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경남 함안 역사 여행코스, 칠서 무릉마을 무산사의 고독
경남 함안 역사 여행코스
칠서 무릉마을 무산사의 고독
제11기 함안 SNS 기자단 김종희
함안군 블로그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 소개드릴 곳은 함안 칠서 IC 근처 무릉마을에 위치한 주세붕(1495~1544) 선생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무산사입니다.
무산사는 칠서 무릉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찾기는 쉽지 않지만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까지 구비되어 있어 함안 역사여행 코스로 아주 좋다고 생각됩니다.
무산사가 있는 함안 칠서면 무릉(武陵) 마을 이름은 조선 중종 때 주세붕 선생이 지은 것으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의 마을임을 나타내기 위해 중국의 ‘무릉도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함안 무산사 입구에 들어서면 함안 무산사에 대한 안내와 문민공 주선생의 숭덕비문에 대한 이야기가 보입니다.
문민공 주선생의 숭덕 비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삼의 종주국으로 한국이면 곧 인삼을 연상케 하나 산삼에만 의존하던 중 조선 중종 때에 문민공 신재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 중(서기 1541~5)에 당시 국민의 징삼(徵蔘) 의무를 덜어주기 위해 삼 재배법을 개발 보급한 것이며, 그 기원으로서 현재는 국내 수요 외에도 세계 각국으로 수출돼 농작물 중에서 적은 면적으로 가장 많은 외화 획득을 하고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생약 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보재로 인류보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략)
옛날 교역하던 산삼은 보화와 같았으나 백성에게는 귀하고 생산량도 거의 없었기에 의무적으로 매년 많은 양을 공납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했으나 이 고충을 해소하고 재배법을 보화로 돌려주신 인삼 재배의 원조 문민공 주 선생에게 감사하며 천하에 선생의 빛난 업적을 밝히고 길이 찬송하며 삼의 본 고장에 지역민의 성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다시 새겨 선생의 높은 뜻은 온 누리에 배움의 길을 열어 놓았고 선생의 끼친 업적은 온 겨레의 삶을 도왔도다. 소백산 두솔봉의 외외한 모습 선생의 덕(德)·혜(惠)를 우러러 상징하여라. 백약의 영초 이 제 삼막에 의이하니 선생의 넋이 오늘도 어려 계신 듯 여기 이 비에 뭇사람의 정성을 새겨 담아 길이 공덕을 추모하노라 』
함안 무산사에 대한 안내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무산사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초상과 유품을 모신 사당이자,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은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주세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숙종 24년(1698)에 건립하였다. 1919년 사당 옆에 무산 서당이 세워졌지만 6·25 전쟁 때 불에 탔고,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건립된 것이다.
무산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일자형 평면 건물이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 2칸의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각각 2칸과 1칸의 방을 꾸며 전형적인 서당의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무산사의 광풍각에는 「주세붕 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 주세붕(周世鵬)의 시문집인 『무릉잡고 목판』, 주세붕의 고손자 주맹헌(孟獻)의 시문집인 『수구집 목판』, 주세붕의 아들 주박()의 시문집인 『귀봉집 목판』 352매 등이 보관되어 있다.
무산사의 무산서당은 서당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상주 주씨(尙州周氏) 집성촌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으며 상주 주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세봉 선생 그리고 무산서당
안으로 들어가니 주세붕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무산서당이 보입니다.
현재 보고 있는 무산서당은 고종(1863~1907)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렸고 이후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한쪽에는 주세붕 선생에 대한 기록이 적혀져 있습니다.
주세붕 선생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면 중종 38년(1543)에 우리나라 최초 소수 서원, 백운동 서원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이 서원을 통해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조선 시대 유학자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서원 건립 이외에도 숭덕 비문 등에서 주세붕 선생의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위대한 학자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경(敬)의 의미
무산서당 건물 뒤편으로는 무릉사, 광풍각, 장판각으로 향하는 돌계단 길이 나있고 그 옆으로 '공경할 경(敬)' 현판에 대한 의미가 적혀져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무산서당 안쪽에 경이라 적혀 있는 큰 현판이 있어 신기했었는데 의미가 있는 현판이었나 봅니다.
『경(현판의 의미)
'경(敬)"은 영주시의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의 바위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글자이다. 신재 주세붕 선생이 새겼는데 이 바위는 일명 “경자 바위”로 유명하다. 영주시가 세운 표지판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이 바위는 경렴정 옆 죽계 건너편에 있는 일명 "경자바위”로서 취한대 인근 암벽에 새겨진 “白雲洞"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의 각자(刻字)이고 "敬"은 신재 주세붕 선생의 각자인데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밤마다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므로 주신재 선생이 경자에 붉은 칠을 한 뒤 위혼제 를 드리니 그때부터 원혼들의 울음이 그쳤다고 한다.
이 고을은 세조 3년(1457) 단종복위 실패로 인해 정축지변이라는 참화를 입게 되자 많은 의사들의 시신이 이곳에 수장됐다고 전하며, 그 핏물이 7km가량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한때는 남순북송(南順北松))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폐부(廢府))된지 228년 만인 숙종 9년(1683)에 가서 “의거의 요람지”로 명예 회복을 받게 된 절의지향이기도 하다. 바위 뒤편 언덕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취한대의 순수 심은 여덟 그루의 백송 가운데 지금은 고사목 두 그루만 남아있다.』
배롱나무 가득한 사당
돌계단을 올라가면 작은 사당인 장판각(藏板閣), 광풍각(光風閣), 무릉사(武陵祠)를 볼 수 있습니다.
광풍각은 주세봉 선생의 초상, 영정을 모셔둔 곳이고 무릉사에는 주세붕선생과 정부인(貞夫人) 광주안씨(廣州安氏), 정부인 진주하씨(晋州河氏) 세 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사당 옆으로는 배롱나무가 보입니다.
지금은 가지가 앙상하지만 배롱나무 가지에 꽃이 필 무렵이면 장관을 이룰 것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무릉마을과 무산서당
무릉사 뒤편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지바른 곳에 조성된 주세붕 선생의 묘를 볼 수 있습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무산사와 무릉마을의 조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 함안 무릉마을 무산사에 들러 잠시 여유의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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