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언양성당'
봄 햇살이 가득히 느껴지는 오후, 언양성당을 다녀왔습니다.
언양성당에 대하여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가보지 않았는데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보다 언양성당이 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언양 성당의 정면 사진인데요.
석조로 마감된 건물이 너무 인상적이고 10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이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잘 이겨내고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사제관이 있습니다.
언양성당은 천주교 부산교구 안에서 가장 오래된 성전이며
고딕 양식으로 제작된 유일한 석조 건물이라고 합니다.
저는 성전 내부를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먼저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산책하기 너무 좋은 날씨이고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니 사제관과 역사적 문화를
먼저 느끼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교회 종이 보이네요.
어렸을 적 시골에 방문했을 때 새벽녘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마을 사람들이 들썩이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현재는 종을 울리지 않겠지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제관은 1990년에 개조해 신앙 유물전시관으로 만들어
성물, 기독교 서적, 옛 서류 등 약 740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하여 전시관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전시관 앞에서 문만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나오는데
건축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역사의 고고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뒤편에는 신자들이 기도하는 공간과 십자가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편안하게 걸으시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897년 2월 5일 프랑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20년 9월 1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했고,
1922년 12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홍콩의 대표부에 파견되어 약 4년 동안 일하였다.
1926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0월 4일 한국에 도착, 대구교구로 파견되어 임시로 주교관에 머무르면서
언어와 풍습을 익혔다. 1927년 5월 14일 본당에 부임하여 본당 신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성당 건립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신자들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본국의 후원자들과
전교회 본부의 도움으로 성당 및 사제관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직접 고딕 양식의 성당을 설계한 이 공사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착공 6년 만인 1932년 8월 15일에 성당이 완공되고,
사제관은 1935년 10월 25일에 완공되었다.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우선 문맹자 퇴치 차원에서 미인가 학교를 운영하고
이를 점차 여러 공소로 확산시켜 나갔다. 언양 본당 초대 주임으로 13년 가까이 재임하고,
1939년 3월 24일 대구교구 부주교 겸 재정담당 신부로 전임되었으나 일제의 교회 탄압으로
1941년부터 1945년 8월까지 대구 남산동 본당에 감금되었다.
1948년 6월 충남 지역이 서울 교구에서 분리되어 독립 포교지로 설정되고,
그 사목권이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됨에 따라 그는 예산(현 예산 오리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신하였다가 1952년 본당에 재부임한
그는 본당의 재건을 위해 힘을 썼고, 1964년에는 공석이 된 대전교구장을 대신하여 임시 교구 관리자로 임명되어
이듬해 3월까지 교구 행정을 담당하였다. 1967년 4월 27일에는 예산 본당 관할 삽교 공소가 본당으로
설정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본당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힘썼으나 고령으로 인해
사목 활동의 어려움이 있자 74세 때인 1971년 3월 15일에 미리 사제 서품 금경축을 지내고
이듬해 2월 5일 현직에서 은퇴하여 삽교 본당 사제관에 머물렀다. 그 후 1973년 5월 9일 50년 가까이
사목 활동을 하던 한국 땅을 떠나 프랑스 로리스(Lauris) 교구 내에 있던 파리 외방 전교회 은퇴 사제 휴양소에
머무르다가 1976년 7월 13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파리 외방전교회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밀 보드뱅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13년 가까이 언양성당의 주임 신부로 계시면서 문맹자 퇴치를 위해 학교를 운영하고
한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돌아가신 신부님의 일생을 읽으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언양성당의 인상적인 부분은 건물의 앞쪽은 석조로 되어있는데
뒤편은 빨간 벽돌인 것이 신기했습니다.
저희는 건물의 외부를 둘러보고 본당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전 입구에는 성전 봉헌 머릿돌과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표식이 있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을 지켜낸 천주교인들과
에밀 보드뱅 신부님의 땀과 노력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성당 본당의 내부는 고딕 양식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단아함과 절제됨이 느껴졌습니다. 보통 성당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 음악이 흐르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곳의 모습은 정갈하고 깔끔함이 느껴져 오히려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었습니다.
때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언양성당을 한 번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는 곳, 언양성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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