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영월에 살아요_부지런한 시골 생활
부지런한 시골 생활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부지런한 자 만이 시골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생생하게 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장마가 지나간 뒤 들려오는 물소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늑한 전원생활. 바로 그 꿈같은 전원생활은 물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백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물아래에서는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낭만 가득한 전원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이번에는 여름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몇 가지 노동에 대해 소개를 해보려 한다.
첫째로, 비 온 뒤 쑥쑥 자라나는 건 대나무만이 아니다. 바로 이 파릇한 잔디. 누구나 푸른 초원처럼 펼쳐진 잔디밭을 원하지만, 이 미친 성장속도의 잔디는 깎은 지 일주일만 지나도 다시 무성해진다. 엄청난 생명력이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확 쏟아지고 다시 햇볕이 쨍쨍 들면 아침의 잔디와 저녁의 잔디가 과장 조금 보태서 한 뼘이나 더 자란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한낮에는 해가 뜨겁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서둘러 일어나 잔디를 깎지 않으면 푸른 잔디밭은 거의 무성한 원시림이 되어버린다. 잔디를 깎는 노동. 잔디와 더불어, 잡초 뽑기도 있다. 하지만 잡초 뽑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처음부터 각오를 했던 일이기에 오늘 언급만 하기로 하겠다. 잡초를 뽑는 건 전원주택에서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일상이다.
두 번째는 방역. 벌레와의 싸움,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이건 전쟁이다. 멋모르고 시작한 전원의 삶에서 나는 호기롭게도 ‘약을 치면 벌도 나비도 죽을 테니까 나는 약을 치지 말아야지! 진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지!’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아파트에서 살면서 허황된 꿈만 꿨던 어리석은 과거의 나다.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지자체에서 기본적인 방역을 모두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뭐 좀 날아다녀도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하며 넘길 수 있었지만… 산 중턱에 들어와 살면서 겪은 대자연의 벌레 군단은 정말… 정말로 무섭다! 귀찮아, 싫어, 짜증 나!라는 생각이 아니라 정말 무섭다는 공포가 느껴질 정도다. 내 온몸을 잠식할 만큼 바글바글한 벌레 군단을 보게 된다면, 친환경이라는 말 따위는 쏙 들어가게 된다. (실제로 나는 산에 살면서부터 ‘친환경’이라는 말에 반감이 생겼다) 집을 둘러서, 멀리 밭의 경계까지 해서 등에 약통을 지고 열심히 약을 쳐야 사람이 사람답게, 존귀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엊그제는 야외 벤치 아래에 있던 커다란 벌통을 떼어내는 사투를 벌였다. 지붕 아래, 의자 밑, 데크 안쪽, 돌담 사이 등등 수시로 점검을 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야생동물. 고라니와 멧돼지는 그래도 괜찮다. 정말. 고라니는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갔을 때는 좀 놀라긴 했지만, 나는 고라니가 새끼였던 시절부터 지켜봐 왔기에 내적 친밀감이 있다. (물론 그 새끼 고라니가 이 고라니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리고 멧돼지 역시 오히려 그들이 사람을 더 무서워하니까 걱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 네버, 공존할 수 없는 동물은 역시 뱀이다. 뱀을 마주했던 날, 나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비장함까지 내비쳤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한번 마주친 이후로 아직까지 다시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옳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살면서 부딪혀야 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영하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빠삭하게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물에 빠지는 건 다르지 않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전투적이고 노동하는 삶을 끊임없이 병행하며 살아야 하는 셈이다.
- #