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시간 전
걸어서 익산 여행- 원팔봉 팔봉사에서 은기동 덕천사까지 걷는다-
익산은 유교의 성지라고 해도 될 만큼 향교와 서원이 현존하고 있는 곳이다.
배산의 백산서원을 비롯한 금마면 화산서원 등이 있고 익산향교 등 향교도 여러 곳이 된다.
이러하듯 조상을 모시고 유학자들을 숭상하는 장소가 도시 곳곳에 있는 ‘효와 예의 도시’로 익산을 살피는 걸음으로
팔봉동 원팔봉마을 팔봉사에서 은기동 신기마을 덕천사까지 걸어 볼까 한다.
무왕로 부송동 끝머리 팔봉동 입구 원팔봉마을에 걷기를 시작한다.
익산시 소방서와 한국전력 익산지사가 있는 팔봉동을 향하는 무왕로 길에
원팔봉마을이라 새긴 입석이 서 있는 곳에서 팔봉사까지는 마을 전체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
경로당과 함께 쓰는 원팔봉복지회관을 지나 어느 종갓집 오래된 제실을 보고
대나무 숲길로 들어서기 전에 모내기를 한 작은 논배미를 만날 수 있다.
팔봉산 마을 초입에 보이는 팔봉사와 우주 황씨 문중 선산.
원팔봉 마을 대나무 숲길을 돌아 나오면 민가들이 있고 그 팔봉산 쪽으로
정면 3칸의 사당과 삼문(三門)으로 이루어진 ‘팔봉사’가 보인다.
팔봉사는 1971년에 우주 황씨(紆州黃氏) 문중과 지방 유림이 힘을 모아 건립하였고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 황포(黃褒)를 중심으로 그의 아들 황명세(黃名世)와
손자 황자후(黃自厚)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20일에 제사를 올린다.
팔봉사에 위패가 모셔진 우주 황씨 종중의 황자후(黃自厚), 황장손(黃長孫), 황 포(黃 褒)를
기록에 의해 알아보면 황자후(1600∼?)는 ‘익산군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한학자로 자는 재백(載伯)이며,
호는 죽유이고 본관은 우주(紆州) 이다라고 하고, 황장손(1457∼?)은 ‘ 조선 전기의 충신으로,
본관은 우주(紆州)이며 함열 출신이다.
별좌(別座)로 단종(端宗)이 영월로 유배 갈 때 호종(扈從)하고 단종이 죽은 뒤에 영월에서 순절하였다.
충신단(忠臣壇)에 제향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병장 황 포(?~1592)는 ‘ 익산군 출신의 조선 중기의 의병·열사로 자는 곤부(袞夫)이며,
호는 성남(城南)이다. 거상(居喪) 중에 임진왜란을 당했는데
사돈인 소모관 이정란이 그 아들 도길(道吉)을 보내어 상중이라도 복직하여 출전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거상 중 궐기할 수가 없어 종제인 참봉 상길(裳吉)로 하여금 창의(倡義)토록 하였던바
의병(義兵) 수백 명이 모여들었으므로 포(褒)가 그들을 이끌고 고산(高山)에 나아가 적과 싸우다가 전사했다.’라고 한다.
팔봉사를 벗어나 산업도로 보도를 걸어
익산종합운동장과 익산 청소년 경찰학교를 만나다.
보도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익산 제2공단 앞 도로가 나오고, 팔봉우체국을 지나 익산종합운동장을 마주한다.
이 공간엔 체육관과 함께 야구장이 있고 장애인 체육시설도 있다.
현재 육상과 펜싱 등 각종 체육대회 경기와 프로야구 KT 2군 경기가 진행되는 장소로
건강한 시민들의 마음이 모이는 환경 조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운동장 입구 바로 도로 건너편엔 팔봉동 행정복지센터가 보인다.
운동장에서 팔봉초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익산 청소년경찰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선 어린이들에게 경찰 제복 입어보기, 장구사용, 지문감식, 조사관 체험을 통해
경찰관 직무에 대한 이해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팔봉 초등학교를 지나 운동장 북문을 거쳐 은기교 덕천사까지.
팔봉초 삼거리에서 은기동 팔봉 석왕마을 가는 길은 제법 농촌의 분위기를 주는 마을 안길로
은기교까지 가는 길은 한적한 길옆 숲과 들녘이 있어 바라보며 눈길에 들꽃들도 들어와 걷는 걸음에 나름의 여유로 힐링을 주고 있다.
미륵사지 가는 탑천 길 따라 은기교에서 이제 운영하지 않는 방앗간과 마주하고 신기교 앞에 큰나무를 향해 가면
신기마을 입구에 있는 덕천사라 새긴 비석이 덕천서원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세운 사당인 덕천사(德川祠)는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던
고경명, 오응현, 오응필 등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역사 유적이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오응현은 호가 추강, 본관은 장흥이다.
왜란이 일어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생 오응필, 오응철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충청도 금산으로 나아갔다.
이어 이치전투에서 활약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동생들과 함께 순절하였으며, 왜란이 끝난 뒤 선무 원종공신 2등에 녹권되었다.”고 한다.
은기동 신기마을 덕천사는 1931년 세워져 추강(秋岡) 오응현(吳應賢) [1550~1592]의 후손들이
1592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병장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을 주벽으로 모시고,
익산 지역에서 참전한 추강 오응현, 백천(栢川) 오응필(吳應弼)을 배향하고 있다.
의병장 고경명(1533~1592)은 “ 광주 출신으로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제봉(霽峰), 시호는 충렬(忠烈)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한양이 함락되고 선조가 의주로 피신하자,
6,000명의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아들 고인후(高仁厚)와 함께 전사하했다.”고 전해진다.
음력 2월 중정에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서 향사를 하는 덕천사는
사당 앞에 동서로 양재를 갖추었으며, 덕천사 원정비와 묘정비가 경내에 세워져 있다.
팔봉사로 시작하여 덕천사를 마주하는 걸음이 우리의 선조들에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기억하는 것으로
애향을 넘어 애국, 애민의 마음을 갖는 뜻깊은 행동이라 뿌듯함이 드는 역사의 길 걷기를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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