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잔도 기획자와 다시 찾은,

‘용궐산(龍闕山)’

순창군 동계면에 위치한 용궐산(646m)에는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 듯 암벽 사면을 따라 굽이굽이 설치된 잔도길이 있습니다. 약 1km에 달하는 데크길(1,096m)을 따라 걷노라면 마치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밑에서 위를 보면 아찔하여 오르기 살짝 겁이 나기도 하지만, 막상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오실 수 있는 길이랍니다.

용궐산 산행 코스는 세가지가 있지만, 이번엔 매표소에서 하늘길을 거쳐 비룡정까지 오른 후 원점회귀하는 가장 짧은 하늘길 코스를 다녀왔는데요. 흐린 날씨 탓에 쨍한 풍경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운무가 만들어내는 파스텔톤 풍경색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이번 산행길엔 순창군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하늘길을 직접 기획하고 세세한 곳까지 시공을 지휘하셨던 분과 함께 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들어보니 용궐산 하늘길은 집념어린 한 사람의 10년에 걸친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강천산 말고는 마땅한 관광자원이 없었던 순창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긴 마라톤 회의 끝에 산세가 수려하고 섬진강이 산사이를 흐르는 용궐산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처음 몇 년간은 여느 관광지처럼 산기슭 너른 땅에 갖가지 꽃을 심어 꽃동산을 꾸몄답니다. 그런데, 그걸로는 관광객의 호응이 크게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질 무렵, 외국에 가지 않더라도 외국에 여행 온 것 같은 이색적 풍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잔도를 만들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두 차례의 공사 끝에 최종적으로 2023년 하늘길을 완성하는데 꼬박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대성공이었습니다. 오늘날 순창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세 손가락안에 꼽히는 대표적 관광지로 용궐산하늘길이 급부상하게 된 거지요. 개발 초기에는 주변의 민원도 많았지만, 지금은 순창군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니 관광객 뿐 아니라 주민들의 만족도도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차장 인근에 이 곳이 용궐산 입구임을 알리는 ‘용궐산 치유의 숲’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입석이 있는데요. 개발중 발견된 커다란 자연석을 사용하여 새긴 것인데, 입석을 세우는 도중 일부가 쪼개져 나머지 부분은 다른 쪽에 있는 ‘용궐산자연휴양림’ 입석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매표소로 올라가는 중엔 ‘치심정기(治心正氣)’이라고 써있는 상대적으로 아담한 입석을 만나게 되는데요. ‘마음을 다스려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치유의 숲에 이미 한 발 들여놓았음을 알리는 듯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표소가 나타납니다. 입장료는 성인·학생 4,000원이지만, 이 중 2,000원을 순창사랑상품권으로 환급해 줍니다.

매표소를 지나 하늘길 초입부까지의 등산로는 너덜바위 계단으로 등반하기 어렵지 않게 잘 닦여 있습니다. 원래 등산로가 없었던 지형으로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 돌 쌓기 기술이 뛰어난 굴착기 기술자를 고용하여 잡목을 제거하고 돌계단을 쌓게 했다고 하는데요. 절험지에서의 돌쌓기 공사가 매우 위험했을 성 싶은데, 한땀 한땀 수 놓듯 커다란 돌덩이들을 평탄하게 눕혀 계단석으로 삼고 일부는 모로 세워 경계를 만들었을 노고에 감탄하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바위에 걸터앉아 쉴 수 있게 넓적 바위 쉼터도 만들어 놓은 숨은 배려도 돋보입니다.

돌계단 옆 숲 안쪽으로는 많은 돌탑들이 보이는데, 이 역시 우연히 돌탑 쌓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발견하여 돌탑 쌓는 임무를 부여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등산객들이 직접 만든 앙증맞은 미니 돌탑들도 시선을 강탈하네요.

20여분을 올라가면 드디어 데크 형식으로 설치된 하늘길이 나타납니다. 하늘길은 아찔한 암벽과 잔도길이 어우러져 마치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해주는데요.

사진을 찍다 보면 정말로 중국 장가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해외여행 부럽지 않다는 등산객들의 말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하늘길을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보면 아래로 펼쳐지는 섬진강과 둘러쌓인 준봉들이 대장관을 이뤄냅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뷰포인트 작렬이네요. 중간중간 포토존과 휴식을 위한 데크 쉼터도 있습니다.

