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산시 SNS 시민기자 강묘선입니다.

선감역사박물관을 네비게이션에서 찍고 가면

모두가 본 기자처럼 놀라게 될지 모른다.

경기창작센터..

선감역사박물관이 맞는지 아닌지 도통 알길이 없다.

한국 검색 사이트에 등록된 번호도 불통..

더욱 특이한건 분명 경기도 안산인데 032로 등록이 되어있다.

이런 이야기로 취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선감역사박물관의 히스토리도 슬픈데..

번듯한 간판하나, 안내판 하나, 심지어 전화번호도 잘못 등록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경기도 창작센터 1층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선감역사박물관이 있다.

운영

화요일 ~ 금요일 10:00 ~ 17:00

※ 월요일, 일요일 정기휴무

문의

032-880-1635

취재전까지는 본 기자도 선감역사박물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슬픈 역사의 낯빛을 보게되면서

이 박물관의 이름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과연 이곳을 역사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지었어야 했을까...

선감도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딸린 섬이다.

1942년, 조선총독부가 일제강점기 감화원 시설로

선감도에 거주하던 주민 400여 명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선감학원을 설치하였다.

선감학원은 사회 반영아 등을 보호 육성한다는 취지로

소년들의 인권유린을 감행하였고,

수많은 어린 소년들이 구타와 영양실조 등으로 희생되었다.

더욱 한탄스러운 것으로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부랑아 일제단속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렇게 파행적으로 운행되던 선감학원

1982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완전 폐쇄되었다.

1960년대 선감학원에 수용되었던 원생들은의 증언에 따르면

탈출하다가 죽은 아동들은 선감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육지인 마산포에도 많이 매장되어있으며,

현재 우물재산(경기창작센터 맞은 편)에 아동들의 무덤이 산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감학원의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동전 몇 닢 들고 큰누나 집에 갔다가 붙잡혀 5년 3개월을 보낸 피해자도 있다.

강냉이 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그나마도 더 큰 아이들에 빼앗기기 일수...

굶주림에 흙 퍼먹다가 항문이 막혀 파내는 경우도 있었으며,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 개 호롱불 아래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거나

붙잡히면 매 저녁마다 체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선감학원에서 나온 이후로도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결혼도 못하고 독거 노인으로 늙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감 역사박물관

선감도에서 40여 년간 존재했던 소년수용소 ‘선감학원’의 진실을 규명·공유하고,

반인권적인 상황에서 수용되었던 원생들의 삶의 여정을 되짚어

그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자 2017년 1월 개관하였다.

피해자들은 보상과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 통과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갈 길은 멀다고 한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60-70세.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는 선감 역사박물관.

누군가 이들의 잃어버린 시간과 인생을 되돌려 줄 수 있을까?

박물관 앞의 파란 잔디밭이 더 슬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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