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구석구석 서려 있는 역사와 광복의 기쁨

✨봉일천 숨길에서 맞는 광복 80주년✨

역사에도 숨길을 불어넣어야 썩지 않는다

파주 조리읍 봉일천에는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봉일천을 따라

광복 한국전쟁, 근대 문화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숨길'이 있어요.

🔎봉일천 일대

조선 후기부터 물류와 군사의 요충지로,

일제 강점기에는 군수물자의 이동 경로로 이용되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어요.

조리읍의 유·무형 근대 문화자원을 발굴하여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조리읍 주민, 마을 이장, 전통시장 상인회,

주민자치위원회가 모여 마을공동체협의회를 구성하고

2019년 말부터 봉일천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봉일천 숨길'을 만들었어요.

‘역사에도 숨길을 불어넣어야 썩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8월의 태양이 아직 뜨거웠지만 숨길 구석구석에 서려 있는

역사와 광복의 기쁨을 따라가 보았어요.

📌봉일천 숨길 지도


역사의 숨길

📍 공릉장

(봉일천 전통시장)

봉일천 전통시장은 중부지방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공릉장터(출처: 파주시)봉일천 숨길의 주축이에요.

19세기 초 간행된 '만기요람'을 보면

당시 8개 도 327개 군에 개설된 장시 중

전국에서 규모가 큰 15개 장시 중 하나로

파주의 공릉장이 꼽혔어요.

📜고종 32년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가 공릉·순릉·영릉 삼릉을 행행하면서

입구가 공허해 동구 밖에 장시를 개설해

능침의 공허한 곳을 방어하게 하고,

그 장세를 취해 장민의 민생을 지원했다'라고 해요.

지금은 봉일천 전통시장으로 바뀌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2, 7일에 오일장이 열리는데 없는 것 빼고 다 있으니

나들이 삼아 한번 방문해 보세요.🤗


📍 민영달 불망비

조선 말 청백리로 알려진 민영달

문신이자 명성황후의 사촌이자 내무대신을 지낸 위인이에요.

그의 선정을 기리며 지역 민원을 처리해 준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1894년에 민영달 불망비를 세웠어요.

지방행정민본 정신의 모범을 보여준 민영달은

1986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독립 유공자로 지명되었어요.

현재 조리읍행정복지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어요.


📍 송암농장터

1930년대 초 조병학이 조리읍 봉일천4리의

전답 약 13만 평에 설립한 송암농장(사진 좌, 출처: 파주시)

우리나라 최초로 경지정리 작업을 시작한 곳이에요.

혁신적 과학영농으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소득이 높아지자

일본 학생들이 견학하기도 했어요.

연세대학교 백년사, 의학 백년사에 의하면 조병학이

일제 탄압으로 어려움에 빠진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위해

파주 땅 등 농지와 대지 60만 평을 기부하려 했으나,

병환으로 별세하자 아들 조중환이 선친의 유언을 받들어

아버지 조병학의 이름으로 재산을 기부했다고 해요.

봉일천4리는 조병학의 호 '송암'을 따서

송암동이라고도 불리지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으로 맞은 광복

📍 봉일천 주재소

1919년 3월 28일 공릉장터에서

광탄면 등지에서 몰려온 2,000여 명과,

그곳에 있던 1,000여 명이 합세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어요.

이 만세 시위는 심상각, 김웅권 등의 주도로

파주는 물론 고양시 일대까지 전개했는데,

파주에서 벌인 만세운동

가장 규모가 크고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시위 군중이 봉일천 헌병 주재소(사진 좌, 출처: 파주시)를 공격하자

일본 헌병들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역사를 담고 있어요.😢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숭고한 희생이 있어

광복 80주년을 맞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지금은 주재소가 남아 있지 않고

그 터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이를 복원해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요.


📍 3.1운동 기념비

파주 지역에서 벌어졌던

최대 규모의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78년 3월 1일 조리읍 봉일천리에

3.1운동 기념비가 세워졌어요.

기념비 뒷면에는 심상각 선생을 비롯해

파주 3.1운동을 주도했던 19인,

김남산 선생 등 당시 만세를 부르다

희생된 8인과 옥고를 당한 22인

파주 3.1운동과 관련된 인물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요.

다시는 나라를 잃는 비극은 없도록

모두가 한마음이 되길 바라요.


📍 대원교회

조리읍 대원리에 있는 대원교회

1901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 깊은 곳이에요.

1949년 교회 주일학교에 다니던

봉일천초등학교 학생 36명이 국기배례를

우상숭배라고 거부하다 퇴학 처분을 받는 일이 있었어요.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주재로

국민의례에서 국기배례를 주목으로 바꾸면서

퇴학 처분된 학생들은 복교가 되었어요.

대원교회 주일학교 사건을 계기로

국기에 대한 경례방식이 신설되었다고 하네요.

한국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

📍 1사단 CP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선에서 밀려 내려오던

1사단이 1950년 6월 28일 봉일천 국민학교

1사단 CP를 차리고 마지막 저항을 했어요.

우리 국군은 적과 끈질기게 맞서 싸웠지만

더 이상 항전이 불가해지자 경기도 시흥에서 합세하거나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기로 하고 후퇴했어요.

1사단 CP는 1사단이 한국전쟁 중 최초로

반격 작전을 기획했던 전략지예요.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진 평화의 공간이 되었어요.

전쟁의 상처 위에 일상을 되찾은

이곳에서 평화를 염원해 봅니다.


📍 봉일천 주막

평양을 찾아간다. 임을 찾아서. 임 이사 못 뵈와도 소식이나 들을까 하고

......

여기는 파주 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

......

걸어서 파주 땅에 오늘 밤을 자야 하나 평양을 가야 한다

봉일천 주막에 해가 지는데......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3대 시인

조지훈의 시 '봉일천 주막에서'의 배경이 되었던

봉일천 주막(좌, 출처: 파주시)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만

북한군에게 납북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조지훈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문학적 의미가 깊은 봉일천 주막복원해

공릉장터 국밥을 재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봉일천의 ‘숨길’을 돌아보며

역사적 회고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어떤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

깨닫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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