맨 처음 용여산(龍女山)으로 불리었던 용궐산은 한때 용골산(龍骨山)이었다가 용의 뼈에 생기를 불어넣자는 주민들의 건의로 현재는 용이 사는 궁궐이란 뜻의 용궐산(龍闕山)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하늘길이 있는 거대한 바위는 용여암(龍女岩)이라고 불렸으며, 하늘길은 용의 날개에 해당하는 자리로 암벽의 경관이 수려하여 탄성이 절로 나오며 좋은 기운을 느껴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용여산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암용을 상징하는 산인데요. 이를 암시하는 용알바위며 여근석도 발견되었다고 하니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하늘길의 계단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요. 암벽을 따라 안전하게 조성하다 보니 산을 오르는 도중에도 내리막이 있습니다. 높낮이 차가 발생하는 계단의 구조상 보행시 주의할 수 있도록 노란 페인트칠과 사자성어를 써 놓았다고 합니다.

암반에 수려한 글씨체로 새겨진 ‘계산무진(谿山無盡)’은 “계곡과 산이 끝이 없다”는 뜻을 가진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계곡이 흐르듯한 ‘谿(계)’와 웅장하게 서 있는 듯한 ‘山(산)’의 글씨체에 매료되어 이 글을 선택하게 됐다고 합니다. 글만 봐도 하늘길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이 절로 그려집니다.

만주 하얼빈에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신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가 경술년(1910년) 여순감옥에서 쓰신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글도 있네요. 약손가락 잘린 손도장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지나면서 곳곳에 보이는 옛말들을 뜻풀이 해보는 것도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은 많이 들어본 고사성어죠. 이 글귀를 보면, 한번쯤 나는 산을 좋아하나, 물을 좋아하나 생각해봤던 추억이 생각날 겁니다.

한 겨울 용궐산에는 암벽 끝자락에 달린 거대한 고드름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해 준다고 하는데요. 방문했던 날에는 온화한 기온으로 그러한 장관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목판에 새겨진 ‘一本而分萬者山也요. 萬殊而合一者水也라’와 ‘山自然水自然, 山水問我亦自然’는 각각 여암 신경준 선생(1712~1781)의 ‘산수고(山水考)’의 서문과 조선중기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의 시구절을 인용한 글이라고 하는데요.

여암 선생은 순창 출신으로 우리나라의 산의 족보 격인 ‘산경표’ 등을 저술한 학자이고, 하서 선생은 어머니와 처(妻)의 고향인 순창에 훈몽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한 분입니다. 하서 선생은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걸쳐 최고의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文廟)에 모셔진 유학자를 말하는 동방18현 중 유일한 호남출신이기도 합니다.

용궐산과 어울리는 글씨체까지 고려하여 최적의 고사성어를 찾아내느라 고뇌했을 기획자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해박한 한학지식을 바탕으로 하늘길 조성과정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당시 발생했던 일화들을 들으며 아주 여유로운 산행 끝에 비룡정에 다다랐습니다. 비룡정에서는 경상도에서 오신 단체 등산객들과 조우하게 되었는데요. 하늘길 조성을 직접 담당하신 분이 동행했다고 하니, 덕분에 멋진 관광을 하게 되었다고 환호와 감사를 전해 받는 뜻밖의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하산을 마칠 무렵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용궐산 산행을 신속·안전하게 마무리했는데요. 이때 우리를 자생식물원 옆에 있는 용궐산 산림휴양관으로 안내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곳은 하늘길 등산객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숨겨진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휴양관 건물 2층에 올라가면 백두대간 전시관이 있는데요. 백두대간의 개념과 순창의 옛 지도들을 전시해 놓아, 잘 살펴보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지리적 경계나 당시의 실생활까지도 알 수 있는 귀중한 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태백산맥, 차령산맥, 노령산맥, 낭림산맥 등 우리 지형과 맞지 않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산맥지도 지식을 배웠는데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를 보면, 우리의 백두대간은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져 강물을 건너지 않고도 남에서 북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표시한 지도를 보며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전국을 회화식으로 그린 1750년대 지도집인 ‘해동지도’를 보면 순창의 당시 인구를 알 수 있는데요. 남자 11,090명, 여자 15,150명으로 26,240명인데, 2023년말 기준 26,764명과 흡사하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이 자료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직접 찾아내 이곳에 전시했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있네요.

동양의 피카소로 불리는 산정 서세옥 선생(1929~2020)의 그림 같은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글씨도 보는 이의 감탄을 절로 자아냅니다. 곳곳에 명당터가 있어 뛰어난 인물이 태어난다는 순창과 잘 어울리는 글이라고 설명해줍니다.

하늘길 코스를 다녀왔다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산림휴양관에도 꼭 들려보시길 적극 추천드립니다. 관람료도 없고 누구나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용궐산 산행은 “무심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걷다 보면 누구라도 신선이나 선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그런 신박한 경험”이 될 겁니다.

용궐산 치유의 숲

주소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길 564 (어치리 산101-1)

문의: 순창군 산림공원과 063-650-56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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