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1코스ㅣ승학산, 억새풀을 머금고학이 날아오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부산을 대표하는 산,
그곳에서 '부산문화유산'을 찾아보는 답사기
「부산 산길 역사의 발자취 찾아서」
시작, 첫 번째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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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산, 억새풀을 머금고
학이 날아오르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1 코스 |
에덴공원 승학산 ▶ 6월 항쟁도 ▶ 승학산 명품숲길 ▶ 승학산 정산 ▶ 승학산 억새밭 ▶ 승학산 국립부산승학산 치유의숲 ▶ 제석골 할매당 |
코스 1ㅣ승학산,
억새풀을 머금고 학이 날아오르다
학이 나는 모습을 닮은 승학산.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비가 있는 에덴공원을 비롯하여 은빛 바다를 연출하는 억새밭, 지친 심신을 힐링할 수 있는 치유의 숲, 낙동강 하구의 철새, 을숙도 너머의 낙조가 어우러진 낙동정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산이다.
도심 속 낙원을 꿈꾸다
에덴공원
승학산에서 하단 방향으로 바라보면, 그 아래에는 학이 내려앉기에 좋은 작은 대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에덴공원’이다. 에덴공원은 사하구 하
단동에 있다. 승학산에서 학을 타고 날아오른 신선이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하여 예전에는 ‘강선대’라 불렸다. 에덴공원의 앞은 낙동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면서 만들어진 넓은 삼각주이고 평야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들이 있어 시야가 가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에 오르면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일본군 포병 부대가 해안 포대를 설치하여 주둔하기도 하였다. 입구를 조금 오르면, 아름드리 소나정상 입구에 도착하면 이곳이 에덴공원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에덴苑(원)’이라 새겨진 비석은 이곳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지상낙원, 즉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에덴동산을 표방했음을 알게 한다. 표지석에 새겨진 글씨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빛이 바래졌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서 있는 돌인지 표지석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곳에는 오태균, 1922~1995 음악비와 청마 유치환,1908~1967 시비가 있다. 두 사람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악인과 시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33년에 레코드 가게에서 우연히 흘러나와 듣게 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이 곡을 평생토록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1947년경 부산제2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출하였다.
오디션을 통해 국립서울교 향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고, 1948년에는 대전 공회당에서 첫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그 후로 한국전쟁 중에 부산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
공원 정상의 남쪽 기슭에는 청마 유치환 시비가 있으며 을숙도를 바라보고 서 있다. 유치환 선생은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여,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로 유학 갔다가 귀국하여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활동을 하면서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그의 초기 대표작인 「깃발」, 「그리움」, 「일월」 등이 수록되어 있다. 1940년에는 만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광복 직후 귀국하였다. 시비에는 선생의 대표작 「깃발」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을 向하여 흔드는 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純情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의 푯대 끝에 哀愁는 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한성이 깃들다
에덴 공원에서 승학산 방향으로 도로를 건너면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가 있다. 이곳은 뜨거웠던 민주화의 숨결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캠퍼스 입구에서 오른쪽 계단을 따라 중앙운동장현재 뉴턴 공원 및 주차장 쪽으로 오르다 보면, 붉은색 벽돌로 조성된 교수회관이 있다. 아래쪽 도로 벽면을 보면 담쟁이기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 보인다.
그 담쟁이가 덮고 있는 것이 바로 「6월 항쟁도」이다. 6월 항쟁도는 1987년 6월 민주주의의 열망을 담아 온몸으로 독재에 항거하던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6월 항쟁도」는 1987년 6월에 일어났던 민주 항쟁을 기념하고 자주·민주·통일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취지로 제작된 벽화이다. 이태춘 열사
의 추모비 건립과 함께 기획되었으며 동아대학교 그림패 「열린그림마당」의 회원들이 1988년 6월 15일부터 두 달 동안 작업을 한 끝에 완성
하였다.
숲속에 이태춘 열사비를 비롯한 민주화 투쟁으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작은 공원이 있다. 이태춘李泰春, 1960~1987은 동아대학교 졸업생으로 군사 독재 시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항쟁하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는 가두시위를 하면서 서면으로 향하던 중 좌천동 고가도로일명 오버브릿지 위에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공원에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횃불 동상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많은 분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또한 담쟁이가 가려 지금은 볼 수 없는 6월 항쟁도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가 그러하듯, 쟁취하는 것이다.
