

예술성이 돋보이는 곡성가곡리오층석탑

탑은 있는데 절은 어디로 갔을까요.

유명한 신숙주 선생의 선조이신 고려 선비

신덕린 선생의 묘소와 제각이 탑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부 전설이나 말하기 좋은 사람들은 이곳이

명당이라는 것을 알고 묘소를 썼다고 하는데,

묘소를 쓴 것은 절이 사라지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면 절을 불태운 범인은 왜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왜구들은 고려 공민왕 때 두 번이나 쳐들어와

곡성 관청. 사찰. 민가 할 것 없이

초토화 시켜 버렸거든요.

왜구의 침입 시점과 묘소를 쓴 시점은

약 5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가곡 마을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 있던

절 이름이 개사라고 하는데

마을 뒷산 생김새가 한자 낄 개(介)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는군요.

여기에 절이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기록도 없고 고고학적 자료도 없어

그냥 미스터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곡성가곡리오층탑은

미스터리 석탑입니다.

고령 신씨 제각 치일 재

곡성가곡리오층탑을 찾아갈 때 꼭 함께 만나봐야 할 흥미로운 유물이 가곡리 마을 앞에 서 있습니다. 바로 가곡리 석장승입니다. 마을에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장승이라고 하네요.

나무 장승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돌로 깎은 석장승은 드뭅니다. 가곡리 석장승은 제주도 하르방이나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석장승과도 많이 다릅니다.

가곡리 마을 입구를 지키는 석장승

남 장승 은 마을 방향으로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여 장승이 서 있습니다. 남 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얼굴이 곱상한 여 장승은 머리에 쪽을 진 것 같기도 하고,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 석장승들에는 우리 선조들의 순박한 표정이 담겨 있어 더욱 정겹습니다.

가곡리 석장승의 표정

막바지 가을 여행은

정겹고 맛있는 곡성으로 오세요.

늦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시골길 드라이브 겸해서

곡성가곡리오층석탑도 꼭 만나보세요.

가곡리 석장승 앞에서 인증샷도 찍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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