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일 전
기증·기탁 특별전 "양무공신 이삼 충성이 해를 꿰뚫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제3회 기증·기탁 국학자료 특별전 "양무공신 이삼 충성이 해를 꿰뚫다"
영조의 신뢰를 상징하는 백일헌[白日軒]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은 감은곡[感恩曲] 당쟁 속에서도 흔들림 없었던 군신의 믿음, 문무를 겸비한 장수의 시문을 통해 조선 후기 충신의 절의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양무공신 이삼-충성이 해를 꿰뚫다
장소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2층 특별전시실
기간 : 2025-08-08 ~ 2026-03-29
담당 : 국학진흥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특별전이 펼쳐지는데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 자유인 계룡도령 춘월이 빠질 수 없죠?
그래서 다녀왔는데 수많은 공신[功臣] 중에 양무공신[揚武功臣]이 뭘까요?
양무공신이 뭐지?
공신이라 함은 국가에 공헌이 있어 책봉이 되는 것인데 1728년 영조 재위 시기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한 오명항[吳命恒] 등 열다섯 사람에게 내린 훈명[勳名]으로 처음 ‘분무공신[奮武功臣]’이라 하였는데 책봉 27년만인 1764년에 명나라 의종의 휘호와 겹친다는 이유로 양무공신(揚武功臣)으로 고쳐 내린 이름입니다.
조선 영조 때 이름이 바뀐 게 분무공신 뿐만이 아니랍니다.
전라도[全羅道]가 '전광도[全光道]'로 불린 적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이인좌의 난 때문인데요.
실제 영조 4년부터 14년까지는 '전라도'가 아니고 '전광도(全光道)'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답니다.
전광도라고 들어봤어?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자 이의를 제기하며 이인좌[李麟佐]를 비롯한 소론 강경파와 일부 남인들이 충청도ㆍ경상도 ㆍ 전라도 등에서 난을 일으키는데 무신년에 일어나서 무신난(戊申亂)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난의 수장 이인좌가 청주성을 함락시키며 기세를 올렸으나 안성에서 관군에게 크게 패하였고 경상도의 정희량[鄭希亮]이 이끄는 반군이 합천·함양 등 4개 군현을 장악하는 등 세력을 키웠으나 곧 관군에게 소탕되면서 3개월 만에 모든 반란이 평정되었는데 전라도에서는 태인현감 박필현이 봉기하여 전주성으로 진격하여 미리 내응하기로 한 전라감사 정사효가 배신하여 문을 열어 주지 않아 난에 실패하고 경상도로 달아났으나 체포되어 난이 평정 된 이후 영조는 나주 나씨 문중에서 반란에 적극 가담하였기에 나주의 명칭을 금성[錦城]으로 고치고 '전라도'에서 나주를 빼고 광주를 넣어 '전광도'로 바꾸어 부르게 합니다.
양무공신은 누구 누구지
1등 공신
난의 진압을 총지휘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機效力奮武功臣)
2등 공신
일선에서 적 토벌에 공을 세운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조문명[趙文命]·박필건[朴弼健]·김중만[金重萬]·이만빈[李萬彬] 등 7인, 수충갈성효력분무공신
3등 공신
토역[討逆]에 종사한 공을 세운 조현명[趙顯命]·이수량[李遂良]·이익필[李益馝]·김협[金浹]·이보혁[李普赫]·권희학[權喜學]·박동형[朴東亨] 등 7인, 수충갈성분무공신
공신책봉에 따르는 토지지급과 같은 은전은 없었으며, 단지 공신녹권을 지급하여 후손의 녹용(錄用)을 보장하고 당사자의 자품(資品)을 올려주는 데 그쳤으며 이 분무공신 책봉을 끝으로 이후의 조선시대의 공신책봉은 없었다고합니다.
양무공신에 대해 알아 보았는데요.
백일헌[白日軒]이 어떻게 불리게 된거지
이삼 장군[李森·1677~1735]의 이름은 명재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백일헌은 영조로부터 "충의가 밝은 해를 꿰뚫는다"는 찬사와 함께 하사된 당호 '백일[白日]'이랍니다.
영조 어필 현판
이제 백일헌의 유래를 알게되었는데요.
이삼 장군이 문무를 겸비해 많은 개발을 란 이과라는 사실 아시나요?
이삼장군은 무관으로 시작했지만 무기 개발에도 앞장 서 여러가지 무기를 개발했는데요.
명재 윤중선생이 이삼이라고' 森[삼=백빽힐 삼]이름 지은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1734년 영조가 하사한 은잔과 케이스
1734년 9월 18일 영조는 창덕궁 영화당에서 양무공신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은잔과 목함을 하사,
아주 소중하게 간직한 유물도 만날 수있었습니다.
초상화
이삼장군의 초상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요.
그것은 문인들의 초상화는 많은 반면 무인의 근무복 초상화는 희귀하기 때문이랍니다.
영조 어제현판
기호유학의 중심에서 만난 백일헌 이삼장군
이삼 장군은 이름을 얻게 된 스승, 윤증이 이삼의 영특함은 돋 보여,
열두 살의 이삼 장군은 달빛 고요한 밤 스승이 제자들에게 풍경을 읊게하자
"달은 별을 이끄는 장수 같고, 별은 달을 호위하는 병사 같네'라는 시를 읊어
장수의 기운을 읽고 거느린다는 뜻의 '삼[森]'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명재 윤증과 오고 간 간찰을 정리한 간찰집입니다.
1728년 양무공신교서
많은 설명이 팔요하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른 지라 긴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섭섭하게 생각지 마시고 기간이 넉넉하니 시간내서 직접보고 체득 하기바랍니다,
논산은 기호유학의 중심도시이다 보니 많은 유학과 관련한 유적들이 참 많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
- #논산
- #논산시
- #논산여행
- #논산가볼만한곳
- #한국유교문화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