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탑골공원,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대한독립만세!
3.1만세운동이 시작된 서울 탑골공원
지금으로부터 104년 전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과 수많은 군중과 학생들이 모여
일제의 무자비한 무단통치에 저항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염원을 외쳤습니다.
바로 3.1만세운동입니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고종의 독살설이 퍼진 것이 계기로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에 앞서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만세운동을 시작합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며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발전합니다.
약 3개월간 발생한 3.1만세운동은 일제에 의해 강경 진압되었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이후 일제는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방식을
총ㆍ칼로 지배하는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일제의 통치에 체계적,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기관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고 이를 계기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실학사상을 꽃 피운 곳이자 서울의 첫 공원
서울의 많은 도시공원 중에 맨 처음 생긴 공원은 어디일까요?
바로 종로2가에 있는 '탑골공원'입니다.
이 곳은 본래 세조가 지었던 원각사(圓覺寺)가 있던 곳으로
절을 지으면서 함께 만든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어
동네 이름을 탑골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흰 빛을 띄어 백탑(白塔)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선 후기 청의 문물을 적극 수용해 조선을 선진화하자는
박지원, 홍대용 같은 실학자들을 북학파라고 부르는데
당시 이들이 모여 살던 곳이 탑 아래여서
'백탑파(白塔派)'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해
연산군 때 원각사를 철거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고,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연방원(聯芳院)으로 사용되다가
1514년 중종 때 원각사의 재목을 다른 건물에 사용하며 지금의 10층 석탑만 남게 되었습니다.
원각사의 터만 남았던 탑골공원이 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7년 대한제국 원년 탁지부의 영국인 고문 브라운의 건의에 의해서였습니다.
1934년에 편찬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 따르면
“고종 시대 광무 초년(1897년) 영국인 고문 총세무사 브라운이 이 땅을 보관하고 소공원으로 만들었다.
……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은 실로 경성 최초의 공원이다.”라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1910년 일제강점기에 공원의 관리권이 조선총독부로 넘어갔고
정자, 전등, 온실 등 시설을 설치하며 점차 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한때 공원 주변에 대형 아케이드가 건설되기도 하였으나,
독립운동지의 의미를 훼손하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된 뒤
1983년 정비를 통해 조성된 모습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사회를 개혁하자는 열망이 가득하고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이며 민주공화국임을 알린 이 곳, 탑골공원.
종로구는 이 곳에 담겨있는 우리 민족의 웅장한 역사와 힘을 바탕으로
종로 모던을 통해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 내용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 '탑골공원',
문화재청 서울ㆍ경기ㆍ인천 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우리역사넷 탑골공원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에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기념식이 열립니다.
뜻깊은 자리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행사명
제104주년 3.1절 기념식 및 탑골공원 성역화 범민족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
🌺일시
2023. 3. 1.(수) 14:00 ~ 15:40
🌺행사내용
3.1절 기념식, 범민족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 기념공연 등
-3.1만세운동 독립선언서 낭독(남경주 교수(배우))
-탑골공원 성역화 범민족추진위원회 발기인 대회 선언문 낭독
-3.1절 노래 제창(홍익대 뮤지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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