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는 역사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고장이라는 것이죠✨

오늘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상촌 김자수 선생 묘소를 다녀온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실학자인 김자수 선생

발자취를 따라간 생생한 탐방기를

지금부터 함께 하실까요~!

광주시와 성남시 경계인 태재고개를 넘어🌄

오포읍 신현리로 들어가면 경기도 기념

제98호 김자수 선생 묘 안내판이 나옵니다.

들어가는 길이 좁아서

차량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어요~

생태길 118번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상촌교가 나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요.

김자수 선생 호가 상촌(桑村)이기 때문에

다리 이름을 상촌교로 명명했다고 하네요!

이 다리를 건너면 김자수 선생 묘가 나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측에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이 나무 앞에 신도비가 있고요,

신도비 좌측에 비각이 보입니다.

종중에서 잔디를 깎아 김자수 묘 입구가 말끔합니다.

신도비가 두 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세워져 있지 않고 눕혀져 있습니다.

신도비 하나가 눕혀진 이유는 뭘까요?

김자수 선생의 유언 때문이라고 해요.

김자수 선생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우왕 초에 사간원의 정언이 되었습니다.

이때 왜구 토벌의 공로로 포상 받은

조민수의 사은 편지에 회답하는

교서를 지으라는 왕명을 받았으나,

조민수가 왜구와의 전투에서 도망쳐

많은 병사를 죽게 하였다고 이를 거절하여

전라도 돌산에 유배되었습니다.

공양왕 4년, 충청도 관찰사·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392년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은거했습니다.

조선 태종이 형조판서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고 해요.

김자수 선생이 자결하기 전에

아들 근(根)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죽거든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해서

비석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김자수의 유언을 묘하게 해석해서

"세우지 말라고 했으니 눕혀 놓으면 된다."라고

의견을 모아, 결국 비문을 쓰고 눕혀

땅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누워 있는 신도비라 와비(臥碑)라고도 부릅니다.

600여 년이 흐른 와비는

1928년 후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해요.

김자수 선생의 후손 가운데

추사체로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金正喜)

김자수의 15대손입니다.

비문이 닳아 없어져 채유후(蔡裕後 조선 중기의 문신,

대사헌)가 내용을 지어 건립하였습니다.

비각 오른쪽에 상촌시비가 있습니다.

시비에는 김자수 선생이 죽기 전에 남긴

절명시가 있습니다.

平生忠孝意(평생충효의) 평생에 품은 충효의 뜻

今日有誰知(금일유수지) 오늘날 누가 있어 알리오

一死吾休恨(일사오휴한) 한 번의 죽음 무엇을 한탄하랴

九原應有知(구원응유지) 하늘은 마땅히 알아주리

신도비각은 너무 오래되어서

제가 갔을 때 천막을 씌우고 공사 중이었어요!

신도비각 안에는 순절비가 있어요!

순절비는 충절(忠節)이나 정절(貞節)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뜻하는데요,

그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순절비에는 한문으로 '고려 충신 상촌

김 선생 자수 순절비'라고 쓰여 있어요🖊

신도비 뒤로는 김자수 선생 묘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요.

계단 앞에는 김자수 선생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해 드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경사가 가파르고, 여름이라 그런지 땀이 나지만

중간중간에 벤치가 있어 쉴 수 있어요💨

묘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에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등)이 있으며

좌우로 석양(石羊)과 망주석이 각 1쌍,

문인석이 2쌍 배열되어 있어요.

상석 좌우에 세워진 문인석은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이며

묘역 앞쪽의 문인석은 조선 후기의 양식입니다!

보통 묘 앞에는 묘비가 있잖아요.

묘비는 앞서 소개해 드린 대로

김자수 선생 유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묘비가 없어서인지 뭔가 빠진 느낌이네요.

김자수 선생 묘 뒤로는 아들 근(根)과

며느리 우봉 이씨 묘가 자리하고 있어요.

묘 뒤로는 불곡산(해발 335m)이 자리하고 있어요🗻

김자수 선생 묘 뒤쪽에 있는

며느리 우봉 이씨 묘입니다.

며느리 무덤에는 비석이 있네요!

김자수 선생 며느리 묘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원래 김자수 묘가 가장 위쪽에 있어야 하는데요,

아들과 며느리 묘가 아버지보다 위쪽에 있어

순서가 뒤바뀐 역장(逆葬)의 형태입니다.

충절 하면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가 떠오르잖아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정몽주 묘역이 있는데요,

태재고개와 직선거리로 4km 떨어져 있습니다.

김자수 선생은 정몽주 묘가 보이는 태재고개에서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다고 합니다.

김자수 선생은 정몽주 못지않은 충신인데요,

정몽주에게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광주시 역사 문화 중, 충신 김자수 선생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의 묘를 한 번 방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본 게시글은 광주시청 이재형 SNS서포터즈님이 작성한 글로

광주시와 공식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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