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개진면 직 2리 마을 입구에 자그마한 효자각이 있어 찾아 가 보았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직2리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또 마을사람들이 편하게 외출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정류장에서 내려 오른쪽 편으로 넓은 주차장과 자그마한 효자각이 야지바른 곳에 세워져 있었는데요.

뒷산 나무에는 연초록의 나무잎이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예뻤습니다.

효자각은 부모에게 효행을 다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건물 누각으로 뒷편에는 산으로 효자각을 감싸고 있었고

앞에는 배롱나무가 효자각을 지키는 듯 서 있었습니다.

문은 임시로 잠겨 놓았지만 열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담한 담장은 어른 키 높이만큼의 높이로 안을 들어다 볼 수 있었습니다.

효자각을 한바퀴 돌아보고 문을 열고 효자각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안에는 깔끔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요.​

비석에는 '효자 강병관기적비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2010년 6월 24일에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비석 뒤에는 강병관 효자의 글이 담겨 있었는데요.

효성이 지극한 강병관 효자의 비를 마을 사람들이 세우고, 김희록이 묘비명을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강병관 효자는 평소에 부모님을 극진히 봉향하며 살았지만 불행하게도 29세 젊은 나이에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강병관 효자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눈물을 흘리며 “부모가 집에 계시니 눈을 감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37년 5월 아버지가 이질에 걸려 3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온갖 약을 썼으나 전혀 차도가 없고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잠자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어떤 궁궐로 끌려가 보니 그곳에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우두머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살려 줄 것을 간청하자, 우두머리가 “너의 정성이 갸륵하니 아버지를 놓아 주겠노라!”는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 후로 아버지의 병이 점차 차도를 보여 완전히 낫게 되었다. 는

등의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효자의 묘소는 고령군 개진면 효자각이 세워져 있는 마을 안쪽 송천리 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강병관 효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옷깃을 여미게 되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 와 살아계실 때 전화라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효자각은 그 의미가 깊어 빛이 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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