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울산 남구의 산증인! 남구 토박이를 찾습니다.
이 구역 토박이 다 모여라~! 🙋♀️🙋♂️
울산 남구에서 남구의 산증인, 남구 토박이를 찾습니다!
남구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울산 남구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지켜온 남구 토박이를 선정하여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할 예정인데요.
아래 조건에 해당하시는 남구 토박이분들은 주저 말고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울산광역시 남구 산증인
토박이 모집 안내
울산 남구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남구 토박이 20여 명을 모집합니다.
남구 토박이로 선정된 주민분들께는 전통문화행사 우선 초청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며, 9월 고향사랑의 날 행사에서 시상을 할 예정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남구와 함께 해 온 남구 토박이 주민분들의 적극 참여 기다리겠습니다!
💡 접수기간 : 2023. 6. 12.(월) ~ 7. 20.(목)
💡 선정인원 : 20여 명
💡 신청 자격 : 아래 조건 중 1개 이상 조건을 만족하는 남구 주민
1. |
1945년 이전부터 울산광역시 남구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는 자 |
2. |
울산광역시 남구에서 3대 이상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는 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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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외 대상 : 2023년도 구청장 포상업무지침 준용
💡 선정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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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 방법 : 주소지 동 행정복지센터 방문 접수(토·일요일, 공휴일 제외)
💡 신청서류 : 토박이 신청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관한 동의서
※ 서식비치 : 남구청 주민자치과, 각 동 행정복지센터, 구 홈페이지
▼ 신청서식 다운로드하기 ▼
💡 시상 시기 : 2023년 9월 고향사랑의 날 행사에서 시상 예정
💡 문의처 : 남구청 주민자치과 (☎ 052-226-5472)
역사로 알아보는
울산광역시 남구
🔍
울산 남구의 연혁
출처 : 울산광역시 남구청
근대 이전 |
삼한시대 : 진한에 속함 삼국시대 : 굴아화현 고려시대 : 울주로 최초 지정 조선시대 : 울산군 |
1930년대 |
1931.04.01 : 울산읍으로 승격 |
1960년대 |
1962.01.27 : 울산특정공업지구로 결정 공포 1962.06.01 : 울산시 승격 (장생포 출장소 설치 다운, 무거, 두왕리 편입) < 남구 법정동 > (고사동, 남화동, 달동, 야음동, 두왕동, 매암동, 무거동, 삼산동, 상개동, 선암동, 성암동, 신정동, 여천동, 옥동, 용연동, 용잠동, 장생포동, 황성동) |
1970년대 |
1972.10.01 : 울산시 조례 제310호 동제(洞制) 시행 (신정동, 달동, 무거동, 옥동, 야음동, 선암동, 부곡동, 황성동, 용연동, 여천동, 용잠동, 장생포동) 1976.04.20 : 장생포출장소 폐지 1977.11.01. : 신정동 분동 (신정 1,2) 용잠동 폐지 1979.05.01 : 신정 1동 분동(신정 1,3), 야음동 분동(야음 1,2) |
1980년대 |
1982.09.01 : 신정 2동 분동(신정 2,4) 1985.07.15 : 남구 개청(區制 실시) 1987.12.10 : 남구 보건소 설치 |
1990년대 |
1995.01.01 : 통합 울산시 남구(울산시,군,통합) 1995.03.02 : 신정 3동 (신정 3,5) 달동 (달,삼산) 무거동 (무거 1,2동) 분동 1995.05.01 : 부곡, 황성, 용연동을 개운동으로, 여천동을 야음 1동으로, 매암동을 장생포동으로 통.폐합 1997.07.15 : 울산광역시 남구 개청(법률 제 5243호) 1998.10.17 : 야음1장생포동(야음1동, 장생포동) 선암동(선암동, 개운동) 인구 5,000명미만 과소행정동 통.폐합 |
2000년대 |
2002.08.30 : 무거1동 일부를 울주군 범서읍으로, 울주군 범서읍 일부를 남구 무거1동으로 각각 편입(대통령령 제17692호) 2007.02.26 : 무거1동을 삼호동, 무거2동을 무거동으로, 야음1장생포동을 야음장생포동으로, 야음2동을 대현동, 야음3동을 수암동으로 행정동 명칭변경(구조례 제405호) |
울산 남구의 유래
※ 남구 법정동 기준
출처 : 울산광역시 남구청
신정동 |
숙종과 영조때까지는 송정, 봉월, 팔등의 세 마을이 솔밭처럼 정립하고 있었다. 이후 정조와 순조 때는 송정, 신정, 봉월, 팔등, 원당으로 그리고 고종 31년과 1911년에는 소정, 봉월, 월평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이를 합하여 신정이라 하였다. |
달동 |
숙종 46년(1720)에 무둔리와 곶지리로 갈라져 있다가 고종 13년(1876)에는 곶지동의 달일마을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은월봉의 산아래에 자리잡은 평지마을이란 뜻에서 달동이라 하였다. |
삼산동 |
숙종, 영조때는 신리(新里)란 단일마을이었다. 정조때는 신리와 삼산, 순조때는 신리, 신복, 삼산, 신기, 중리, 고종때는 신리, 신복, 삼산, 중리로 1911년에는 신리, 삼산, 중리로 갈라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부터 이를 합하면서 산봉우리가 3개가 솟아 있었다 하여 삼산이라 하였다. |
무거동 |
신라 경순왕을 안내하던 동자승이 자취를 감추어 없어진 곳이라 하여 무거라 불렸다. 정조때는 무거 내리와 신복리로, 고종때는 무거동과 신복동, 삼호동으로 갈라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면서 무거라 불렸다. |
