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시조의 중흥을 위해


익산시 여산면 남쪽 용리산자락 대나무숲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시조의 현대화에 기틀을 마련하고

현대시조의 선두에 서서 다양한 현대시조를 짓고 고전 발굴 연구에 일생을 바친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생가가

1973년6월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이 되어 보호 받고 있다.

가람 이병기생가는 승운정이라는 모정이 자리잡고 그뒤편에 사랑채 안채 고방채 등과 작은연못이 자리잡고 있어서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어서 초가지붕으로 지붕을 올린 목조건물이지만

선비의 품격과 여유가 느껴지는 건축물로 가람 이병기선생은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본관은 연안이고 호는 가람 이라고 사용한 이병기선생 생가는 1844년 이병기 선생의 조부가 건립하였고

이병기선생은 1891년 3월 5일 태어나서 1968년 11월 29일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고택 앞에 자리잡은 승운정이라는 작은 정자는 이병기선선생이 15세인 1906년에 지어져서

이병기 선생이 이 정자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가람이병기 생가의 사랑채는 지조를 지키기 위한 마음을 담아서 바보처럼 살겠다는 의미로 붙여놓은

수우재라는 현판이 걸린 2칸 방은 가람 이병기 선생이 생활하던 곳이었고

한 칸 건너 수명에 연연하지 않는 다는 의미를 담은 진수당이란 현판이 걸린 방은

서재로 사용하여서 일제강점기 가람 선생의 의기를 읽을 수가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 대문간을 들어서면 좁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마주하게 되는데

안채는 호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ㄱ자 집으로서 잡석 축대 위에 높은 자연석 초석을 사용해 비교적 높게 지어졌고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마주하며, 안방 전면으로 부엌이 돌출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가람 이병기 생가 건넌방은 전면과 측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전면 툇마루는 대청마루 보다 높게 구성해 마루 밑에 아궁이를 만들어서

온돌을 덥히게 하였고 윗방 한쪽은 칸을 막아 찬방을 두었으며,

아랫방 뒤쪽에는 쪽마루를 달아 고방채와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에서의 출입이 원활하게 이동 할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가람 이병기는 최초의 근대식 관학으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던 한성사범학교를 나와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시조를 발표하였고

1926년 시조 부흥을 위해서 동아일보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시조를 쓰기 시작하였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그동안 지어온 시조들을 모아서 1939년 ‘가람 시조집’을 발간하였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르고 고향에 내려와 칩거를 하기도 하였으나

문헌학자로서 숨어 있던 많은 고전을 학계에 소개하면서 신재효 선생도 소개를 하였고

광복 후에는 한민족의 고전 문학을 현대어로 고치는 일에 힘썼으며,

전북대학교 문리대 학장 서울대학교강사 중앙대학교교수 등을 역임 하였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우리나라 판소리 여섯마당으로 이루어지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변강쇠타령의 체계를 잡아 개작하고

통일한 조선후기의 판소리 명창 신재효 선생의 업적을 우리나라 문학사상의 ‘기적의 사업’으로 칭하면서

우리의 큰 은인 이라고 평하여 판소리 보급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가람 이병기선생은 자신의 일상을 적으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간결한 문체로 작성하였고

40년간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를때를 빼고는 40년간을 일기를 쓰셔서 일대기를 파악하기가 쉬웠는데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말과 글을 보존하는데 노력하면서 서지학과 국문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가람이병기생가 입구에는 이병기 선생의 고조부가

충남 연산에서 이곳에 내려와 정착을 하면서 심은것으로 알려진 200여년된 탱자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눈길을 끄는데

지상 1.6m 높이에서 6개의 큰가지로 나뉘어 자라고 있어서 그모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 되었다.

탱자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서 주로 자라며 줄기에 가시가 있어서 울타리로 많이 심었는데

이병기생가의 탱자나무는 관상용으로 길러져 나무높이 5.2m 이고 허리높이 지름이 19cm에 달하며

수명이 200여년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2001년12월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이병기생가의탱자나무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가람 이병기선생 생가 주차장 입구에는 노래로 작곡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불러서 사랑을 받았던

‘별’ 이라는 시가 우뚝 솟아있는 표지판에 적혀 있어서 눈길을 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가람문학관

전북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76

화~일 09:00 ~ 17:00

063-832-1891

가람 이병기 생가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

전북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

063-859-5792


글, 그림 = 강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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