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동구의 ‘맛’을 찾아서 ③ 누구나 사랑하는 그 맛, 중국집 볶음밥
글 이상길 칼럼니스트
동구란 지역이 그렇다. 조선소 작업복을 일상복처럼, 심지어 결혼식장에 입고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조선소가 있던 전하동이나 꽃바위 근처, 어선이 드나들던 방어진항 주변은 늘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들로 북적였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회사 앞 식당 입구에 이런 손님들이 벗어놓은 작업용 장화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동구지역에는 예전부터 저렴하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음식점이 바로 중국집이다. 중국집이 어떤 집이냐, 중국집은 늘 우리와 함께 했다. 입학식을 하거나 졸업식을 하거나, 이사를 하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무사히 치러낼 수 있도록 빠르고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게 해 주는 대표적인 음식점이다.
자장면 볶음밥 탕수육 등 메뉴도 다양해서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고, 빠르고 친절하게 집 앞까지 배달해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참 많은 중국집이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맛이든 서비스든 각자의 비법을 갖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흔히들 자장면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볶음밥이 그 집 맛을 파악하기에는 더 유용하다. 왜냐면 볶음밥을 시키면 자장 소스와 짬뽕 국물이 같이 나오기 때문. 따라서 볶음밥을 시키면 그 집 춘장의 맛과 중국 음식의 대표적인 조리 기법인 볶음 수준, 또 짬뽕 국물의 깊이를 한꺼번에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볶음밥의 화룡점정은 바로 계란 프라이다. 아무리 밥이 잘 볶이고, 자장 소스도 맛있고, 짬뽕 국물 역시 깊이가 있어도 계란 프라이가 올려 지지 않은 볶음밥을 감히 볶음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적당히 잘 튀겨낸 계란 프라이는 볶음밥에 생명을 부여하는 아이템이다.
어린 시절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처음 먹게 됐던 그날로 잠시 돌아가 보자. 정말이지 신세계도 이런 신세계가 없더라. 기름에 잘 볶여 입 안에서 뒹굴다 터져서 씹히는 밥알의 맛은 차라리 밥이 아닌 새로운 음식이었고, 사이사이 양념처럼 떠먹는 자장 소스의 맛은 자장면에서 알고 지냈던 그 자장 소스와는 뭔가 달랐다.
그랬던 볶음밥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계란 프라이가 나오지 않는 곳도 많아졌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옛날식 볶음밥이 늘 그리웠다.
그러던 중 최근에 울산 동구에서 47년째 영업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 아직 영업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바로 방어진 어판장 근처에 위치한 '한화장반점'.
역시나 오래된 만큼 가게 내부는 옛날 중국집 풍경이 물씬 느껴졌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풍채의 조사관 씨가 울산 동구에서 중국집을 열게 된 건 지난 1976년 11월 15일. 조씨가 개업했을 당시 동구에는 조씨보다 먼저 개업한 중국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은 이미 폐업을 해서 현재는 조씨의 '한화장'이 울산 동구에선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다.(2023년 11월 기준)
볶음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바삭한 군만두를 먼저 먹으면서 조씨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참, 조씨 곁에는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결 같이 곁을 지켰던 아내 이종순 씨가 있었다. 월남 참전 용사인 조씨는 제대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후 당시 공업도시로 변모해가던 울산 동구로 내려와 중국집을 차리게 됐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한결 같은 맛으로 열심히 장사를 한 덕에 가게도 마련했고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낼 수 있었다며 뿌듯해 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즈음에 기다리던 볶음밥이 나왔다. 1980년대 내가 처음 먹었던 그 볶음밥의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내공이 느껴지는 잘 볶아진 밥은 그 곁에 맛깔 나는 자장 소스를 품고 있었고, 밥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 진 계란 프라이는 아래쪽은 바삭하게, 위쪽은 노른자와 흰자가 살아 있었다. 한 입 떴더니 47년 동안 쌓인 내공이 단번에 느껴졌다. 다만 밥알이 생각보다 꼬들하진 않아서 먹을 땐 조금 아쉬웠는데 다 먹고 난 뒤 기름기가 들어갔는데도 속이 너무 편해서 손님을 생각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울산 동구로선 보존해야 할 골동품 같은 곳이지만 '한화장'의 주인장인 조사관씨는 지금 폐업을 생각중이라고 한다. 어느덧 여든을 앞두고 있는 나이라 힘이 많이 부친다고 한다. 그는 이날 오랜 세월 동안 곁에서 같이 고생해준 아내에 대해 유독 고마움을 많이 표시했다.
볶음밥은 밥과 야채를 기름에 잘 볶아서 하나가 되게 하는 음식이다. 부부도 그렇게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금슬 좋은 이 부부가 볶음밥을 잘 하는 이유는 아주 당연한 듯 했다.
글 : 이상길 칼럼니스트 / 울산제일일보 기자이자 동구 서부동 토박이. 영화 및 드라마 파워블로거. 최근에는 깐깐한 입맛을 무기 삼아 내돈내산 맛집 탐방을 하며 맛 칼럼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 대왕암소식지 2022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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