옥동 |
옥동에는 숙종 46년(1720)에 와와리와 격동리의 두 마을이 있었다. 이후 정조때는 와와, 옥현, 격동, 갈현으로 늘어났고, 순조때는 상리가 늘어났으며, 고종때는 와와, 옥현, 상리, 격동, 갈현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면서 옥동이라 하였다. |
두왕동 |
본래 울산(울주)군 청량면 지역으로서, 옛날 대마도주(對馬島主) 김모(金某)의 선조 무덤이 마을에 있다 하여 도왕(島王)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왕리라 개칭하고,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 |
여천동 |
여천동에는 숙종때 저내리와 물고일의 두 마을이 있었다. 이후 정조때는 여천리와 물고리로, 고종때는 화곡, 여천, 증리, 만수, 산안, 천곡, 월하로 1911년에는 화곡, 여천, 만수로 갈라져 있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들을 합하면서 좋은 우물이 있었다 하여 여천이라 하였다. |
야음동 |
야음동은 숙종때 야음리라 하던 마을이다. 이후 영조 41년(1765)에는 야음과 대암으로, 정조때는 야음, 대암, 도산으로 순조때는 야음과 도산으로 갈라져 있었다. 고종 31년(1894)에는 야음, 도산, 송호로 그리고 1911년에는 야음, 도산으로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이들을 합하면서 마을 뒷산의 모양이 이기야(也) 자 같이 생겼고 그 산에서 이기야자 소리가 난다하여 야음이라 하였다. |
선암동 |
선암동은 고종 31년(1894)에 선암과 명동으로 갈라져 있다가 1911년부터는 이 마을에 있는 신선암에서 선인이 놀았다 하여 선암이라 하였다. |
상개동 |
울산(울주)군 현북면의 지역으로서 상개라 하였는데, 1914년 명산동, 개운동을 병합하여 상개리라 해서 대현면에 편입되었다가,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 |
부곡동 |
부곡동은 본래 고안방(高安坊)이라 하였다가 고종 31년에는 현남면의 부곡동, 화장동과 현북면의 사평동, 신안동의 4개 동으로 갈라져 있었다. 1911년에는 사평, 신안을 합쳐 부곡(夫谷)이 되고, 부곡(釜谷), 화장을 합쳐 화장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여 부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
성암동 |
울산(울주)군 현남면의 지역으로서 옛날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성(營城)이 있었다. 개운포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수군기지(水軍基地)가 되었으며, 조선조 말의 이름은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암리라 해서 대현면에 편입되었다가,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 |
고사동 |
울산(울주)군 현북면의 지역으로서 고실 또는 고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현남면의 유곶동을 병합하여 고사리라 해서 대현면에 편입되어,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리가 동으로 되었다. |
황성동 |
황성동은 숙종때 성외리와 황암이라 하던 마을이다. 이후 영조때는 성외와 황암으로 정조때는 성외, 황암, 세죽, 장암, 지동으로 갈라져 있다가 순조때 지동마을이 없어졌다. 고종때는 성외, 세죽, 개곡으로 1911년에는 다시 성외, 천곡, 세죽, 계곡, 황암으로 세분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면서 황암의『黃』자와 성외의『城』자를 따서 황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용연동 |
용연동은 영조때 용소리(龍所里)라하던 마을이다. 이후 정조때는 용연, 제하로, 고종때는 용연, 용해로 1911년에는 용련, 반호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이를 합하면서 가리못(加里池)에 용이 살았다하여 용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
남화동 |
울산(울주)군 현남면의 지역으로서 신포(新浦)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화리라 해서 대현면에 편입되었으며,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 |
용잠동 |
울산(울주)군 현남면의 지역으로서 용잠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잠리라 해서 대현면에 편입되었다가, 1962년 울산시에 편입되어 동이 되었다. |
장생포동 |
장생포동은 숙종, 영조때 장생포리(長生浦洞)의 단일마을이었으나, 정조때는 창승과 구정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장승과 구미로, 1911년에는 구정(九停)이라 부르다가 1914년에는 장승과 같은 세장(細長)한 포구 또는 장승이 있었던 포구라는 데서 장생포라 하였다. |
매암동 |
매암동은 숙종 46년(1720)에는 낫개(吾浦)라 하던 단일마을이었다. 이후 정조때는 낫개, 납섬, 양죽이라 하였다가 순조때 다시 낫개라는 단일마을이 되었다. 고종때는 매호, 교암, 양죽, 양해의 4개동으로 갈라져 있다가 1911년에 매호, 교암, 대일, 양죽으로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이를 합하면서 매호동의『梅』자와 교암동의『岩』자를 따서 매암이라 하였다. |
울산 남구 토박이로 선정된 주민분들께는 각종 지역 행사 우선 초청 혜택과 오랜 세월 동안 남구와 함께하며 쌓아온 애향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입니다.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것에 대해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남구 주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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