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千年古刹)이란 천년 넘는 역사를 지닌 오래된 사찰을 말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천 년 이상 끊이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교회. 성당. 사찰. 사원. 성전 같은 종교시설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BC 483년에 세워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지금은 단지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파리 노트르담 성당은 서기 1200년 경에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태안사가 세워진 시기는 언제일까요. 서기 742년입니다. 노트르담 성당 보다 무려 450년 먼저 세워졌고 지금도 여전히 중생을 위한 마음의 안식처 평화로운 산사로 남아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곡성에 있는 도림사. 관음사. 천태암도 태안사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도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2월에 떠나기 좋은 겨울 산사 여행지로 곡성 태안사를 추천합니다.

존재 자체가 기적인 태안사 대웅전

올해까지 1,280년이 흐르는 동안 태안사는 어떻게 아무 탈 없이 그 명맥을 유지해 왔을까요? 태안사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태안사를 휩쓸고 지나간 큰 사건 몇 가지만 추려 보겠습니다.

■ 왜구의 침략

고려 공민왕 때 남원 황산리 전투에서 이성계 장군한테 대패한 왜구가 곡성 방면으로 퇴각하면서 그 앙갚음으로 곡성 지역의 사찰. 민가. 관청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타다만 재만 남았다고 합니다. 곡성의 치소가 당동성에서 현재의 곡성읍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도 그것 때문입니다. 당연히 태안사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 임진왜란(정유재란)

전주성을 치기 위해 하동으로 상륙하여 구례를 거쳐 남원으로 진출한 왜군 15,000명이 명군을 피해 곡성에서 보름 가까이 머물습니다. 그때도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습니다. 물론 태안사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 6.25 한국전쟁

6.25 때 퇴각하지 않고 태안사에 은거하고 있던 곡성 경찰 의용대와 북한 인민군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태안사 대부분의 전각이 파괴되고 유적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폐찰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년고찰 다운 위용과 품격을 보여주는 태안사는

존재 자체가 기적입니다.

천년의 태안사를 지탱시켜준 주인공 적인 선사를 기리는 탑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태안사가 더욱 두드러지는 까닭은

통일신라 말에 전개된 불교 개혁 운동의 발원지 구산선문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이었다는 역사성입니다.

이후 청정한 참선 도량을 유지하면서 무수한 고승대덕이 태안사를 용맹정진 수행처로 삼았습니다. 전설 같은 이적을 남겨 신승(神僧)으로 일컬어지는 도선국사도 태안사에 머물며 혜철 선사 문하에서 공부 하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조태일 시문학관 주차장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잘 참고하면 태안사 걷기가 더욱 즐거워집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12월!

진짜 여행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그동안 걸어온 자취를 되돌아보고, 내 삶을 더욱

바람직하게 만드는 각오를 다지는

나만의 송년회!

너무 거창한 가요? 그렇다면, 지난 일 년간 고생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쯤으로 해두죠.

그래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기운이

흐르는 천년고찰 태안사를

혼자서 하는 여행지로 추천하는 것입니다.


약간 고생스럽더라도 조태일시문학관에

차를 두고 태안사까지는 걸어서 다녀올 것을

권합니다.

사색을 하기엔 평화로운 길을 걷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운치 있는 길을 홀로 걸을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태안사 가는 길에는 비포장도로와

살짝 산행하는 느낌이 나는 숲길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둘 다 이용해도 상관없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태안사 가는 길, 걷고 싶지요?

태안사로 가려면 정심교, 반야교, 해탈교

이렇게 세 개의 다리를 건넙니다.

태안사 가는 길, 정심교 반야교 해탈교

정심교 건널 때는 청정한 마음으로

반야교 건널 때는 깨달음을 구하고

해탈교 건널 때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렇게 구도자의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태안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다리와 누각을 겸한 능파각에 이르게 됩니다.

숲길 지나면 능파각

능파각이라는 이름은 '여인이 치맛자락을 끄는 소리'

라는 멋들어진 당시(唐詩)에서 인용했다고 하네요.

능파각에 걸 터 앉아 맑은 계곡이 들려주는

자연의 연주를 잠시 감상해 보세요.

능파각 교각에 앉아 자연의 연주를 잠시 감상해 보세요.

태안사 일주문에 이르면 마음이 먼지 한 톨

없이 수정처럼 맑아져 있을 겁니다.

태안사 일주문

태안사 대웅전으로 올라가기 이전에 먼저

연지부터 들러서 한 바뀌 돌아보세요.

감상 포인트는 연못에 비친 태안사의 그림자입니다.

연못에 비친 태안사 그림자를 감상해 보세요.

그 다음에는 탑전에 서 있는 두 개의 보물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각각 보물 274호와 275호로 지정된

고려 시대 고승으로 이름을 날린

광자대사 윤다스님의 승탑과 탑비입니다.

천년이 훨씬 넘은 세월이 지나갔지만 탑비를 이고 있는

거북의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광자대사 윤다 스님 탑비와 승탑

태안사에는 보물 956호로 지정된 청동 대 바라와

보물 1349호로 지정된 동종이 있습니다.

만세루에 전시된 동종과 대 바라 사진

태안사 청동 대 바라는 불교 제례에 필요한 타악기입니다. 1447년( 세종 29)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발원에 따라 조성되었고, 1454년(단종 2)에 개조되었습니다. 지름 94cm로 우리나라 바라 중에서 가장 큽니다. 바라에 새겨진 경문은 조선 초기의 금석문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태안사 동종은 높이 96.5㎝, 입지름 65.7㎝의 종으로 통일신라에서 비롯된 한국 종의 독창적인 조형 양식을 계승하는 한편 외래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양식의 유물입니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주조기술도 우수하며, 몸체에 양각된 명문을 통해 조성 유래와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보물은 만세루에 전시된 사진으로만 볼 수 있고 실물은 매년 초파일에 공개합니다.

선풍(禪風)으로 가득한 태안사

태안사는 구산선문 동리산파 중심 사찰의 명맥을 이어오며 선원(禪院)을 운영 중인 참선 도량입니다.

국보 승격을 추진 중인 태안사 적인 선사 승탑

적인 선사 승탑을 모신 탑전이

태안사 맨 위쪽에 모셔져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으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배알문을 통과하면 혜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마주합니다. 보물 273호로 지정된 혜철 선사 승탑에는 신라 탑 특유의 조형미와 뛰어난 석조 예술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승격이 추진 중입니다.


유서 깊은 천년고찰 태안사를 여행하는 요령은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입니다. 부디 태안사에서 벅찬 희망을 만나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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