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시 왕궁면.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날 조용한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

이름 하나만으로도 한국 고대사의 결정적 장면을 열어젖히는 곳

‘익산 제석사지’를 방문했어요.

백제 무왕이 천도를 꿈꾸며 지었던 궁궐 주변, 불교의 수호신 제석천(帝釋天)을 주존으로 삼아 건립했다는 왕실 사찰인 ‘제석사지’입니다.

지금은 건물 하나 남지 않고 평지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땅에는 한때 칠층탑이 우뚝 솟고, 불당과 회랑, 승방이 어우러진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이 있었어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은 익산을 새로운 수도로 삼으려 했어요.

당시 이 지역은 ‘지모밀지(枳慕密地)’라 불렸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사(政事)를 설계했는데, 그 정점에 있었던 종교공간이 바로 제석사에요.

제석사지의 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들과 그 사이로 조용히 펼쳐진 사찰 터의 평지입니다.

‘익산 제석사지’라 적힌 안내판 뒤로는 고대의 왕도였을 법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탑이 있었던 자리에는 커다란 심초석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제석사지 전경을 담은 항공 사진과 함께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이 유물들을 통해 제석사지가 국가 의례와 권위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기와 조각에 새겨진 ‘제석사’라는 글귀는

이곳이 문헌과 유물로 입증된 실존 사찰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주는 상징적 증거에요.

사찰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졌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관세음응험기』에 남겨져 있어요.

이 책에 따르면, 639년(무왕 40년) 벼락으로 인해 절이 소실되었어요.

하지만 그 잔해 속에서도 탑 아래 보관하던 불사리와 금강반야경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고 해요.

이를 계기로 무왕은 절을 다시 짓고 신앙심을 다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올려다본 하늘은 제석사지의 풍경을 완성하는 캔버스 같네요.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푸른 하늘 아래, 노송은 마치 오래된 붓으로 그린 수묵화처럼 가지를 뻗어 있어요.

그리고 한쪽에는 소박한 시골 가옥과 교회의 첨탑이 솟아 있고,

그 맞은편에는 천 년의 시간을 품은 고요한 사찰 터가 펼쳐져 있어요.

목탑지는 사방을 둘러봐도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이곳이 과거 신앙과 권위의 중심이었음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에요.

사방 모서리에 남은 목탑 기초 구멍과 옛날 탑의 중심 기둥을 지탱하던 심초석은 옛 제석사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제석사지는 가람 배치만으로도 백제 후기 사찰 중 가장 정형화되고 규모가 큰 구조를 보여줘요.

고대 불교 사찰의 전형인 중문-목탑-금당-강당으로 이어지는 일자형 배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크기 면에서는 기존의 부여 정림사, 군수리사지, 금강사지보다 훨씬 넓어요.

중문에서 강당까지의 직선 거리만 약 140m, 동서 회랑의 너비는 약 100m,

회랑 자체 폭도 7.8m에 달해 미륵사지를 능가하는 구조에요.

금당터는 기단 면적이 동서 31.7m, 남북 23.2m로 백제 후기 사찰 금당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며,

평면상 2중 기단 구조로 쌓였던 것으로 짐작해요.

이어지는 강당터는 금당에서 약 26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길이 약 52m, 너비 약 18m의 단층 기단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백제의 대표 사찰인 미륵사지 강당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고 해요.

나아가 스님들이 거주하던 승방터의 흔적이 있는데,

익산 정림사지와 금강사지 등에서도 발견되는 동일한 승방 구조라고 해요.

제석사지 옆에는 담장 없는 논길을 끼고 한적한 마을이 있네요.

양옆으로 펼쳐진 소박한 집들과 농가, 그리고 드문드문 서 있는 노송 사이로 보이는 사지의 흙기단은

천 년 전 이곳이 얼마나 장엄한 신앙의 중심지였음을 상상해 봅니다.

제석사지의 동쪽 구역에는 발굴 조사와 유적 정비 과정에서 수습된 기둥초석, 지대석, 갑석 등의 건축 부재기 있는데,

모두 제석사의 건축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원석이라고 해요.

기단을 떠받치던 무거운 돌부터, 기둥의 발을 고정하던 초석까지,

하나하나가 천 년 전 사찰의 실체를 구성했던 조각들이에요.

과거 목탑이 우뚝 솟아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자리. 지금은 탑도, 기둥도, 지붕도 없지만,

그 빈 공간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석사지입니다.

천 년 전, 이곳은 백제의 이상과 불교 신앙이 살아 숨 쉬던 왕실 사찰이었어요.

지금은 탑도, 불상도 사라졌지만, 빈 자리의 힘은 오히려 더 크고 깊네요.

목탑의 중심을 지탱하던 심초석은 여전히 무게감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회랑과 금당이 놓였던 자리에는 잔디가 깔리고, 설명판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요.

이곳 제석사지는 지금도 조용한 마을 속, 평범한 들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천 년 전 백제의 꿈과 신심이 응축된 성스러운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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