굽어보며 산에 들다
낙동강 줄기
전망대 바로 위에 있는 바위 쉼터부터 동아대학교 학군단 뒤편까지의 산길이 ‘승학산 명품 숲길’이다. 삐뚤빼뚤한 돌부리들이 아무렇게 드러나 있고 키 높은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이 빛을 가린다. 가파르지 않은 완만한 등성이를 걷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고 상쾌하다.
짧지만 아름다운 숲길이다.
우리는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登山이라 한다.
말 그대로 ‘산에 오른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옛 선조들은 입산入山, 즉 ‘산에 든다.’라고 했다. 오르는 것이 정복에 가깝다면 든다는 것은 조화에 가깝다.
중봉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을 걷다 보면 길 한가운데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굵은 가지가 셋으로 나누어져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멀리 낙동강을 향해 우뚝 솟아올라 수없는 삭풍을 견뎠으리라.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잠시 걸음을 멈춰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낙동강과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는 나무 데크로 만들어져 있다. 멀리 낙동강과 김해 평야, 가덕도와 거제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을숙도 너머 남해 바다가 들어온다. 승학산을 오르면 어디서든 낙동강과 김해평야가 보이지만, 보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땅 아래 펼쳐진 세상들도 조금씩 달라진다.
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지다
전망대 바로 위가 승학산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그 중앙에 정상석이 있다. 정상석頂上石 앞면에는 해발 고도 497m가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고려 말 무학 스님과 연관된 산 이름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정상석 옆에는 사하구청에서 새천년2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있다. 앞면에는 ‘새千年未來雄飛沙下[새천년미래웅비사하]’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鶴鳴于天聲聞四海[학명우천성문사해, 학이 하늘에서 우니 온 세상에 다 퍼진다]’라는 문구가 있다.
모든 산이 그렇듯이, 정상은 땀의 결과이다. 승학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구덕산 정상과 기상 관측소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김해평야, 남쪽으로는 넓은 남해 바다, 북쪽으로는 끝없는 반도의 산야가 보인다. 큰 학이 힘차게 날아올라 한 번 힘껏 울면 그 소리가 온 천하에 울려 퍼질 듯하다.
승학산 정상에 올라보니, 필자가 만약 학이라면, 발아래 보이는 낙동강 하구와 넓은 김해평야, 그리고 광활한 바다를 향해 힘찬 날개짓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은빛 물결,
온 산에 퍼지다
승학산의 진면목은 정상에서 구덕산 방향으로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억새는 우리의 산과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이다. 키가 대략 1~2m가량 자라는데 가을이 되면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흰색 꽃을 피운다. 그 길이가 대략 20~30㎝ 정도이다.
승학산 억새밭은 약 10만㎡ 정도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최근 사하구청과 민간단체가 뜻을 모아 억새밭을 새롭게 복원하여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숲 향기 맡으며
삶을 치유하다
억새밭을 지나 구덕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부산 치유의 숲’이 나타난다. 넓게 조성된 편백나무 사이로 여러 갈래의 오솔길들이 있고 곳곳에 넓은 나무 데크를 만들어 숲 향기를 맡으며 일상의 고단함을 힐링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원도심 산림자원을 활용한 생활밀착형 치유의 숲을 조성하 부산 시민 누구나 부산 치유의 숲을 이용할 수 있다. ※ 2024년 8월부터 운영 중
단디 살피 주이소
제석골 할매
승학산 제석골은 오래전부터 제당이 있던 곳이다. 이곳 마을 이름인 당리堂里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말 그대로 ‘당산이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당집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중턱에 위치하는데 이 당집이 바로 제석골 할매당이다. 제석골은 지세가 상당히 험준하다. 특히 할매 당집이 있는 절벽 아래로는 세찬 물줄기가 흘러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제석골 할매당은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원래는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당산제는 음력 삼월 삼짇날 새벽 4~5시 무렵에 행한다.
할매당은 면적이 9.1㎡이고, 기와 팔작지붕에 벽은 블록을 쌓아 마감한 구조물이다. 문은 띠살 여닫이 두 짝문으로 되어 있다. 이 구조물은 두
칸으로 되어 있는데, 왼쪽이 제당이고 오른쪽이 제물당이다.
돌탑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당리마을에 있다. 낙동 초등학교 앞, 당리 경로당이 있는 곳에 돌탑이 있다. 돌 사이를 시멘트로 메워 종형으로 만들었는데 밑면의 지름은 360㎝, 높이는 290㎝이다. 돌탑에는 동북향으로 향한 제단이 있다.
돌탑의 왼쪽에는 200여 년이 된 검팽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당산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을공동체신앙 의례이다.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에게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로서 오래전부터 구비전승되어 온 민간 신앙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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