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일 전
백운산 자락에서 태어나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의병형제들의 마을
남강이 흘러가는 곳에
성이 세워져 있어서 그런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진주성은
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한 곳입니다.
진주성은 천연의 요새와 같은 곳이지만
많은 사람이 머무르기에는 협소한 성입니다.
진주의 명소로 알려진 진주성이
역사에서 전면에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때였습니다.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만든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진주대첩의 현장이었습니다.
광양의 백운산이라는 곳으로 가면
백운산의 기운이 내려오는 곳에
형제의병장마을이라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강희보, 강희열 형제가
출생한 마을입니다.
강희보와 강희열은 1560년경에
광양시 봉강면 신촌마을에서
진주 강 씨 강천상(姜天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제의병장마을에는 형제의 묘역과
그들을 모시고 있는 쌍의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 강희보는
광양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우는 등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를 했다고 합니다.
의병장마을의 안쪽에 들어오면
형제들의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두었습니다.
파죽지세로 올라가던 일본군은
병참선이 길어지고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는 가운데
명나라군과 강화협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1593년 4월부터
한양에서 철수하기 시작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희보는 의병들을 이끌고
의병장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은 남하하다가
1592년 10월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설욕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집결하기 시작합니다.
진주성전투를 승리를 이끌었던
김시민장군은 세상을 떠나고
진주성은 고립무원의 처지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곳에 오면
형제들의 의병장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의병장 김천일이 지키고 있던
진주성이 위급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강희보 등의 여러 의병부대는
진주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무과에 급제한 동생 강희열도
조방장(助防將)으로
당시 영남과 호남을 잇는 군사요충지인
구례 석주관을 지키던 중에
진주성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바로 휘하 군사를 이끌고
진주로 가 수성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수성의 입장이었지만
일본군은 10만 명에 달했고
진주성을 지키는 병력은
1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1593년 6월 21일 진주성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9일간 진행된 전투에서
조선군과 의병은 전멸하였는데
6월 27일 형인 강희보가 먼저 전사하고
6월 29일에는 동생 강희열도
전사하게 됩니다.
이후 조정에서는 1607년(선조 40)
강희보 · 강희열 형제를
진주 창렬사에 배향했고,
1740년(영조 16)에
강희보에게는 호조좌랑(정 6품),
강희열에게는 병조참의(정 3품)를
각각 추증했습니다.
8월의 광양 백운산은
맑고 푸르른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전남 광양시가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등
심각한 기후 위기를
피부로 체감하는 초유의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으로
백운산산림박물관을 추천했습니다.
백운산을 찾아가 본 사람들이라면
시간을 내서 형제의병장마을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추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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