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마음, 새로운 나날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입춘도 지났겠다, 이제 봄을 맞이하면 되려나 싶었더니 웬걸…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음을 과시라도 하듯 영월에는 또 눈이 쌓였다. 나는 눈 때문에 피해를 입을 일이 없기에, 눈이 펄펄 내리는 날에는 마냥 들뜨고 기쁘다. 농부들 사이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고 하던데. 유난히 눈이 많았던 겨울을 보내며 영월의 모든 밭과 논과 과수원에 풍성한 생명이 깃들길 바라본다.

최근에는 영월로 내려와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웃을 몇몇 알게 되었는데, 그들과 시간을 갖고 나누는 대화가 그렇게나 즐겁다. 어쩜 그리도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 정착을 했는지, 영월에서 나고 자란 나도 그들의 집이 어디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산속에 들어가 살고 있더라. 나는 읍내에서만 자라왔고 아파트에서만 지내왔기에 산속 전원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에 오히려 외지에서 내려온 분들에게 영월에서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하루는 읍내에서 만나 티타임을 가지던 중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가는 걸 지켜 보기도 했다. 벌써부터 집으로 돌아갈 길이 걱정이라는 거다. 돌아가는 게 끝이 아닌, 도착해서는 또 제설 작업을 해야 한다며 근심이 가득했다. 그러다 금세 이번 겨울에 제설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는 전환되었고, 곧 그들은 송풍기에 대한 찬양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송풍기!

시골 전원 생활의 필수품, 송풍기는 말 그대로 바람이 나오는 기구다. 도시에서도 가을이 되면 길거리 낙엽을 모으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때 웨에에엥- 하며 바람을 쏴서(?) 낙엽을 모으는 기구가 바로 송풍기다. 가을철 낙엽도 쏴서 치우고, 겨울에 눈이 쌓이면 눈도 쏴서 치우는 아주 신통한 아이템이다. 충전식은 힘이 약하다, 저렴한 건 낙엽도 못 치우더라, 비싸고 큰 게 좋다, 무조건 기름 넣어서 돌리는 게 최고다, 등등. 한참이나 눈과 제설, 송풍기에 대해 서로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 역시 꼼꼼히 체크를 해두었다. 곧 시작될 전원의 삶을 꿈꾸느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작은 땅을 얻었고, 작년부터는 작은 집을 짓고 있다. 수줍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어디에서 무슨 큰돈이라도 벌었을 거라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실상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팔고 빚까지 내어 조그맣게 정착할 곳을 마련하는 중이다. 나는 산에서 조용히 혼자 사는 삶을 예전부터 꿈꿔왔는데, 이제야 얼추 그 모양새가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의 북적거림과 넘치는 에너지, 고도화된 문명의 결과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 내 취향은 조용한 산속이다. 시골에 살았으면서도 도시에서 살다 내려온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골생활의 힌트를 얻으며, 한걸음 한걸음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겨울, 눈, 제설, 송풍기는 제일 비싼 걸로! 체크.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 앞의 년도가 바뀌었다고 뭐 그리 큰 변화가 있나 시니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가?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꿈을,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을 새로 잡고 평범한 일상을 바라보니 이건 또 나름대로 설렘이 생기는 것 같다. 올해에도 잘, 살아보자! 는 마음으로 <영월에 살아요> 2023년의 첫 이야기를 시작한다.


{"title":"영월에 살아요_새해, 새마음, 새로운 나날","source":"https://blog.naver.com/yeongwol4/223014327905","blogName":"영월의 모..","blogId":"yeongwol4","domainIdOrBlogId":"yeongwol4","logNo":223014327905,"smartEditorVersion":4,"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lin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