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보, 인천 서구의 행정동과 지명의 유래 자세히 알아봐요!
안녕하세요 서동이에요 (★‿★)
우리가 사는 동네 서구,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서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지역구인데요.
그러나 정작 서구라고 불리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서구로 불리기 전까지 과연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요?
지금부터 권주애 기자님과 함께 알아봐요.
서구의 옛이름
서구 지역명의 역사
서구의 옛 이름인 ‘서곶’은 ‘서쪽에 있는 곶’이라는 뜻에서 지어졌다는 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저는 인천에서 살면서 제가 사는 동의 유래를 학생 때 배웠었는데요.
문득 서구의 다른 행정구역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건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오늘은 인천 서구의 행정동과 법정동, 그리고 지명의 유래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서구를 비롯한 대다수의 하위 행정구역은 법정동과 행정동으로 나뉘어 볼 수 있습니다.
법정동은 지번 주소의 기준이 되는 전통적인 지역의 이름으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검암동, 왕길동 등이 법정동이라고 보시면 돼요.
행정동은 인구수나 지역 면적과 같은 ‘사회적/경제적 요인’에 따라 유동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제도로, 대부분 법정동 여러 개를 하나로 합쳐 제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로대곡동, 오류왕길동, 검암경서동 등이 해당합니다.
이전 사진의 표는 본청관할 행정동의 명칭이며,
위 사진의 표는 과거 경기도 김포군으로부터 넘어온 지역(검단출장소 관할)으로
2018년 이전까지 검단1동~5동으로 불렸던 행정동이랍니다!
그럼, 이제부터 서구의 지명 유래를 알아볼까요?
가정동은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반(趙胖)의 별장인 ‘가정(佳亭)’이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가좌동과 공촌동은 정확한 유래는 없지만,
가좌동은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큰 가재 한 마리가 건지에서 나와 ‘가재울’이라고 부르던 것을 ‘가재(佳裁)리’라 칭하다가 현재의 가좌(佳佐)동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경서(景西)동은 계양산 ‘경명현(景明現)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됐습니다.
참고로 경명현은 고려 시대 충렬왕이 매사냥을 즐겼던 곳이라고도 해요.
검암동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한자 그대로 검은 바위를 뜻하는데, 과거 허암산 서쪽 기슭에 옆에 커다란 ‘검은 바위(黔岩)’가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백석동 역시 과거 한뫼산(현 할메산)에 ‘흰 돌(白石)’이 많았다는 뜻에서 백석동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시천동은 시냇물이 시작된 곳(始川)이라는 뜻에서, 석남동은 ‘석곶면의 남쪽(石南)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어요.
신현동은 과거 ‘새고개(新峴)’라고 부르던 지역을 한자어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창(元倉)동은 삼남(충청·전라·경상도)의 세곡(稅穀)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창고였던 ‘전조창(轉漕倉)이 있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청라동은 과거 섬에 푸른 넝쿨과 관목이 많아 푸른 섬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청라(菁蘿)도의 이름을 바탕으로 지어졌습니다.
청라는 다른 지역 중에서도 가장 뜻이 예쁜 이름인 것 같아요.
마전동은 예전부터 삼을 많이 재배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를 한자로 표현하여 마전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연희동의 유래 역시 신기합니다. 신라 시대에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모시는 여자들을 이곳에 데려와 노래와 춤을 가르치기도 하고, 여자들이 모여 비단을 짰던 곳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기존의 ‘여희(女姬)마을’에서 연희(連喜)동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심곡동은 과거 탁옥봉(琢玉峯) 아래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고 하여 ‘깊이울(深谷)’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금곡동 역시 유래가 신기한데요. 과거 풍수지리학자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마을 뒷산에 쇳돌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하여 ‘금곡(金谷)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말까지 이곳에서 금을 채굴하였고, 광복 후에도 철을 캤다고 해요.
당하동은 과거 제림산에 제사당이 있었고, ‘당 아래(堂下)에 부락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유래됐습니다.
원당동은 조선 초기에 이 지역에 ‘원당(元堂)’이라는 당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왕길동은 뜻을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조금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사는 동네이지만 ‘왕이 다니던 길’이라고 해서 왕길이라고 착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조선 시대 풍수지리사가 ‘왕길(旺吉)’이라고 작명해야 마을에 덕이 있을 거라는 말에 의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오류(梧柳)동은 이 지역에 오동나무(梧) 숲이 많았고, 그 옆에 버드나무(柳) 한 그루가 서 있는 데서 이름을 따와 지었다고 해요.
불로동 역시 이름이 특이한 만큼 이름의 유래도 특이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동네 앞산인 만수산에 산삼과 약초가 많이 자랐는데, 어느 노인이 이 산에서 채취한 약초와 산삼을 먹어 장수하였고 그 후 만수산에 불로초(不老草)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이 마을을 ‘불로(不老)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대곡동은 이름 뜻 그대로 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됐습니다.
마지막으로 검단동의 지명 유래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검단의 유래는 인천광역시청과 서구청의 설명이 각각 다릅니다.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신 혹은 왕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인 ‘黔’과 마을을 뜻하는 고대어인 ‘丹’을 합쳐 지었다고 하며,
서구 홈페이지에 따르면 ‘서해안의 검붉은(黔丹) 갯벌’에서 따와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마 한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차이 같아요!)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직관적으로 지어진 이름이 많은 것 같죠?
몇몇 지명의 유래는 아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내가 사는 지역의 유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오늘 다양한 지명의 유래에 대해 찾아보면서, 동시에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서동이, 권주애 기자님과 함께 서구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그동안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된 유익한 시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서동이는 또 다른 새로운 소식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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