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일 전
나쁜꿈 시사회 이창기 시·판화집[2025년_12월호]
나쁜꿈 시사회 이창기 시·판화집
막 여주에 둥지를 튼 시인의 ‘나쁜 꿈’ 이야기
이창기 시·판화전 <나쁜 꿈 시사회> : 여주 세종도서관 전시실, 12월 9일~ 24일까지
“한때 ‘시화전’은 독자와 소통하는 문학적 행위의 일부였습니다.
물론, 출판은 여전히 강력한 문학의 유통 수단이지만,
출판이란 태생적으로 시장의 영향 아래 있고,
문학의 본질과 관계없이 시장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자유를 누리면서, 어떻게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
이번에는 '음반'보다는 '버스킹'이란 방식을 택한 셈이지요.”
글 두정아 사진 김성재
갑골문에서 시작한 우리 이야기
이창기 시인의 시·판화전 <나쁜 꿈 시사회>가 12월 9일부터 24일까지 여주 세종도서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1984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니 40주년 기념 전시인 셈이다. 그동안 그는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을 비롯해 4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문학 평론가로 자신의 문학론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네 번째 시집 『착한 애인은 없다네』(2014)에서 평론가 오형엽은 그의 시의 특징을 “풍자적 시선으로 다양한 서사의 진술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같은 작가의 시적 궤적은 시를 하나의 굳어진 형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이를 해체하고 다시 통합하는 극복의 과정을 통해 시적 자아 혹은 삶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궁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판화전에는 그의 신작시가 그가 직접 만든 목판화와 함께 전시된다. 그는 시·판화전을 갖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껍데기만 남았지만, 한때 ‘시화전’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꽤 진지한 문학적 행위의 일부였습니다. 물론 출판은 여전히 강력한 문학의 유통 수단입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출판은 시장의 영향 아래 있고, 그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글쓰기의 자유를 누리면서, 어떻게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킬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 ‘음반’보다는 ‘버스킹’이란 방식을 택한 셈이지요.”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의 시적 모티브도 갑골문자다. 그에게 갑골문자는 “3천여 년 전의 옛말의 단어가 아니라 이 시대의 상징적인 문장이거나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시인은 그 갑골문자를 목판에 새겨 세련된 색감의 판화로 만들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시들은 작은 에피소드와 같은 이야기로 구성됐다. 가족과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까지 다양한 시점으로 소재와 시대를 초월해 아련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버스킹하는 마음으로”
이창기 시인은 이번 전시에 대해 “버스킹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버스킹’이란 무슨 뜻일까? 버스킹(Busking)은 주로 음악가의 거리공연을 말한다. 19세기 후반 버스킹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프랑스어로 음유시인을 뜻하는 트루바두르(Troubadour)가 사용됐다고 한다.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시를 읊었던 이야기꾼은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구와도 같았다.
“제가 주로 활동하던 80년대는 ‘시의 시대’라고 불렸습니다. 시집도 많이 나오고 훌륭한 시인도 많았던 축복의 시절이었죠. 시라는 게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쓸모 있고 괜찮은 것으로 대접받던 시절이에요. 지금은 시가 하나의 장식적 요소로 여기지는 않는지 의심이 들 만큼 그 가치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 역할을 문학이 아닌 예술의 다른 장르가 대신한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지점에서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독자와 만나던 학창 시절 시화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거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인천에서 열었던 첫 시화전이 이번 전시의 모델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시인의 초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는 두사부 일체가 모두 엉망인 시절”이었다. 그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어른들이 가만히 보니 닥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이때 그는 작문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시 두 편을 만난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김수영의 ‘눈’이다.
“시를 보는 순간 저 세계는 투명하고 거짓이 없다’라고 느꼈습니다. 초·중학교 때까지 글짓기로 몇 번 상을 받긴 했지만, 그때까지는 직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시의 세계로
빠져든 후에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주서 새롭게 시작한 예술가 가족
이번 전시는 인천과 파주 출판도시를 거쳐 여주에서 대미를 장식한다. 그렇다면 왜 여주일까?
“30대 후반에 작가로서의 서울 생활을 접고 지인의 소개로 무작정 장호원으로 이주했어요. 그때는 서울이 아닌 시골이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서울 생활에 부적응자였던 거지요. 장호원에 묻혀 30년 가까이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여주에 일자리를 얻어 들락거리면서 여주라는 장소와 사람에 매력을 느꼈어요. 일단 자연이 아름답고, 도시도 잘 정돈되어 있어 좋았어요. 문화적 관심도 다양해 누릴 것도 많아요. 특히 예술가들이 살기에 참 좋은 환경입니다. 그러니까 여주는 저와 제 식구들의 안목으로 선택한 첫 장소인 셈이지요.”
이창기 시인의 가족은 ‘예술가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40년간 시인으로, 아내 길일행 씨와 아들 안욱 씨는 도예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 11월 말, 이안욱 작가는 서울에서 일곱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최근 여주로 주민등록을 옮긴 그는 이번 전시를 여주시민으로서의 ‘입주 신고식’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나쁜 꿈 시사회’다. 나쁜 꿈은 개인적이지만, 시사회는 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충돌이 묘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나쁜 꿈’이란 무엇일까? 그는 나쁜 꿈이란 “대개 망각과 부재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여러 시편에서 그는 이를 기록하고 해부하고 경고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 해몽은 길하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감기처럼 달고 사는 사람들을” 애써 위로하는 시인의 마음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이창기
1984년 ‘문예중앙’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1989년 ‘문학과 사회’에는 문학평론을, 1997년에는 ‘동서문학’에 소설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의 영역을 넓혀 왔다. 첫 시집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1989)에서는 “심리적 파장의 구조, 즉 심리적 울림의 색깔이나 극화 형태”(오규원)를, 두 번째 시집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1997)에서는 “은유와 환유의 연결고리로 곤고한 삶의 현실을 환멸과 유희라는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장석주)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시집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2005)에서는 “시골 생활의 느슨함과 난처함을 통해 자기 내면의 지도”(이남호)를 그리다, 네 번째 시집 『착한 애인은 없다네』(2014)에서는 “풍자적 시선으로 다양한 서사의 진술 방법을 실험”(오형엽)한 바 있다.
이창기 시·판화집 나쁜꿈 시사회
일정 2025.12.09.(화)~12.28.(일)
장소 여주세종도서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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