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일 전
여주 600명 시민이 모여 외친 “광복 80주년 만세”
여주시민기자단|장선미 기자
2025년 8월 15일 금요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여주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이
특별한 의미와 감동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입구에서는 박두형 시의회 의장과
국군 장병들이 경례를 하며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기억, 감사 그리고 행복♥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경축식은
독립유공자 유족, 보훈단체 회원,
아동·청소년 등 600여 명이 함께해
여주의 역사적 순간을 하나로 이어냈습니다.
♦️의미와 감격이 어우러진 기념식
오전 10시 정각,
총무팀장의 힘찬 사회로 시작된 행사는
이화선 작가의 캘리그래피와
태극기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애국지사 유족 소개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꽃목걸이를 전달하며
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이어 국민의례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정중히 이어져
참석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내빈들의 기념사와 경축사에서는
“치열한 역사 뒤에 우리가 얻은
소중한 자유와 평화에 감사하며,
행복과 희망을 미래 세대와 함께 이어가자”는
뜻이 강조됐습니다.
이어 독립군의 힘찬 행진곡, 광복절 노래,
만세삼창까지,
모두가 한목소리로
광복의 기쁨을 되새겼고, 현장은 벅찬 감동으로 물들었습니다.
♦️공연으로 꽃피운 시민 축제
경축공연에서는
여주여자중학교 합창단, 시민합창단,
밴드 ‘신델라&델라벨라‘ 등
무대가 이어지며 남녀노소 모두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교육체험 행사와 홍보부스로 더욱 알찬 현장
이번 경축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광복절 교육체험 행사!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이 마련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이 광복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고,
직접 참여하며 그 의미를 느꼈습니다.
♦️모두의 광복, 모두의 희망
2025년 광복 80주년, 여주에서 공존과 감사,
그리고 희망을 노래한 이날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여름날로 남았습니다.
앞으로도 여주시는
광복의 정신과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잊지 않고,
시민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행복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
<광복에 즈음한 여주시 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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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187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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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창녕, 호는 청사이다. 진사 조병희의 아들이며 여주 대신면 보통리 출신이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군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겸 군무부 위원이 되었다. 1935년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군무장에 선임되었다. 1937년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할 때 한국국민당의 이동녕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1939년 조성환은 임시정부의 군무장이 되어 한국광복군 창설을 위해 군사특파 단장으로 서안에 파견되었다. 중국 정부와의 교섭, 한인 병사 모집, 군사 훈련 등의 임무를 맡아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의 성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서 헌법 개정에 따라 군무부장이 되었고, 광복군의 통수권을 가지는 대한민국 임시 통수부의 막료를 역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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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항섭 1898~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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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영월, 호는 일파이다. 승지 엄주완의 아들이며, 여주 금사면 주록리 출신이다. 1919년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법무부 참사 등을 맡았다. 1926년 임시정부의 임시헌법 기초의원으로 선정되었고, 상하이 한국교민단 의경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적극 지원하였고, 의거 관련 선언문을 기초, 작성하여 임시정부의 위상을 널리 알렸다. 1936년부터 임시의정원에서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43년부터는 임시정부 선전부와 주석 판공실에서 선전부장과 판공비서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엄항섭은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의 준비와 실무를 맡았으며, 광복군의 상황을 국외 동포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교섭 및 미국 OSS와의 공작 활동에도 관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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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당 1908~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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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여주로, 엄항섭의 부인이다. 1930년 8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된 한인여자청년동맹의 임시위원으로 선출되어 상해 청년 여자 교민에 대한 조사 및 상해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의 단합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10월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원이 되어 선전과 홍보활동에 주력하였고 1943년 2월 중경에서 한국애국부인회의 조직부장으로 선출되어 반일 의식을 고취하는 방송을 담당하여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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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선 192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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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은 여주로, 엄항섭·연미당의 장녀이다. 1938년 12월경부터 한국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의 공작대열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일본군내의 한국인 병사에 대한 초모공작의 일환으로 연극이나 무용 등을 통하여 적 국의 정보를 수집 보고하는 한편 대원들의 사기를 앙양시켰으며, 중국 국민들에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의지를 널리 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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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학 1914~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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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출신으로, 만주에서 항일학생의용군에 가담하여 항일전에 참가하였으며, 그 후 남경으로 옮겨 한국애국단에 가입, 활동하였다. 1940년 5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제 16기로 졸업하였으며, 1941년 3월 1일에는 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위원 및 정보조장으로 피임되어 제3전구 사령부 소재지인 강서성 상요 방면으로 떠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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