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봄을 기다리는 청풍문화재단지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충청북도청에서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에는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 유형문화재),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 유형문화재), 응청각(충북 유형문화재), 청풍 향교(충북 유형문화재)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한벽루에서 청풍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비봉산, 청풍호반케이블카,구담봉, 옥순봉, 옥순봉출렁다리, 능강구곡, 금수산, 월악산국립공원,의림지등의 관광지가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미세먼지가 없고 청명한 겨울날씨속 파란하늘이 유난히 좋은날 청풍문화재단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제천 청풍 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조선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고종 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서 복원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이다.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두르고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매표소에서 매표를하고 팔영루 문을 통과하여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들어갈수 있습니다.
남한강은 토지가 비옥하여 농경문화가 발달한곳으로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소 연자방아가 팔영루 문을 들어가면 바로 만날수가 있습니다.
충주에 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청풍면과 수산면 수몰되는 문화재를 청풍면 물태리에 16억 2천 백만원의 예산으로 문화재단지를 조성하여 이전하였습니다.
문화재단지안으로 이전되어 복원된 고가에는 옛날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도록 부엌과 방들이 옛날 소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고가 한켠에 심겨진 목련나무는 얼나 있지 않으면 꽃망을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병마절도사 김중명에대한 이야기를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네요.
고인돌과 성혈도 이곳으로 이전하여 놓았습니다.
한벽루 (보물)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 (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며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응청각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 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 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 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 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 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 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 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 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금남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 25년(1825)에 청풍 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 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한벽루에서 바라보니 망월산성과 망월루가 보입니다.
고가들과 문화재를 둘러보고 망월산성으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관수정(觀水亭)
망월산성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관수정 위로 올라가면 청풍호를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망월산성 가는 길옆에 두 그루의 나무가 한 몸으로 붙어있는 연리목이 있습니다.
나무 옆에는 연리지에 대한 전설이 적혀 있네요.
망월산성 입니다.
망월산성에서 내려다 보니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대교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드디어 청풍화재단지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망월루에 올랐습니다.
망월루에서 보면 서쪽으로는 청풍호반케이블카가 있는 비봉산전망대가 눈에들어오고 동쪽으로 청풍호의 수경분수와 유람선선착장이 보입니다.
마침 유람선 선착장을 떠나 옥순쪽으로 올라가는 유람선이 보입니다.
청풍명월의 고장, 내륙의 바다 청풍호가 보이는 청풍문화재단지에서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비봉산과 금수산의 정기를 받아 건강한 겨울나시기 바랍니다.
#제천시SNS시민홍보단 강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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