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이 기호유학의 중심이라는 것 아시나요?

기호유학이란 기호학파와도 같이 사용됩니다.

조선시대를 움직였던 유교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고 거기서 다시 남인 북인, 동인 서인, 노론 소론...

끝없이 분파하면서 세력화하였는데요.

그러한 기호학파의 중심인, 논산시 노성면에는 문정공 팔송 윤황선생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문정공 팔송 윤황은 누구?

윤황[尹煌 1572년(선조 5년) - 1639년(인조 1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 파평,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노곡[八松·魯谷]입니다.

곡성 현감을 역임한 윤사은[尹師殷]의 후손입니다.

고조는 대사성, 개성부유수를 역임한 평와 윤탁[平窩 尹倬]이고, 증조는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윤선지[尹先智]이며, 할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윤돈[尹暾]입니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효렴공 윤창세[孝廉公 尹昌世]' 어머니는 청주경씨 홍문관부제학,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경혼[慶渾]의 딸이며, 부인은 창녕성씨로 우참찬을 역임한 문간공 우계 성혼[文簡公 牛溪 成渾]의 딸로 성혼의 사위가 되면서 그의 학통을 계승하는 수제자가 되어 기호유학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팔송윤황고택 사랑채 전경 [2025년 5월 23일 촬영]

팔송 윤황은 선조 30년(1597)에 장원급제하여 봉상시정의 벼슬을 거쳐 동부승지, 이조참의 전주부윤을 지냈으며 벼슬은 대사성에 이르렀고, 1608년(광해군 즉위 년) 북청 판관으로 성가한 자제를 거느리고 관아에 머물고 있다는 사헌부의 탄핵과,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주화(主和)를 반대,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 등 주화론자의 유배를 청하고, 항장(降將)을 참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에 정묘호란 때와 같이 척화를 주장하여 집의 채유후(蔡裕後), 부제학 전식(全湜)의 탄핵으로 영동군에 유배되었다가 병으로 풀려나와 죽었다고 합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공으로 영광의 용계사우(龍溪祠宇), 영동의 초강서원(草江書院), 노성의 노강서원(魯岡書院)에 제향 되었습니다.

팔송 윤황선생 고택 안내판 [2025년 5월 6일 촬영]

지금의 팔송윤황선생고택은 윤황(1572∼1639) 선생의 6대손 윤정진[尹定鎭]이 조선 영조[英祖] 때 이 자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이어서 소개하겠지만 '一 자'형 사랑채가 있고 뒤로는 ㄱ자형 안채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이랍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모두 옆에서 볼 때 지붕 선이 여덟 팔(八) 자 모양으로 간결한 민도리집이며, 부연이 없습니다.

비석의 가첨석인데요.

언제부터인가 동남쪽의 화단에 굴러다니던 것이랍니다.

팔송윤황고택 동남쪽 연못에서 바라본 전경 [2025년 5월 23일 촬영]

지난 5월 6일 방문 시에는 보지 못한 꽃창포가 노랗게 꽃을 피운 모습의 연못에서 이제 잎이 올라서는 연의 모습도 보았는데요.

곧 아름다운 연꽃도 볼 수 있겠죠?

옆에서 바라본 사랑채의 모습인데요 날아오를 듯 멋지게 솟아 오른 지분이 바로 팔작지붕이랍니다.

뒤에서 바라본 사랑채의 모습인데요.

바깥으로 튀어나온 벽이 바로 벽장이 있는 곳이랍니다.

사랑채의 뒤편,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인데요.

지금은 열려있는 사당 방향으로 돌아 들어가면 된답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당의 입구에서 바라본 팔송 윤황선생 고택의 모습입니다.

대문 대신 이 통로로 들고난답니다.

^^

팔송 윤황선생고택에 있는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사당[부조묘]의 정문입니다.

이곳이 제사를 지낼 때 제사 음식이나 용품, 사람들이 들고 나는 측문입니다.

부조묘 사당의 모습입니다.

2017년 11월 17일 5시부터 진행된 부인의 제사 시 모습

내부의 모습인데요.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일 겁니다.

불천위(不遷位)

국가에 큰 공이 있거나 학덕이 높은 학자를 나라에서 정하여 4대 봉사 후 신주를 조매(祧埋) 하지 않고 제사는 것을 말함.

불천위를 두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도 부른다. 이를 불천지위(不遷之位)라 함.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지역 유림들이 옹립한 향불천위(鄕不遷位), 문중에서 지정한 사불천위(私不遷位)가 있음.

국불천위는 유림불천위나 사불천위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함.

팔송윤황선생 고택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부조묘[사장]의 모습인데 5월 6일 드문드문하던 불두화의 꽃이 5월 23일 방문에서는 바닥에 흐드러진 후 떨어진 꽃잎이 마치 눈이 내린 듯했습니다. ^^

팔송 윤황 선생 고택의 안채 모습입니다.

2017년 11월 17일 이곳에서 팔송 윤황 선생 부인의 제사가 진행되어 참석한 적이 있는데 발이 시려 죽는 줄 알았답니다. ^^

2017년 11월 17일 5시부터 진행된 부인의 제사 시 모습

위 사진은 팔송 윤황 선생 고택 안채 대청마루에서 치른 부인의 제사 모습입니다.

오늘...

그동안 누적되어 쌓여 있는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 자유인 계룡도령 춘월의 논산 관련 사진 첩에서 보기 드문 사진들을 방출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숨 쉬는 공간으로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만족은 하셨는지요?

기호유학의 중심 논산시에는 수많은 문화 유적이 찾는 이를 기다리며 반길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택은 우리의 후손도 향유할 수 있도록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겠습니다.

사진 촬영 2017년 11월, 2025년 5월 6, 23일

주차공간이 충분하고 입장료 없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논산 10기 서포터즈 조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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